140709
나의 이야기 (48) Welcome to Guam!-2014 Guam
오늘 새벽기도의 주제는 용서였다. 새벽예배를 끝내고 평소 습관대로 옷을 갈아 입고 샌달을 신고 근처 알루팡 해변까지 걸어가서 태평양에 몸을 적셨다. 해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운동을 하느라 보니 누가 내 옷과 샌달 벗어 둔 곳을 지나간다. 보아하니 근처 Jimmy Dee’s Beach Bar 야외바닥에서 잠을 자며 끼니를 잇는 노숙자의 모습이다. 보통은 내가 해변에 올 때 쯤이면 일어나서 청소를 하곤 했는데 오늘 따라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래바닥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근처에 가니 술냄새가 앙등을 해서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그새 깨어서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물에서 나와서 옷과 샌달 벗어둔 곳에 왔을 때 발생했다. 모자, 셔츠, 자동차 열쇠는 그냥 있는데 신고 왔던 샌달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이다. 보나 마나 범인은 뻔한데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처지에 내 샌달을 훔쳐 갔으니 참 기가 찬 일이다. 어디 갔나 하고 아무리 주위를 살펴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해변에서 교회까지 돌아오는 길은 거리가 제법 되는 아스팔트 길인데 노면이 거칠어서 맨발로 걸으면 상당히 괴롭다. 거기에다 이 곳은 도처에 취객들이 버린 맥주병 조각이 많아 주의하지 않고 맨발로 걷다가는 발을 상하기 쉽다. 그래 아픈 발을 끌고 맨발로 교회까지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까 설교는 무조건 용서해 주라고 했는데 막상 그 친구 생각을 하면 슬며서 화가 나는 것이다.
“그냥 돈을 달래면 샌달 살 값이야 어련히 주었을텐데, 내가 맨발로 걸어가야 할 줄 뻔히 아는 X이 그런 짓을 해. 에이 나쁜 X.”
머리 속에 저절로 오갔던 생각이다.
“그래 봤자지. 뭐. 그런다고 발이 안 아픈감? 나만 속 끓고 말 일을 용서하고 잊어야지. 그래도 모자와 자동차 열쇠와 셔츠는 두고 갔으니 다행이 아닌가.”
마음을 고쳐 먹고 나니 속이 좀 편했다. 하필이면 용서하라는 주제로 설교한 후 1시간도 안되어서 이런 일을 겪게 하신 하나님도 참, 날보고 우짜라고.
이번에 잃어버린 샌달은 지난 3월 초 괌에 오자 마자 근처 멕도날드에서 만났던 죠 김이란 한국 할아버지가 자기 차에 태우시고 나를 데리고 가셨던 싸구려 (모두 $1.50짜리) 가게에서 샀던 것이다. 싸구려라 모양도 볼 품 없고 얄팍해서 오래 신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래도 그간 정이 들었는데 잃고 나니 꽤 섭섭하다. 노숙자에게 신발을 벗어준 셈 치면 될 일을 가지고 뭘…. 사실 이런 일이 내게 처음은 아니다. 괌은 온통 해변이라 해서 한국에서 제법 비싼 수영복을 하나 장만해 왔는데 한번 입고 건조대에 널어 베란다에 두었는데 함께 널어 놓았던 팬티 한 장과 함께 누가 가져갔다. 세상에 빨래까지, 그것도 3층 베란다에 둔 것을 가져 가다니. “Welcome to Guam!” 괌에서 받은 첫 인사였다. 또 한번은 역시 신발 사건이다. 나는 발은 작은데 폭은 아주 넓어 미국에서 맞는 신발을 사기가 어렵다. 그래서 작년 10월에 한국 Costco에서 제법 비싼 운동화를 하나 샀다. 어찌나 내 발에 딱 맞고 운동하는데 편한지 애지중지하던 것을 괌과 몽골에서 신으려고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런데 괌 와서 2주 째인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누가 차 안에 둔 것을 날름 들고 갔다. 이래 저래 괌 사람들에게 대한 인상을 초기부터 구겼던 사건이었다. 지난 토요일에는 교회 문 앞에 취객이 X무더기를 선물하고 가더니 오늘은 샌달마저 잃었다. 취객의 X무더기를 치우면서 속이 얼마나 부글부글 끓었는지 모른다. “그 괌 사람들 손님 대접 제대로 할 줄 아네.” 인사도 이쯤 되면 수준급이다. 도대체 몇 번째 환영인사인가? 이제 괌을 떠날 날도 40여 일 남았는데 작별인사는 좀 즐거운 것으로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