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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Sep
2nd Day of Seminar on Sept 11, 2012작성자: JintaeKim 조회 수: 727
어제 무리했는지 자다가 종아리에 경련이 일어나 소스라쳐 깨었다. 어제 밤에는 오른쪽 무릎관절이 아파서 혼났는데 이젠 근육까지 문제를 일으킨다. 하루 종일 서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일찍 깬 김에 새벽 5시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늘 강의준비를 했다. 세미나 장소에 오전 9시 30분 정도에 도착해서 준비를 끝낸 후 임 선교사의 인도로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는 성경론을 다룬 후 성경개관을 했다. 학생들이 처음으로 이렇게 체계적인 공부를 하게 되니 다들 흥분해서 열심히 수업에 임했다. 오후 3시에 수업을 끝냈는데 참석했던 지도자 한 사람이 자기 아들의 알레르기 증상과 남동생의 직장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한다. 원래는 심방까지 가려 했으나 세미나 장소에서 기도하고 보내 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오후 4시 밖에 안되었지만 이른 저녁식사를 근처의 러시아 식당에서 간단하게 한 후 두 사모와 함께 시내를 걸으며 간단한 장을 보았다. 러시아 음식은 처음 먹어 보았는데 내가 먹은 것은 감자 갈은 것 위에 소고기 햄버그를 올린 것인데 맛이 괜찮았다. 극한의 추위 가운데서 생존 위주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답게 음식도 기름지고 단순하다. 몽골은 러시아가 80년을 지배한 곳이라 가는 곳마다 아파트와 공공건물은 모두 러시아인들이 건설한 것이다. 벽이 60 센티미터 이상이니 폭탄이 떨어져도 끄떡없을 정도이나 내부는 거칠기 짝이 없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이런 건물들은 수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과는 완전히 철학이 다른 사람들이다. 외양이야 신경 안 쓰고 실속만 챙기는 것이다.
식사를 한 후 근처에 있는 사진가게들마다 들러서 구식 필름 롤을 현상하려 했더니 이제는 디지털 카메라용만 현상이 되지 구식 필름을 현상하는 기계 자체가 없다고 한다. 내가 과거에 사용하던 구식 카메라 두 대와 디지털 카메라 한 대를 몽골지도자들에게 선물로 주려 가지고 왔는데 그 안에 있던 필름을 빼서 그 분들에게 드리고 나서 내 사진을 현상하려 했더니 몽골에서는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세상이 빨리도 변해서 구식 기계를 가진 사람들은 이를 따라 갈 수가 없다. 내일 저녁에는 육개장을 하겠다고 두 사모가 재래시장을 둘러 보려 해서 같이 따라다녔다. 4년 전에 와서 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난전에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염소고기 모두 늘어 놓고 호객을 하는데 어느 고기가 괜찮은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임 선교사 사모도 자신이 없어서 우리 집사람이 골라서 한 덩어리 사왔다. 오다 보니 거리에 소형 트럭을 세워놓고 “애이락” (말젖을 발효시킨 음료인데 약간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으며 쉰 막걸리 맛이 난다)를 파는 양반이 있다. 임선교사 사모께서 볼강에서 온 것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볼강은 이르틴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로 몽골에서 말이 가장 많은 곳으로 이 곳 마유주 맛은 몽골 제일이다. 4년 전 여행시에도 볼강에 들러 그 곳에서 사역하던 제레미네 집에서 잠시 머물렀다. 지나 가는 길에 근처 게르에 들러 애이락을 사서 마셨는데 그 맛이 일미이다. 그래서 애이락을 파는 아저씨에게 맛 좀 보자고 했더니 접시에 한 잔 퍼서 준다. 먹어 보니 임 선교사 집에서 먹던 것보다 맛이 순하고 더 좋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한국말을 하는데 어찌나 유창한지 한국사람과 똑 같이 생겼다. 그래 두 병을 달라고 하니 퍼서 준다. 값은 미화로 3불 정도로 부담이 없다. 두 병을 손을 들고 오려니 안 그래도 장 본 것들이 많은데 들고 가기가 불편해서 비닐 백이라도 하나 달라고 했더니 없으니 그냥 손을 들고 가라고 한다. 몽골은 모든 물자가 다 수입을 해야 하는 것이라 간단한 비닐백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애이락을 담은 병도 콜라, 쥬스를 담았던 플라스틱 병으로 모두 재활용을 한다. 이것도 파라다임 쉽트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배도 채우고 숍핑도 하고 애이락도 한 잔 하고 기분 좋게 산보하며 아파트에 돌아오니 아직도 해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