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27
나의 이야기 (31) 어쩌다가 교수가 되다 – 1995년 사건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도서 11장 1절에 나오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나는 그 의미가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방인에게 선행을 베풀면,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선행이 내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본다.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현재의 내 삶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떠오른다.
얼라이언스 신대원 졸업을 한 학기 앞둔 1995년 어느 날이었다. 내 고등학교 10년 후배였던 한인학생 한 사람이 내게 부탁했다. 들어 보니, 대다수 한인 학생들이 서투른 영어로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을 공부하는 것이 지옥 같으니 좀 도와 달라는 것이다. 자진해서 도와 주겠다고 나서지는 않지만 일단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야박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약점이다. 학생들과 상의한 끝에 빈 강의실을 이용해서 한 주에 두 번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을 한인학생들에게 비공식적으로 가르쳤다. 물론 내게 아무 이득은 없는 일이었다. 한 학기를 봉사하고 신대원을 졸업하고 롱아일랜드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성경으로 박사학위를 하려고 다섯 곳에 지원했으나 이상하게도 (내 생각이었다)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았다. 어정쩡한 상황에 계획에 없던 재충전의 시간을 한동안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노느니 계속 한인학생들에게 봉사하기로 작정하고 졸업 후에도 나약까지 먼 길을 다리 두 개나 통행료를 지불하면서 가서 히브리어, 헬라어 원전 강의를 계속했다. 그 날은 학교의 모슬리 홀에 있는 강의실에서 흑판에 룻기를 히브리어로 쓰고 그 내용을 강해하고 있는데, 누가 문을 열고 들어 와서 내 강의를 한참 관람하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하고 보았더니 당시 신대원 총장이던 폴 부브나 목사와 희랍어 교수이던 해롤드 쉘리 교수였다. 후에 부브나 목사는 교단 총재로 부임해서 두번 연임하다가 갑자기 소천하셨다. 아마 어디서 내가 비공식 강의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신기하고 궁금해서 오셨던 것 같다.
내가 나약대학 한국분교에서 희랍어 두 강좌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후의 일이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서 내가 강좌를 맡았던 그 학기에 당시 뉴욕 산정현 교회에 있던 나약대학 분교를 폐쇄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분교의 학생 12명을 구제하기 위해 1년 시한부로 분교를 다른 곳에서 새로 열기로 했는데, 이를 맡을 디렉터로 학교에서 나를 지명했다. 그래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 데도, 그 이듬 해부터 나약대학 분교를 새로 열어 디렉터 겸 전임 교수로 사역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교수생활이 이제 18년이 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그 때 희랍어 강좌를 부탁 받았던 것도 과거 내가 신대원 학생들에게 희랍어 원전 강의를 했던 것을 아는 분이 나를 나약대학 분교에 소개했기 때문이었고, 나약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교단 총재였던 부브나 총재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진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시간이 남아도 당장 내게 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다. 당장 눈 앞에 사람이 죽어 가도 나와 상관이 없는 극단적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그러한 세상 가운데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축복의 열쇠를 내 밀고 계신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