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자밍우드 교회의 주일예배와 울란바타르 여정
간밤 살풋 잠이 들었다가 내 방 바로 옆에서 왠 여인이 미친 여자처럼 1시간 이상 악을 쓰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잠을 깨었다. 밖에 나가서 한 소리 하려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참고 있는데 도시 끝날 기미가 없었다. 아침에 깨어서 임선교사 방에서 조반을 먹으면서 물어보니 이 분들은 어찌나 피곤한지 그 소리도 못 듣고 골아 떨어지셨다고 한다. 그래 조칟보달(숙박업소를 가리키는 몽골어) 종업원에게 물어 보니, 간밤에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서 이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을 알고 아내된 여자가 조칟보달에 와서 물었는데 그런 사람 없다고 했더니 이를 믿지 않고 2층에 올라와서 그렇게 1시간 동안 악을 쓰다가 돌아갔다는 것이다. 아내를 버려두고 다른 여자와 동침한 남편이란 작자는 방에서 꼼짝않고 다른 여자와 동침을 하고 갔으니 참 기가 찬 일이었다. 이래 저래 자밍우드란 도시는 타락의 도성이다. 거리에는 초저녁부터 환락을 찾는 중국인들을 호객하려고 몸파는 여인들로 득시걸거린다. 그러다 보니 온전한 가정이 많지 않다. 꼭 자밍우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몽골사회의 전체의 문제이다. 결혼을 해도 남자나 여자나 정조개념이 약하다. 특히 남자들은 아무렇게나 다른 여자에게로 떠나곤 한다. 깨어진 가정이 도처에 즐비하다. 심지어는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드물지 않다.
아침 7시에 간단한 식사를 하고 짐을 싸 조칟보달을 떠날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울란바타르까지 장거리를 뛰어야 하기에 차의 상태를 점검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앞 오른 쪽 바퀴에 못이 박혀 있었다. 지금까지 삼천 킬로 이상의 험한 길을 타이어 문제없이 자밍우드까지 올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바퀴에 못이 박혔는데도 타이어가 터지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비록 여분의 타이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막 한 가운데서 일이 터졌으면 모래 위에서 타이어를 갈아 끼워야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 해 본 사람은 안다. 거기에다 프루공은 타이어가 터지면 그대로 차가 뒹굴기 때문에 위험하기 짝이 없다. 조칟보달의 시멘트 바닥 위에서 타이어를 갈아 끼우니 절로 감사가 나왔다. 타이어를 바꾸기에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타이어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도 문제가 발견되었다. 그래 임선교사께서 가져온 각종 공구 셋를 꺼내고 바닥에 까는 매트까지 꺼내는데 이 정도면 왠만한 정비공장 수준이었다. 이것이 임선교사의 장점이다.
비록 자동차 정비사는 아니지만 차에 대해 미리 공부를 철저히 해서 수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공구와 다른 도구들을 차에 갖추고 있었기에 이런 일이 생겨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지도자들이 임선교사를 더 존경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이런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사막에서 차에 문제가 생기면 대책이 없다. 꼼짝없이 다른 차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는데 우리가 경험했듯이 다른 차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럼 남는 것은 사막에 뼈를 묻는것 밖에 없다. 그래서 고비를 여행할 때는 차 한 대로 가지 말고 두 대에 분승하고 가라고 한다. 유사시에는 성한 차 한 대에 엎어서 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편에 두 대를 가지고 갈 여유가 없으니, 더 철저히 준비하는 수 밖에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어디를 가든 준비를 철저히 하라!”
선교사의 좌우명이다.
차 수선을 끝내고 걸어서 자밍우드 교회로 가려고 하는데 에스더 선교사가 종업원과 몇 마디 대화하더니 우리에게 와서 중요한 정보를 건넸다. 이 종업원도 주인과 마찬 가지로 오르나의 친척으로 하탄볼락 출신이다. 하탄볼락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렸던 의사가 엄마에게서 핏덩이인 자기를 받아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자매에 의하면 우리 교회 바로 옆에 새로 건물이 하나 들어 섰는데 그게 바로 이 근처에 중앙난방과 온수공급을 할 중앙 보일러 시설이란 것이다. 이 말은 이 일대를 자밍우드 시에서 수용해서 큰 아파트 단지로 바꿀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아주 좋은 정보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자밍우드 교회를 크게 개수해서 교회를 확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자밍우드 교회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원래 계획대로 교회를 세우려면 이를 3층건물로 새로 올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비용이 사십만불 이상이 더 들어간다. 그래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아 일단 추가 시설은 하지 않고 현재의 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이번에 고비여행을 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안배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원래 고비전도여행은 임선교사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원래는 내가 도착하면 바로 아르항가이에 새로 교회를 개척작업 중인 지역으로 전도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는데 내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상황이 급변했다. 그 지역에 가축 전염병이 돌아 정부에서 출입을 통제하여 우리가 갈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임선교사께서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이 고비전도였던지라 이 기회에 고비로 갈 것을 결심하고 마음 내켜하지 않는 에스더 선교사를 설득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이멜을 점검하니 고비 교회개척비 사천불이 선교필드구좌에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절묘할 수가 있을까?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고비로 인도하시는 표적이 아니면 무엇이 표적이겠는가? 이렇게 되어 지도자들 다섯 사람을 급히 소집하여 고비전도팀이 형성된 것이다. 지도자들은 다들 이에 순종하여 모든 일을 제쳐놓고 합류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뜻을 주시고 그 뜻대로 순종할 때에 예상치도 못한 복을 무더기로 내려 주신다.
자밍우드에는 우리 교회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뭉크의 집의 일부를 교회가 인수해서 세운 기존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사막에 새로 세운 게르 교회이다. 사막의 게르교회는 뭉크의 손녀인 오클로가 맡아 아이들 30명을 데리고 예배를 드린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뭉크의 자밍우드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뭉크의 교회로 갔다. 가는 길에 보일러 시설이 있는 건물신축현장에 들르니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중국인들이었다. 몽골은 중국인들이 아니면 쓸 만한 건축공사 하나 하지 못한다. 숙련공도 없어 인부도 중국인들이 감당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이 몽골어를 하지 못하여 짧은 중국어로 인사를 나누고 안에 들어 가 보니 정말 거대한 보일러 시설이었다. 이것이 자밍우드의 미래의 모습을 예견하게 하는 지표이다. 이제 머지 않아 자밍우드도 현대식 아파트와 건물이 들어선 현대식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다.
오전 11시 예배를 임선교사의 인도로 시작하는데 모인 사람이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어제 국경 너머 이롄에 물건 사러 갔던 사람들이 국경이 일찍 닫혀서 돌아 오지 못한 연고였다. 이것이 몽골교회의 한계이다. 비록 예수 믿고 교회는 나오지만 교회가 최우선순위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최우선순위는 자녀들과 돈버는 일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상충되면 당연히 예배를 빠지곤 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믿음생활이 아직 일천하니 이해할 수 밖에 없지만 이를 보는 선교사의 마음은 씁쓸하다.
이번 여행동안 말씀은 내 몫이라 마가복음 16장 15절에서 20절로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니 지도자 뭉크가 강한 도전을 받았다. 그래서 하탄볼락과 울란바드라흐 두 곳의 연결고리인 오르나를 바로 두 도시로 보내어 교회개척을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말씀을 듣고 즉시 실천에 옮기는 것, 이것이 바로 뭉크의 장점이다. 이로서 우리의 고비 선교여행이 구체적인 교회개척작업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이다. 오르나는 이미 다르항 신학교에서 교육까지 수료한 우수하고 신실한 일꾼이니 하탄볼락과 울란바르다흐에 사는 친척들을 모아 두 지역에 교회를 시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떠나려 하는데 뭉크가 세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들에게 세례 주기를 원했다. 그래 임선교사가 이들의 신앙을 점검하니 자매 한 사람만 준비되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아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 사람만 세례를 주고 나머지는 풍요로운 삶 교재를 마친 후 다음에 세례를 주기로 하고 교회를 떠났다. 임선교사는 앞으로는 세례를 더욱 신중하게 선택적으로 베풀어야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임선교사께서 자밍우드에서 세례를 베푼 사람이 120명이 넘는데 이 가운데 교회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사람의 수는 40 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가운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 사람도 많이 있다. 투메나 길오뜨처럼 다른 도시로 가서 교회를 개척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도 제법 된다.
자밍우드 역에서 역전풍경을 감상하며 이롄에 갔던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뭉크가 자밍우드 교인들을 데리고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어제 내게 복통때문에 안수 받았던 오르나도 함께 왔다. 멀쩡하게 기가 살아서 다니는 것을 보니 복통이 사라졌나 보다. 뭉크가 에스더 선교사를 통해 명자와 내게 주라고 선물을 주는데 모두 캔디 종류이다. 뭉크는 내가 올 때마다 반드시 선물을 준다. 작년에는 명자에게 전해 주라고 몽골전통 조끼를 하나 선물했는데 아내가 그 조끼에 몸을 맞치느라 그동안 열심히 살을 뺐는데 이제는 맞을 지 모르겠다. 매년 와서 자신을 가르친 선생이라고 섬기려는 마음이 감사하여 선물을 받았다. 갈 길은 급한데 이롄에 간 차가 오지 않아 애를 태우게 하더니 기다린 지 1시간이 지나서야 우리 일행을 태운 다 떨어진 러시아제 택시가 도착했다. 운전수는 40세된 오트나성이란 자매인데 인상이 좋은 자매였다. 짐을 다 옮겨 실었으니 바로 출발해야 하는 상황인데, 자기 게르에다 차를 세우더니 들어와서 수태차 한 잔하고 가라고 권했다. 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이럴 때 거절하면 실례이다. 들어 가서 수태차를 얻어 마시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자매와도 인연이 있다. 자밍우드 공산당 서기장을 지냈던 자밍우드 교회 교인 촐랑바타르가 아내 투메를 따라 쉬브곱으로 가면서 이 자매에게 자신의 차를 빌려주어 영업용으로 쓰게 한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울란바타르 올라가는 길에 쵸이르와 쉬브곱을 들러 두 곳의 교회 지도자들을 격려할 계획이었는데 계획이 바뀌어서 이번에는 들르지 않기로 했다.
세상 이치야 다 일반이지만 몽골에서는 인연 하나 하나를 특히 소중히 여겨야 한다. 유목민의 특성상 이사하는 것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람도 몇 마디 나누어 보면 다 연줄 연줄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인연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가꾸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서 낭패를 당한다. 반면에 인연 하나를 잘 엮어 놓으면, 고구마 줄기를 당기면 줄줄이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이 전도가 쉽게 이루어지고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인간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번 보면 말 것처럼 생각하고 인연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참 불쌍한 인생이다.
원래는 하탄볼락 조칟보달 주인 오트고를 생산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나누려 했는데 아무래도 우리 생각대로 되지 않겠다. 시간이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우리는 자밍우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래 저래 오늘 여정이 만만치 않아 생산에 가서 바로 전화기와 충전기만 받고 헤어져야 할 것 같다. 거기에다 내일 월요일은 학교개학일이라 울란바타르의 교통체증이 끔찍하기 때문에 울란바타르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보고 떠나기 어렵다. 또한 9월 2일은 짝수일이라 우리 차를 운행할 수 없으니 잘못하면 울란바타르에서 이틀을 오도 가도 못하게 생겼다. 숙소를 예약해 놓지도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고약했다. 그래서 여정을 바꾸어 생산에 들러자 마자 바로 울란바타르로 돌아가기로 했다. 울란바타르 시내로 가 보았자 오늘 밤 잘 곳도 없기에 중쌀라 유니스네 게르로 가기로 했다.
오후 2시 20분이 되어서야 자밍우드를 떠나서 시간 반을 달리니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이 메마른 땅에 내리는 비는 하늘의 축복이다. 이번 길은 우리가 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한 후부터 날씨가 흐려졌다. “구름과 비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 이름이 근사하지 않은가? 생산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오후 5시 40분이었다. 전화기, 충전기 전달 받고 오후 6시에 울란바타르로 향해 출발하는데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울란바타르에 가면 더 춥다고 해서 복장을 긴 팔, 긴 바지 가을모드로 바꾸었다. 작년에는 이맘때 울란바타르에서 눈벼락을 받았었다. 임선교사네가 거주하시는 이르틴은 이미 기온이 늦가을 수준이고 9월 둘 째주에는 초겨울 날씨로 바뀐다고 했다. 금년 2월 추운 날씨에 겨울 코트를 입고 집을 떠났는데 괌에서 6개월간 태평양의 무더위 속에 땀을 쏟았다. 이번에는 몽골에 도착하자 마자 고비사막의 먼지와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 속에 진을 다 뽑았다. 이제는 다시 겨울옷을 꺼내 입고 이르틴에서 사역하게 되었다. 참 이번 나그네 길은 변화도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산에서 울란바타르 올라가는 길은 포장이 대체로 잘되어 몽골 길 같지 않은 것이다. 중국인들이 최근 포장을 했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버틸는지 두고 보아야 한다. 몽골의 도로상태는 어느 나라 회사가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회사가 맡은 길은 중국회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다. 생산을 떠난 지 삼십분이 지나니 드디어 우리 눈 앞에 거대한 관문이 나왔다. 바로 도르노 고비 관문이다. 이렇게 도르노 고비를 떠남으로 칠일간의 고비 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울란바타르까지 가려면 아직도 9시간은 족히 달려야 한다.
아마도 새벽 2시 반이 넘어야 유니스네 게르에 도착할 것이다. 세 사람이 교대로 운전대를 쥐며 마지막 기운을 다 뽑다 보니 벌써 시간이 새벽 3시가 넘었다. 그제야 중쌀라 유니스네 게르에 도착해서 지친 몸을 누이니 이로서 고비여행의 긴 삼각형의 마지막 변을 완성하고 출발점으로 돌아 왔다. 몽골에 벌써 다섯 번째 오지만 몽골인의 집으로 사용하는 게르에서 자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에 묵었던 게르는 모두 숙박시설용 게르였다. 주인인 유니스도 우리와 함께 여행을 떠나온 터라, 게르에 냉기가 가득해서 유니스가 연기를 잔뜩 피우며 불을 붙이더니 석탄을 넣어 난방을 준비했다. 잠시 지나니 안이 따뜻해 지고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게르라는 시설은 정말 몽골인의 지혜의 산물이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삽시간에 난방이 되고 열효율도 좋다. 삼십분이면 조립할 수 있다 하니 겨울동안 25번 가까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들에게 가장 적합한 구조물이다. 피곤에 쩔은 몸이 녹기 시작하고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제 잠시 눈을 붙이고 이르틴으로 먼 길을 가야 한다. 이번 이르틴 행은 마침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몽골 방문과 기간이 겹쳤다. 푸틴은 2년전 만료되었던 이르틴 동광산 개발권을 40년간 갱신함으로 몽골과의 끈끈한 형제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번 방문으로 15개 부문의 협정을 체결함으로 몽골을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끌어 안으려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관계가 악화된 시점에서 푸틴은 과거 공산권인 몽골 끌어 안기에 들어 간 것이다. 몽골정부는 가만히 앉아서 러시아 회사가 운영하는 이르틴 광산에서 매년 6억불의 순익을 챙긴다. 과거에는 몽골 모든 공무원을 먹여 살린 것이 바로 이르틴에서 들어 오는 수입이었다. 러시아의 몽골투자 중 가장 큰 것이 이르틴 동광산이라 푸틴이 이르틴을 방문할 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푸틴의 안전을 위해 저격수들이 이르틴 곳곳에 배치되어 경계가 삼엄했다. 우리가 고비전도여행 중 들렀던 오양톨고이 동광산의 동도 어차피 중국이 그 구매선이니, 남부 고비에서 나는 자원은 중국이, 북부 이르틴에서 나는 자원은 러시아가 나누어 가지는 셈이다. 내가 남고비 타룬톨고이의 위성도시인 촉칙칙을 방문했을 때는 중국의 시진핑이 타룬톨고이를 방문하여 20년간 유연탄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한 직후였다. 그런데 이르틴 방문은 푸틴의 몽골방문과 겹치니 참 이것도 묘한 인연이다. 러시아와의 비자면제협정도 9월 3일 푸틴 방문과 맞추어 다시 체결할 예정이어서 몽골은 부쩍 러시아와 중국 두 나라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공산권의 양대 산맥이 몽골의 자원확보와 관련하여 같은 기간에 몽골을 방문함으로 공산권의 유대관계를 세계에 알리는데 나는 그리스도 복음 전파라는 사명을 가지고 이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복음을 들고 몽골을 휘젓는 자와 국가간 이해관계를 들고 몽골을 찾는 자들과 과연 누가 강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