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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Oct
울란바토르- 이르틴 9월 21일작성자: JintaeKim 조회 수: 1340
밤새 기차를 타고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9시 30분이다. 나 혼자 떨어져서 일본인 오시마와 통역 몽골청년과 같은 침대 칸을 사용했는데 두 사람 다 어떻게나 코를 골아대는지 도시 숙면을 취하지를 못했다. 마침 울란바토르 번화가 극장에서 몽골전역의 교회대표들과 선교단체들이 참여하는 선교대회가 열리는 기간 중이라 잠시 들렀다가 이르틴을 가기로 하고 극장으로 갔다. 몽골에는 현재 500개 교회가 있는데 이들은 2020년까지 3500 개로 늘릴 것을 목표로 잡고 이를 위한 전략을 수립하려고 모인 것이다. 이 숫자는 몽골에 있는 모든 “솜” (고을을 뜻하는 몽골어)의 숫자로서 곧 몽골선교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원래 오늘 임 선교사가 발표를 하게 되어 있었으나 자밍우드에서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서 필드 디렉터인 데니스가 대신 발표를 하였다.
잠시 대회장에서 지체한 후 다시 울란바토르의 매연 속으로 차를 몰았다. 울란바토르의 공기는 언제 와도 호흡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지독하다. 그래서 운전할 때에는 창문을 꼭꼭 닫고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단속을 한다. 선교사들이 울란바토르에 4년 있다 가서 폐를 검사해 보면 하루 4곽 이상 담배를 20년 피운 사람의 폐와 같은 상태로 폐가 망가진다고 할 정도이다. 경제성장이 계속되면서 늘어나는 것은 차량이니 앞으로도 상황은 전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기오염의 주범은 크게 보아 세 가지이다. 하나는 늘어난 차량과 끔찍한 교통체증으로 인한 대기오염이요, 다른 하나는 유연탄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이요, 또 다른 하나는 황당할 정도로 조악한 도시계획과 도로사정이다. 불과 4개월 전에 새로 포장을 했다는 국도가 벌써 걸레처럼 망가지고 패여 져서 운전자가 잠시만 한 눈을 팔면 트란스미션 해먹기는 다반사이다. 이제 며칠만 있어서 다들 난방을 할 것이고 거기서 뿜어대는 연기와 분진이 대기를 얼마나 탁하게 만들지 상상을 초월한다. 1년에 7개월은 난방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몽골이다. 울란바토르 자체가 해발 1351 미터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분지라 매연이 빠져나갈 틈이 없다. 겨울이 되면 운전자가 앞차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온 시내가 검은 분진 속에 침잠해 있으니 이 선교사가 4년 전 부임해서 1달도 안되어 호흡기 장애로 서울로 공수되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왜 지하철은 설치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한국지하철 공사가 울란바토르 지하철 공사를 수주했다고 한다. 사실 지하철을 설치한다고 해도 마구잡이로 건설된 도시여건과 차량숫자를 감안하면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지하철 안은 공기가 오염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나라 대통령이라면 숫제 수도를 좀 더 넓은 평원으로 이전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울란바토르의 대기오염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나도 이번에 호되게 신고식을 했다. 자밍우드와 울란바토르를 왕복하는 기차 속에서 이틀 밤을 지새느라 담배연기에 기관지가 상했는지 울란바토르에 돌아와서도 기침이 멎지를 않는다.
울란바토르의 아침매연에서 탈출하여 이르틴으로 가는 국도 위를 달리니 좀 살 것 같다. 벌써 여러 번 다닌 길이라 이제 울란바토르에서 이르틴 가는 길은 별 감흥이 없다. 울란바토르의 교통체증 때문에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니 벌써 정오가 다 되었다. 밤이 되어야 이르틴에 도착할 것이고 우선 허기는 면해야 하겠기에 어디 아무 데나 쉬어서 밥을 먹고 가자고 했더니 임 선교사께서 잠시만 기다리면 항상 쉬어 가는 곳에 도착하니 기다리라고 한다. 어딘가 했더니 지난 9월 8일 우리가 도착하던 날 이르틴으로 가던 도중에 게르에서 눈을 붙였던 Secret History로 빠지는 길목이다. 주위에는 큰 감자 밭이 있어서 한창 감자수확을 하고 있고, 제법 큰 연못도 있어서 가축들이 한가로이 목을 축이고 있었고 목동들이 말을 타고 짐승 떼를 몰고 있다. 길이 비포장도로인지라 먼지를 덜 먹으려고 옆으로 빠져 나왔는데 막상 자리를 깔려니 오물이 없는 곳이 없다. 그래도 조금 상태가 나은 곳에 자리를 펴고 가지고 온 밥과 반찬을 먹으니 그야 말로 광야의 식탁이다.
가끔씩 오가는 감자수송 트럭들이 선사하는 먼지를 덮어쓰기는 했으나 맛있는 식사를 끝내고 다시 이르틴으로 향했다. 임 선교사가 한참 운전을 하는데 김동욱 목사가 자원해서 운전대를 잡겠다고 해서 임무교대를 했다. 지금까지는 경찰단속이 심해졌는지 가는 곳마다 불심검문이 있어서 몽골면허가 없는 우리가 차를 몰 수가 없어 임 선교사가 혼자 운전하다시피 했다. 몽골 제2도시인 다르항에 거의 다 왔을 즈음이다. 아뿔싸 김동욱 목사가 운전대를 잡은 지 20분이나 되었을까. 경찰이 차를 세우더니 면허증과 등록증을 내놓으라고 한다. 일단 김목사에게 아무 말도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서 운전석 옆에 앉았던 임 선교사가 면허와 등록증을 제시했다. 임 선교사의 면허는 그 동안 색깔이 바래기도 했고 안경도 끼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안경을 끼고 있었고 김목사는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경찰이 면허증과 김목사의 얼굴을 대조해 보더니 경례를 하더니 가도 좋다고 한다. 김목사의 얼굴을 면허에 있는 임 선교사의 얼굴로 착각한 것이다. 외국인이 국제면허 없이 운전하다 적발되면 일단 경찰서로 끌려가야 하고 한번 끌려가면 언제 풀려날지 막막해지는데 두 사람의 얼굴형이 비슷하고 때깔도 비슷했기에 대형사고를 면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내가 운전대를 잡을 기회는 완전히 박탈 당했다. 내 생김새가 워낙 독특해서 걸렸다 하면 그대로 경찰로 끌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르틴에 도착하니 저녁 7시 30분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짐을 풀고 오랜만에 침대에서 눈을 붙이니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