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30
나의 이야기 (25) 꿩 이야기- 1974년 군대 이야기
“소대장님, 오늘은 썩은 부식 말고 뭐 좀 색다른 것 먹으면 어떨까유? 요새 꿩이 지천으로 깔렸는데 그걸로 하지유. 고추장 발라 구우면 맛이 그만이에유.”
부식을 맡은 K 병장이 당시 B GP 소대장이던 B 중위에게 말했다. 그 때가 아마 1974년이었을거에요. 당시 저는 보안사에서 파견병으로 철책선 넘어 GP 근무를 1년반 한 적이 있었어요. 수색중대 소속 일개 소대가 손바닥만한 땅에 철책을 치고 꼭대기에 가건물을 짓고 지하벙커를 만들어서 주둔하는 GP였어요. 소대원을 반으로 나누어 12시간씩 북한군 쪽 경계임무를 수행했지요. 작년에도 꿩고기로 특식을 해 먹었던 경험이 있던 K 병장이 소대장에게 넌지시 허가를 구하려 했던 것이에요.
“거, 자꾸 그러다 걸리면 혼날텐데 너무 자주 함 안 되네.”
소대장이 마지 못한 척 하며 허가했다. 사실 꿩사냥은 어느 GP 나 봄이 되면 하는 것이라, 중대본부에서도 알면서도 눈 감아주는 것이 관례였다.
“야, P 상병은 콩 한 줌 가져다 철조망 밖에 뿌려라. 글쿠, 무전병 니는 지난 번처럼 보고해. 너무 빨리 보고하지 말고 세 발 먼저 쏘고 남 바로 무전 쳐!”
부식으로 나온 콩을 GP를 둘러싼 철조망 앞에 뿌리니까, 사방에서 꿩이 몰려 오는데 어찌나 많은지 꼭 닭장에 닭들이 복작거리는 것 같았지요. 병사들 가운데 특등사수 저격병 세 명이 M16을 겨누더니 한 방씩 쏘는데, 기가 막히더군요. 정확하게 꿩의 머리를 맞추었어요. M16 실탄의 회전률이 너무 높아 몸통을 맞히면 아무 것도 남지 않거든요. 그런데 보니, 실제 잡은 꿩은 다섯 마리에요. 한 방에 두 마리를 잡았던 거지요.
“여기는 B GP, 여기는 B GP, 전방 적 GP 앞 총성 3발 청취 오바!”
무전병이 얼른 무전으로 중대본부에 보고했어요. 잡은 꿩을 끓인 물에 넣어 털을 뽑은 후, 손질해서 잘라 고추장을 발라서 굽는데 그 향기가 온통 GP 를 다 덮었어요. 다들 입에 군침에 돌 수 밖에요.
“야, 이왕 하는 김에 회식 한번 하자. 더덕 따 온 것도 가져 온나. 그거 물에 불려서 같이 구워 묵자. 더덕주도 몇 병 가져오고.”
K 병장의 명에 졸따구 한 명이 얼른 벙커에 가더니 더덕을 가져 오는데 그 크기가 팔뚝만한 놈도 있었다. 또 한 명은 더덕주를 양 손에 들고 왔다. 더덕주는 됫병에 담은 것이라 두 병이면 전 소대원이 한 잔씩은 마실 수 있다. GP 가까운 곳에 더덕밭이 있어서 잠복근무나 작전 나가면 병사들이 더덕을 잔뜩 따와 그걸 말려 두었다가 휴가 나갈 때에 고향에 선물로 가져 가곤 했다. 벙커에 그걸 걸어 놓으면 지하벙커라도 상쾌한 향기가 풍긴다. 그래서, GP 마다 항상 더덕 재고가 수북했고, 더덕을 소주병에 넣어서 담은 더덕주도 여러 병이 있었다. 나중에 폭우가 쏟아 진 후에 더덕밭에 가보니 그게 왕창 지뢰밭이었으나, 더덕에 눈이 먼 병사들은 거기서 더덕 캐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당시 보안부대원이라 항상 소대장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래, 병사들이 구운 꿩고기와 더덕에다 더덕주를 곁들어서 차려 온 점심을 함께 하는데 그 맛을 뭐라 형용할 수 있을까요? 먼저, 꿩고기의 향긋한 맛은 꿩고기를 드셔 보지 않은 분은 몰라요. 꿩고기는 닭이나 오리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특별한 향취가 있어서 감칠 맛이 납니다. 특히 봄에 먹는 꿩고기 맛은 특별합니다. 거기에다 더덕 맛은 또 어떨까요? 이게 팔뚝만큼 굵으려면 적어도 100년은 된 더덕이었을거에요. 왠만한 산삼보다 효과가 나을 거에요. 그런 더덕은 GP 근처 지뢰밭에만 있어요. 거기다 더덕향기가 앙등하는 더덕주의 맛 또한 일품이었어요.
아 생각만 해도 침이 돕니다. 너무 자주 일을 벌리면 위에서 문제가 되니까 그 짓을 1년에 한 두번 했어요. 겨울 내내 썩은 쌀과 부식만 먹다가 꿩고기 구이 맛은 정말 일품이었지요. 다른 병사들이 쏘기에 저도 한번 쏘았다가 꿩은 간데 없고 털만 남았던 기억도 있구요. 군대생활 3년여에 기억에 제일 남는 추억이 바로 이 꿩사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