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김진태 교수 (Nyack College)
과거 유행한 대중가요중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이라는 노래가 있읍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것처럼 자신을 가두고 있는 땅을 탈출하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노래한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난 제한을 벗어나 아무 속박도 없는 구원의 세계로 탈출하고픈 인간의 본능적 갈구를 노래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필자도 어린 시절부터 주위 여건들이 너무나 답답하여 현실의 껍질을 찢고 탈출하고 싶은 적이 많았읍니다. 가슴에 솟구치는 꿈은 큰데 시골구석에서 찌든 가난이란 새창살에 묶여있는 것같아 몸부림치고 했읍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타고난 제한을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있읍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는 표현 못해도 말할 수 없는 몸부림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소위 현대무용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인간의 갈구를 몸으로 나타낸 소리없는 절규인 것입니다. 이 땅의 중력의 법칙에 묶여서 날아오르지 못하는 육신의 구속. 이 우주의 어떠한 존재도 결국 썩어 없어지게 만드는 썩음의 법칙 즉 죽음의 법칙에 묶여 있는 끔찍한 운명. 전도서 기자가 한탄하였듯이 해아래 새 것이 없는 것이 이 세상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결국은 헛되고 헛되다고 한탄한 그 말처럼 우주만물은 지금 이 시간도 다람쥐 챗바퀴 돌듯 변함없이 죽음의 법칙과 질량불변의 법칙에 묶여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혼자 잘난척 자랑하고 인류문화를 자랑하여도 인간도 결국 이 법칙에서 벗어나고 못하고 움직이는 미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의 현실이라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다른 동물들처럼 인간에게도 그저 본능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버려두시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존재의 비참함을 깨닫도록 생각하는 동물로 만드셨을가요? 차라리 생각하지 못한다면 이 현실이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닐텐데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고귀한 존재이며 죄때문에 죽음의 법칙에 눌려사는 현실임을 보여줍니다. 비록 그 형상이 파괴되기는 하였으나 인간에게 구원의 세계를 추구하는 영적인 감각을 남겨두심으로 이 땅의 법칙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할 수 있도록 길을 허락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땅의 현실에 묶여있지 않고 이 법칙을 초월한 진짜 본향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읍니다.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죽음의 법칙을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에게 죽음을 초월한 세계로 가는 길을 보여 주셨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중력의 법칙을 깨뜨리고 승천하심으로 중력의 법칙에 갇혀서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이 땅을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셨읍니다. 이 땅의 육신을 가지고 천국으로 가심으로 질량불변의 법칙을 깨뜨리셨읍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모든 우주만물에게 밀려왔던 두 가지 법칙 즉 썩음의 법칙과 질량불변의 법칙을 깨뜨리심으로 당초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주님의 창조의 법칙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더 이상 이 땅의 죽음의 법칙에 묶여서 몸부림치지 않고 비록 우리의 육신이 일 순간 즉음을 맞더라도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완전한 본체의 형상이시며 우리 믿는 자의 완전한 본입니다. 믿는 자는 예수님과 이 모든 면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개인적인 구주로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썩을 육신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하여 공중으로 들림받아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의 삶을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천국의 법칙따라 사는 길을 제시하여 주고 있읍니다.
믿음의 법칙은 세상의 법칙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읍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기도를 통하여 나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읍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에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비록 몸이 착고에 채여서 고난중에 있더라고 낙망하지 아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절망이 있을 수가 없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천국을 체험하는 삶을 삽니다.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오늘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는 동안에 결정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날개를 달고, 영원한 생명의 삶을 향해 독수리처럼 힘차게 비상하는 믿음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탈출구없는 절망의 심연속으로 하염없이 허우적거리다 영원한 불구덩이로 떨어지고 마는 허무한 삶을 계속하실 것인지 택하여야 합니다.
과거 유행한 대중가요중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이라는 노래가 있읍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것처럼 자신을 가두고 있는 땅을 탈출하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노래한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난 제한을 벗어나 아무 속박도 없는 구원의 세계로 탈출하고픈 인간의 본능적 갈구를 노래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필자도 어린 시절부터 주위 여건들이 너무나 답답하여 현실의 껍질을 찢고 탈출하고 싶은 적이 많았읍니다. 가슴에 솟구치는 꿈은 큰데 시골구석에서 찌든 가난이란 새창살에 묶여있는 것같아 몸부림치고 했읍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타고난 제한을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있읍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는 표현 못해도 말할 수 없는 몸부림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소위 현대무용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인간의 갈구를 몸으로 나타낸 소리없는 절규인 것입니다. 이 땅의 중력의 법칙에 묶여서 날아오르지 못하는 육신의 구속. 이 우주의 어떠한 존재도 결국 썩어 없어지게 만드는 썩음의 법칙 즉 죽음의 법칙에 묶여 있는 끔찍한 운명. 전도서 기자가 한탄하였듯이 해아래 새 것이 없는 것이 이 세상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결국은 헛되고 헛되다고 한탄한 그 말처럼 우주만물은 지금 이 시간도 다람쥐 챗바퀴 돌듯 변함없이 죽음의 법칙과 질량불변의 법칙에 묶여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혼자 잘난척 자랑하고 인류문화를 자랑하여도 인간도 결국 이 법칙에서 벗어나고 못하고 움직이는 미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의 현실이라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다른 동물들처럼 인간에게도 그저 본능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버려두시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존재의 비참함을 깨닫도록 생각하는 동물로 만드셨을가요? 차라리 생각하지 못한다면 이 현실이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닐텐데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고귀한 존재이며 죄때문에 죽음의 법칙에 눌려사는 현실임을 보여줍니다. 비록 그 형상이 파괴되기는 하였으나 인간에게 구원의 세계를 추구하는 영적인 감각을 남겨두심으로 이 땅의 법칙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할 수 있도록 길을 허락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땅의 현실에 묶여있지 않고 이 법칙을 초월한 진짜 본향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읍니다.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죽음의 법칙을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에게 죽음을 초월한 세계로 가는 길을 보여 주셨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중력의 법칙을 깨뜨리고 승천하심으로 중력의 법칙에 갇혀서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이 땅을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셨읍니다. 이 땅의 육신을 가지고 천국으로 가심으로 질량불변의 법칙을 깨뜨리셨읍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모든 우주만물에게 밀려왔던 두 가지 법칙 즉 썩음의 법칙과 질량불변의 법칙을 깨뜨리심으로 당초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주님의 창조의 법칙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더 이상 이 땅의 죽음의 법칙에 묶여서 몸부림치지 않고 비록 우리의 육신이 일 순간 즉음을 맞더라도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완전한 본체의 형상이시며 우리 믿는 자의 완전한 본입니다. 믿는 자는 예수님과 이 모든 면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개인적인 구주로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썩을 육신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하여 공중으로 들림받아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의 삶을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천국의 법칙따라 사는 길을 제시하여 주고 있읍니다.
믿음의 법칙은 세상의 법칙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읍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기도를 통하여 나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읍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에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비록 몸이 착고에 채여서 고난중에 있더라고 낙망하지 아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절망이 있을 수가 없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천국을 체험하는 삶을 삽니다.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오늘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는 동안에 결정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날개를 달고, 영원한 생명의 삶을 향해 독수리처럼 힘차게 비상하는 믿음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탈출구없는 절망의 심연속으로 하염없이 허우적거리다 영원한 불구덩이로 떨어지고 마는 허무한 삶을 계속하실 것인지 택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