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4
주재원으로 있다가 회사를 사임하고 무작정 미국에 주저앉았을 때,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요. 그때가 1986년이었어요. 매월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은 끊어지고, 집 모기지는 매월 올라가고, 비자문제까지 겹쳐서 혼자서 고뇌하던 시절이 꽤 길었습니다. 제 아내는 대책없이 예민한 성격이라 상황을 제대로 알리면 노이로제로 쓰러질 사람이에요. 그래 혼자서 사업의 활로를 찾느라 참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신분문제도 해결이 되고, 사업도 자리가 잡혀서 당시로는 뭉치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과거 여러 해 월급을 다 모은 것보다 많은 수입을 단번에 벌기도 했지요. 이렇게 계속 잘 되면 수년 안에 거대기업을 일굴 수 있겠다는 욕심도 생겨서 어느 나라에 제조시설을 지어서 수입을 하면 좋을 지, 또 그걸 어떻게 하면 선교의 교두보로 삼을지 궁리가 많았어요. 거기에 겸해서 제 간덩이의 크기에 큰 변화가 있었어요. 저는 원래 맨 몸으로 서울 올라와서 고학해서 삶을 일군 사람이라 근검절약이 영혼골수까지 밴 사람이었어요. 그래 하다 못해 식재료를 살 때에도 가게마다 제품가격을 다 기억하고 꼭 필요한 것만 가장 저렴한 가게에서 구매했었어요. 어느 슈퍼를 가든 거기를 한번 쭉 둘러보면 거기 제품별 가격이 그대로 머리에 입력이 되었거든요. 집에 가구도 대부분이 다른 집에서 줏어온 것들이었구요. 아 그런데 큰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집에 가구가 험하게 보이고, 제가 몰던 멀쩡한 미제차도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 이것저것 좋은 것으로 바꾸었어요. 또 한 가지는 교회 성도들 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갑자기 눈아래로 보이는 거에요.
그래 이제는 나도 좀 큰 물에서 놀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지요. "주여, 삼천만불만 주시옵소서. 그럼, 그걸로 러시아에 공장을 지어서 그걸 선교의 교두보로 삼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엉뚱하게 제게 소명을 주셨어요. 마음 속에 소명의 음성이 들리는데도 계속 사업을 했는데, 얼마 안되어 미국정부에서 반덤핑법을 적용시켜서 제가 수입하던 제품의 수입이 거의 끊어졌어요. 그래 하루아침에 사업 그냥 접고 신학교로 발걸음을 옮겼지요. 그게 벌써 33년이 지났군요. 그때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어요. 사람은 형통하면 그 마음에 교만마귀가 자리잡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