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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33) 고장난 씨디 플레이어 - 2002 Nyack College 교수시절 이야기

 

어제는 논문 작성에 머리가 너무 무거워 그동안 구석에 버려 두었던 씨디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싶은 생각이 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오디오 시스템은 1981 미국에 주재원으로 처음 와서 우리 둘째 재준이 태교용으로 당시로는 거액을 투자해서 장만했던 것이고 씨디 플레이어는 그 후에 씨디 플레이어가 등장한 후 즉시 장만했던 것으로 16년 동안 한번도 고장 없시 신실하게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막상 씨디를 넣고 아무리 플레이를 눌러도 플레이가 되지 않고 씨디를 인식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정들 대로 정들었던 기계인데다 특히 우리 은정이와 재준이가 어릴 때부터 음악을 들었던 기계라 우리 가정의 일원이나 다름이 없는 기계이다. 그래서 롱아일랜드 집을 처분해서 콧구멍만한 아파트로 이사 올 때에도 다른 가구는 사정없이 버리면서도 그대로 들고 온 기계라 미련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몇 시간을 시도하다가 결단하고 사정 없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던지면서 마음에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은 과거의 미련을 끊지 못하는 연약한 소치일까? 그래도 한 가지 발전한 것은 최근에는 아무리 정들었던 것일지라도 쓸모가 없다고 보이는 것은 사정 없시 버릴 줄 아는 결단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아파트에 산다는 현실이 강요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한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궁핍한 삶을 경험한 터라 검소함이 뼈속까지 배였다. 그래서 아무리 구닥다리 가구라도 버릴 줄 모르고 쌓아 두곤 했다. 우리 아파트와 같은 층에 사진전문 작가인 백인 청년이 독신으로 살고 있어 한두 번 그 아파트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한심한 것은 아파트 입구부터 침실까지 온갖 구닥다리 컴퓨터, 가구가 발을 디딜 틈도 없시 꽉 차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인지 고물창고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모습을 보고 과거의 내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 우리 인생은 버릴 것을 과감하게 버릴 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심지어는 더러운 죄의 모습도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사람들 앞에 하나님 앞에 추한 꼴로 나아가지 않는가? 내 삶에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는 고장난 기계는 없는가, 내가 먹지도 못할 음식 끌어 안고 있다가 썩히는 것은 없는가, 더러운 죄의 모습을 아직도 마음 깊숙히 끌어 안고 있는 것은 없는가?

또 한 가지 마음을 찌르는 사실이 있었다. 내가 만일 저 기계처럼 작동이 멈추는 시간은 언제일까? 그 때는 내가 저 기계를 버리듯이 나도 버리움을 받을 것이 아닌가? "16년이나 신실하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이제 고장났다고 버린다니 말이나 되는가"하고 불평하지나 않을까? "세월이 가다 보니 나도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하고 실소하였지만 삶의 엄연한 진실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나도 저 기계처럼 주인인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신실하게 주신 일터에서 아름다운 음악으로 봉사하다가 육신이 고장나는 날 미련도 불평도 없시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있을까?


맨하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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