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5) 요시아 똥 누었니? - 2002년 Nyack College 교수
요사이 우리 집 아침인사는 "요시아 똥 누었니?"입니다. 지난 9월 갑작스럽게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온 우리 딸의 아기가 온통 우리 부부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시아는 이제 태어난 지 5개월이 지났는데 출생시부터 허파가 미성숙된 상태로 태어나 딸네 부부와 우리 부부의 기도제목이더니 여러 면에서 성장이 느린데다 특히 변을 보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1주일 이상 변을 보지 않아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아기 아빠가 관장을 시켜서 변을 보게 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낫지, 말못하는 아기가 몸이 불편해서 끙끙거리며 울어 대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안타깝고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시아의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있습니다. 좁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옆방에서 자는 요시아의 일거수 일투족이 눈에 들어오는 듯합니다. 잠을 자면서도 신경이 옆방에 온통 가 있어 요시아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하고 요시아가 울면 딸네 부부와 함께 저희도 잠을 깹니다. 첫 손자라 그러한지 정말 예전에 우리 아이들을 키울 적에도 느끼지 못했던 각별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신기한 일입니다. 그렇게 깔끔한 것만 좋아하던 딸도 요시아를 키우면서 많이 변했습니다. 아기의 몸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가 사랑스럽기만 한 것입니다. 저희도 이제 손주를 키우면서 겨우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아집니다. 아기 요시아가 고개를 가눌 줄 아는 것, 그동안 웃을 줄 모르다가 얼굴에 가늘게 떠올린 미소, 혼자 돌아 누울 줄 아는 변화 하나 하나가 우리의 환성을 자아내는 중대사입니다.
요시아를 돌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쳤던 성경구절들이 이제 우리 마음에 확연히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씀하십니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 (사 49:15-16)
뿐 아니라 시편기자를 통해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고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고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 139:1-5).
이렇게 우리를 감찰하고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젖먹는 자식을 사랑하는 어미의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이유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시되 신묘막측하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하나님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고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하나님이 보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되 여인이 그 젖먹는 자식을 사랑하듯 우리의 연약한 부분, 잘못된 부분을 가리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이로 인해 안타까워하시고 우리의 작은 진보에 박수치시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연약한 자녀에게 더욱 기울어 있습니다. 고통 받는 자식을 키워 본 분만이 이 사랑을 아십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관찰하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우리의 약함으로 인해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는 하나님임을 찬양합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내 연약함을 담당케 하셨슬까요? 요시아를 주셔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