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6
나의 이야기 (5) 나환자 이야기- 소꾸모티
제가 태어난 곳은 김천시 신음동으로 속칭 소꾸모티입니다. 제가 5살 정도였을 때는가내수공업으로 엿공장을 했읍니다. 밤에 싸래기를 쪄서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거기에 보리를 싹낸 엿질금을 으깨어 넣고 밀봉을 해 놓으면 밤새 엿질금에 있는 효소성분이 발효해서 녹말성분이 당화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그걸 자루에 담아서 자끼로 짜서 달이면 엿이 됩니다. 자끼로 짜면 남는 것이 엿찌기인데, 영양이 풍부한데다 효소성분이 들어 있어서 소화도 잘되기에 아주 이상적인 가축사료에요. 그래서 아침마다 사료용으로 엿찌기를 사러 가축을 치는 분들이 대거 몰려왔어요. 그 중 상당수가 나환자들이어서 저희 집은 그야 말로 아침부터 문디 천지였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근처에 나환자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우리 집 앞 산자락을 타고 산길을 30분 정도 가면 기독삼애원이란 음성나환자촌이 있었는데, 그 분들의 주업이 양돈과 양계였어요. 그 규모가 아주 커서 한국전역에 계란과 돼지를 공급하는 주 공급원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나환자들을 보아도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아요. 저희 부친은 특히 나환자들과 친하셔서 거기서 혼례나 장례나 있음 꼭 초대를 받아 다녀 오시곤 하셨어요. 아버지는 성격이 소탈하시고, 사람을 절대 차별하지 않으셨어요. 막걸리를 좋아하셨는데, 나환자들 동네에 가시면 그 분들과 어울리셔서 먹고 마시며 춤추시는데 거리낌이 전혀 없으셨어요.
제가 가장 존경했던 앞집 김문길 아저씨도 나환자이신데, 옛날 동경제대 의학부 3학년 재학중 나병이 발병하셔서 학업을 중단하시고 집에 돌아오셨어요. 정식 의사면허는 없으셨지만 나환자들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셔서 그 집에도 나환자들이 항상 드나 들었지요. 물론 저희 온 동네 사람들도 이 분의 의료봉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구요. 딸 남숙이는 제 짝이었고, 아들 준태는 손 아래였는데 어느 날 보니 사라지고 없더군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중학교 때부터 외처로 보내 살게 하셨던 거에요. 준태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고 남숙이는 이제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저는 당시 책이 없어 남숙이 책을 함께 보며 숙제를 했어요. 나병도 그저 병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 사진은 김천신문 2017년 11월 21일자 기사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