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먹었던 낙타젖으로 만든 에이락이 너무 진했던지 속이 불편하여 새벽녘에 잠을 깨어서 설치다가 6시에 포기하고 일어나서 근처를 산보했다.어제 밤은 깜깜한 어둠 속에 입성한 터라 어디가 어디인지 감을 못 잡았는데 아침에 보니 학교건물, 통신센터, 커뮤니티 센터 건물, 유치원 건물 등이늘어선 도시의 중심이었다. 이 도시는 원래 러시아 공군에서 중국 공군의 비행기 이착륙을 감시하기 위해 국경인근에 만든 신도시로 러시아인들만 살았던 곳이라 했다. 그래 사방에 보이는 건물들이 모두 러시아 시대의 산물이다. 건물 한 군데에는 하탄볼락 60이라 벽에 크게 쓰여 있었다. 약 25년전 러시아 인들이 철수한 후 몽골인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고 특히 젊은이들이 많으나, 근처에 군 부대 하나가 있는 외에는 직장도 없고 주정부 지원도 거의 없는 도시라 참 살기가 각박한 곳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타 도시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무당도 없고 교회도 없는 영적공백의 도시라 복음에 갈급한 영혼이 많다는 사실이다.
자밍우드 교회 지도자인 뭉크가 이른 아침부터 나가서 경찰에 문의했더니 마음껏 전도해도 좋다고 한다고 했다. 특히 뭉크처럼 나이든 여자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으니 걱정말고 사람들을 만나라고 했다. 뭉크의 계획은 여기 사는 자매들 대부분이 중국 이롄에 물건하러 자주 왕복하니까 자밍우드에서 이들을 만나 훈련시켜서 이 곳에 교회를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뭉크는 정말 훌륭한 교회개척자이다. 처음 온 지역이라도 금방 이곳 복음화 전략이 머리 속에 짜여지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행동하는 믿음의 소유자이다. 사실 이번에 우리와 함께 온 몽골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왕년에 쟁쟁한 리더 역할을 감당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개성이 강해서 임선교사께서 조율을 해 주어야 한다. 이들이 가진 리더로서의 장점을 잘 살려서 힘을 합쳐 최상의 효과를 내는것, 그것이 선교사의 임무이다.
아침 7시 30분에 함께 예배를 드렸다. 강사는 내 몫이라 사도행전 4장 24절에서 31절 말씀을 가지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라고 격려했다. 간단한 조반 후에 짝을 지어서 내 보냈더니 잠시 후 돌아와서 하는 말이 하나같이 이 지역사람들은 복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고 기뻐했다. 근처에있는 병원에 갔던 에스더 선교사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의사 선생도 우리의 방문을 너무 기뻐한다고 했다. 작년 한국에서 치과의사들이 와서 이병원에서 무료진료를 했다고 하며 한국인이라니까 그렇게 좋아한다고 했다.
임선교사와 내가 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누가 찾아 왔다. 이 곳의 시장, 변호사, 학교선생을 겸임한다는 터무르뭉크란 남자였다. 임선교사께서복음을 전하려 했더니 그건 다 아니까 그만하라고 했다. 임선교사 얘기가 이 사람 우리한테 뭐 좀 얻어 가려고 온 사람이지 전도 받으러 오지는않았다고 한다. 어찌됬든 예수 믿지 않으면 죽어 지옥 간다고 확실하게 얘기해 주고 전도지를 주었으니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외국인이 전도여행을 오면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복음에 관심이 있지 않고 무어 얻어 먹을 것 없나 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이것이 외국인인 우리가 전도하는 사역의 한계이다. 그러나 몽골지도자들이 전도하면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터부르뭉크가 나가고 나니 지도자 뭉크가 전도하러 갔다 와서 신나는 어조로 보고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무언가 변화를 갈구하고 있다. 가게에서 할머니 한 분을 붙들고 전도를 했더니, 그 할머니가 말했다.
“몽골에서 사는 삶은 너무 힘든데 몽골을 구원할 신은 하나도 없다.”
직장도 없고 소망이 없이 젊은이들이 밤이나 낮이나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곤 한다. 얼마 전에는 음주사고로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다 했다. 거기에다 쥐꼬리만큼 나오는 정부보조는 지방지도자들이 몽땅 제 주머니나 채우고 주민들에게는 아무 혜택도 돌아가지 않는다. 얘기를 들으니 선교사들이 처음 왔을 때 한국의 상황과 어찌 그리 같은지 모르겠다.
얼마 있으니까 이번에는 바일마그네라는49세된 자매 한 사람이 찾아왔다. 물어 보니 이 곳에서 예수를 믿는4명 가운데 한 명이라고 했다.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는 않기에 혼자서 성경말씀 보며 신앙생활을 해 왔다고 했다. 심장병, 고혈압, 두통, 무릎통증이 있어 고생하고 있다며 기도해 달라고 했다. 얼굴을 보니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러한지 나이에 비해 한참 더 늙었다. 자녀들은 외지로 떠나고 혼자서 사는데 그 삶이 고달프기 짝이 없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술취한 사람이 자기 집에 와서 집을 온통 부수어서 이제는 집에서 살기가 불안하다고 했다. 소원은 칸보그드로 이사 가서 그 곳에 있는 큰 교회에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임선교사의 요청으로 내가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해 주니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임선교사께서 다음 전도여행때 그 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자도 되냐고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기쁘게 응낙했다.
이 자매가 나가자 마자 이번에는 군인 세 사람이 찾아왔는데 보아하니 대낮인데도 술이 잔뜩 취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기도요청을 했다. 현재41살의 군인인데 알콜중독으로 고통받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중독에서 해방시켜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우선 임선교사께서 전도지를 주며 복음을 전한 후 손을 얹고 기도해 주는데 전도 나갔던 다브가이 목사와 어기가 들어와서 사연을 듣고는 또 이 사람을 붙들고 말씀을 전하고 기도해 주었다. 이 두 지도자 모두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다가 예수 믿고 변화받은 사람들이니 이 군인의 입장을 십분 잘 이해하는 것이다.
군인이 나가자 마자 이번에는 아까 에스더 선교사가 만났던 의사가3명의 믿는 자매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부탁했다. 얼마나 예배를 드리고 싶었으면 이렇게 찾아왔을까 생각하니 애처럽기 짝이 없다. 그래 임선교사께서 이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 영접기도까지 시킨 후에 성찬예배를 드렸다. 이틀 후 자밍우드에 도착한 후 우리는 이 만남이 하나님의 안배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 여자의사는 이름이오트고로서 자밍우드 교회의 오른칙칙(줄여서 오르나로 부른다)이란 성도의 언니의 딸이었다. 오르나도 자밍우드에 오기 전에 이 곳에서 국민학교 교사로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룻 밤을 묵었던 조칟보달의 여주인 오흐나도 오르나의 친척이라 하니 참 인연의 끈은 길다. 앞으로 하탄볼락에 교회를 개척할 인연이 이미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고비 오지에 무작정 뛰어든 우리에게 곳곳에 미리 인연을 안배해 두셔서 사역을 할 수 있게 하셨다. 이렇게 고비까지 차를 몰고 오지 않았으면 이런 인연을 어떻게 맺을 수 있을 것인가? 선교는 발로 하는 것이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현지에 가서 겪어 보지도 않고 책상 앞에 앉아서 입으로만 방방대는 사람은 결단코 이런 하나님의역사를 체험할 수 없다.
성찬예배를 드리고 나니 그새 조칟보달(여관)에서 떠날 정오가 되었다. 차에다 짐을 싣고 조칟보달에서 제공하는 양고기 수프에 국수를 말은 것을 대충 먹고 오후1시에 다음 목적지인 훕수굴로 출발했다. 원래 조칟보달은 숙박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식당도 겸한다. 국수를 보니 만두처럼 생긴 것들이 밑에 있어 만두 국수국인가 해서 입에 넣었더니 모두 기름덩이였다. 내가 평소에 절대 먹지 않는 것들이지만 이걸 먹지 않으면 한 끼 그대로 굶을 수 밖에 없으니 기름덩이만 가려내고 먹는데 국수가 익지도 않은 생짜였다. 값도 한 그릇에4500 뚜구루이니 이 곳 물가로는 고가이다. 식사를 한 후 하탄볼락을 벗어나면서 표지판을 보니 훕수굴까지는75 킬로라고 했다. 당초에 어기가 차를 몰았으나 다브가이 목사가몰고 싶다고 해서 한 시간 후 차를 세우고 운전사 교대를 했다.
햇빛은 뜨겁게 비치는데 길은 모래길이었다. 메마른 사막길을 가는데 먼지도 많이 나고 처음으로 푸르공을 모는 다브가이인지라 앉아 있는 우리가 몸으로 길을 느낀다. 훕수굴은 원래 어기가 러시아 군 공군장교로 근무하던 곳이라 익숙한 곳이라고 어기가 좋아했다. 가는 동안 나는 이 친구들 말마따나 삭아서 그러한지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몽골 말로도 몸이 피곤하여 녹초가 된 상태를 삭았다고 한다. 그래 임선교사께서 김박시도 삭았다고 하니 다들 낄낄거리며 “김박시 삭았다”를 반복했다.
2시50분에 훕수굴에 도착하여 우선 지도자들을 내보내어 현지실정을 파악하는데 너무 날씨가 더워서 그러한지 사람들이 통 보이지 않았다. 그래 포기하고 다음 목적지인 울란바드라흐로 바로 가려 하는데 마침 뭉크의 연락으로 근처 교회에 다니는 자매가 한 사람 찾아 왔다. 43세된 자매인데 나이에 비해 얼굴이 많이 상했다. 자기 게르로 우리를 인도해서 들어갔더니 수태차를 내오는데 그 맛이 어찌나 역한지 비위 좋은 나도 반 밖에 못 마셨다. 게르 안이 지금까지 방문했던 어떤 곳보다 누추한데다 남편이란 사람은 손님을 앉아서 맞는데 입에는 썩은 담배를 피우느라 옆에 앉기가 괴로웠다. 정말 무례하고 도리를 모르는 개망난이이다. 이 가정에서 아주머니만 예수를 믿는 것 같았다. 이런 남편을 섬기며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며 신앙생활을 하는 자매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자매 한 사람과 청년1명이 합류해서 성찬예배를 급조해서 드렸다. 임선교사께서 요한복음3장을 돌아가며 함께 읽게 하고 그 내용을 설명한 후 성찬예배를 드리는데 이 분들 한번도 성찬식을 해 본 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례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니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해 보지 않은것이다. 이렇게 모여서 예배드리는 교회가 네 곳이 있으나 사역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이 교회 지도자는 현재 울란바타르에 볼 일 보러 가고 없다고 하니 우리가 무턱대고 세례를 주고 갈 수는 없어 성찬식만 드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성찬예배를 드리고 난 후 훕수굴에서 기름을 채우고 오후4시 경 다시 다음 목적지인 울란바드라흐로 출발했다. 차가 과열되는 경향이 있는지라 가다가 자주 쉬기로 했다. 한 시간여를 더 달리는데 오른 쪽에 왠 사람이 오토바이에 짐을 잔뜩 싣고 가고 있고 소년 한 명은 말을 타고 왔다. 우리가 불러서 길도 묻고 전도지도 전하면서 잠시 교제하면서 짐이 무어냐고 물으니 낙타똥을 담은 자루들이라고 했다. 광야에 있는 것이라곤 거친 풀 밖에 없으니 연료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인데 낙타똥은 화력이 엄청나게 센 양질의 연료로 쓰인다. 그래서 그 가격이 상당히 비싼 연료이다. 우리는 똥이라고 더럽게 여기지만 이들에게는 귀중한 연료이다. 같은 물건도 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항상 입장을 바꾸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하는 것, 성도의 삶의 기본이다.
약 한 시간여 더 차를 몰다가 저녁6시에 다시 차를 세우고 광야의 휴식을 즐겼다. 남은 빵조각으로 저녁을 떼우고 광야를 거닐며 거기에 사는 동식물들을 바라 보는데 참 마음이 평안했다. 발 앞에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기에 보니 도마뱀이었다. 괌에서는 게꼬라고 해서 습하고 무더운 지역에사는 놈을 항상 만나는데 고비 사막처럼 메마른 곳에는 비슷하게 생겼으나 다른 종류의 도마뱀이 생존하고 있다. 바닥을 유심히 살펴 보니 이 사막에도 생명은 충만하다. 새카만 딱정벌레처럼 생긴 벌레도 기어 다니고, 바닥에 이런 벌레들이 뚫은 작은 구멍이 무수하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땅속에 안식처를 마련한 각종 벌레들의 작품인 것이다. 그나마 식물들이 뿌리를 내린 곳은 사막의 모래가 이동해도 이동을 않고 구릉을 이루고 있다. 이 구릉은 상대적으로 땅속도 시원한지라 특히 많은 벌레들이 구멍을 도처에 파고 살고 있다. 벌레들이 구멍을 많이 파 놓았으니 어쩌다가 비가 오면 수분이 많이 땅으로 흡수되어 식물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니 그야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상부상조하는 자연의 미덕이다.
식물도 대부분이 작달만한 거칠고 메마른 풀이지만 그 가운데 앙증맞은 꽃송이를 가득히 담고 있는 식물도 도처에 보였다. 거친 사막이지만 그가운데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는 식물을 두셔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솜씨가 놀랍지 아니한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꽃을 피우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이 아닌가? 이런 성도들을 세우고 주님의 교회를 세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하는 것, 그것이 전도자의 사명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광야를 거니노라니 이렇게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단순한 삶을 사는 유목민의 삶도 좋은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차를 한 시간 여 모니 광야의 정경이 바뀌었다. 그동안은 거친 들판과 바위로 뒤덮인 작은 봉우리들이더니 어느새 제법 풀밭이 형성된 초원지대 비슷한 동네가 나온 것이다. 7시15분에 도착해서 근처 가게로 가니 숙박시설이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근처에서 이렇게 우리처럼 전도여행 온사람들이 묵곤 한다는 집에서 두당1만뚜구르에 자고 가도록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이름이 “나사”란 예수 믿는 젊은 자매인데 남편은 사고로 죽고 혼자 직장에 다니며 평소에는 자기 사는 집을 손님이 있으면 숙박시설로 내놓는다고 했다. 이틀 후 자밍우드에 와서 우리는 이 나사라는 자매와의 인연 또한 하나님의 안배였음을 알게 된다. 하탄볼락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린 여자 의사 오트고는 자밍우드 교회 오르나의 언니의 딸이고, 울란바드라흐의 나사는 오빠의 딸이었다. 오르나는 이미 우리 교단 다르항 신학교에서 최우수생으로 교육을 받은 자매이니 오르나를 하탄볼락과 울란바드라흐에 보내어 하탄볼락의 여의사 오트고와 조칟 보달 여주인 오흐나, 그리고 울란바드라흐의 조칟 보달 여주인 나사로 하여금두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모두 친척지간이니 대화가 순조로울 수 밖에 없다. 특히 오르나는 하탄볼락에서 나사의 국민학교1학년 담임이었다. 대략 구체적인 교회개척전략이 이렇게 수립되었다.
작년에 이 곳에도 한국 치과의사들이 이 곳에도 와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 때 이 곳에서 묵었다. 아마 하탄볼락에 와서 봉사했다고 하는 치과의사들이 이 곳에도 왔었나 보다. 방이 하나밖에 없고 침대도 넷 밖에 없어 여자들만 방에서 자도록 하고 남자들은 두 사람은 차에서 두 사람은 가지고 온 등산용 텐트에서 자기로 했다. 이젠 차안에 자리를 펴고 자는 일이 익숙해졌다. 아직 잠자기에는 일러서 화장실이 어딘지 물어 화장실로 갔다. 재미 있는 것은 화장실은 모두 마을에서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여러 개가 모여 있고 잠을쇠가 잠겨 있다. 화장실 별로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다. 화장실이 모인 곳이 자연스럽게 광장의 모습을 띄었고 그 위로 북두칠성좌가 뚜렷이 보인다. 광야 가운데 서서 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무리를 보노라니 내 마음이 아련한 향수에 젖어들었다. 어린 시절 마당 평상에 누워서 하늘을 보던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내일은 이곳에서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우고 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