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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6일 바롱보릉 방문

 

지난 닷새 동안은 그야 말로 죽은 듯이 임선교사네 아파트에서 휴식을 취했다. 속에 열이 꽉 차서 머리가 띵한 것이 도시 회복이 되지 않았다. 몸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지만, 오늘은 계획대로 이르틴에서 차로 1시간 가량 걸리는 바롱보릉을 방문하기로 했다. 바롱보릉은 근처 일대가 넓고 비옥한 들판으로 몽골에서 드물게 농업이 주업인 곳이다. 원래 2009년 임선교사네가 이르틴과 다른 지역 지도자들과 함께 와서 전도함으로 개척한 교회가 있던 곳인데, 교회를 맡은 지도자의 타락으로 교회가 폐쇄되었다. 교인이 이삼십명이 있던 곳으로 그 후 이번에 우리가 찾아가는 지도자인 야훼라는 여인의 아들이 YWAM에서 훈련을 받고 와서 이 곳에 교회를 세웠으나 생활이 어려워 중국 이롄으로 떠나 그나마 있던 교회도 사라졌다. 지난 5월 은퇴하신 카마 의료선교사 팸 박사가 떠나기 직전까지 월 1회씩 오셔서 예배도 드리고 의료 시술도 하셨다. 교회를 맡아서 모임을 주관할 만한 지도자의 부재로 고심하던 중 임선교사께서 여러 번 방문했다. 그 때 야훼란 자매가 자기 집에서 교회를 하겠다고 자원해 와서 이 분을 중심으로 모임을 가지곤 했으나 상황이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아 이번에 가서 함께 성찬도 나누고 격려도 하려는 것이다.

 

아침에 밖에 나가려 하니 밖에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것이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씨가 푸근하여 간단한 복장으로 나가려다 몸이 으스스한 것이 아무래도 심상찮은 상황이라 비상시 입으려고 가져왔던 내의까지 껴입고 겨울 점퍼를 입고 나왔다. 그런데도 한기가 몸을 파고 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산등성이에는 이미 눈이 덮여 있었다. 간밤 산위에는 눈이 내렸던 것이다. 반팔 셔츠로 다닌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기온이 이렇게 급강하하여 겨울날씨가 되었다. 거리에는 이미 두꺼운 겨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 다녔다.

 

이번 길은 프루공을 타지 않고 랜크루저를 타고 가기로 했다. 프루공을 타다 랜크루저를 타니 궁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이르틴을 벗어나 10여분 달리니 말떼가 길을 건너 가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말떼를 보호하고 가는 것이 목동이 아니라 개였다. 말이 모두 길을 건널 때까지 차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길 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경계하는 것이 여간 똘똘한 녀석이 아니었다. 몽골에서는 이렇게 개가 목동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다. 에스더 선교사가 이 개를 보며 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방문했던 고비 칸보그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목동 역할을 하는 개를 칸보그드에 있던 북한노동자들이 잡아먹은 일이 탄로나서 북한노동자들이 모두 추방되었다. 그 일을 주관했던 관리가 바로 우리가 칸보그드에서 만났던 그 동네 부시장 훌레였다.

 

20여분 더 차를 달리니 낯익은 동네가 왼쪽에 보였다. 바로 2008년 우리가 방문해서 함께 교회개척의 꿈을 키우며 기도했던 자로갈랑이다. 그 때 자로갈랑 시청에 가서 시장을 만나 향후 의료봉사와 교회모임을 가지는 것에 관해 협의했는데 예상 외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연이란 것이 참 묘해서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때 만난 시장이 우리와 함께 훕수굴 여행을 했던 유니스의 남편 리라의 사촌동생이라 한다. 자로갈랑 시장의 아내는 그 후 항상 임선교사네에게 이것 저것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선한 이웃이 되었다. 그 때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셔서 자로갈랑에는 현재 우리 지도자 슈세가 인도하는 교회가 건재하고 있다. 이번에 왜 슈세가 안 보이나 했더니 25년만에 고향인 옵스 아미막(우리 말로 에 해당하는 몽골이 최대행정단위)에 다니러 갔다고 했다. 슈세의 어머니는 자녀를 무려 22명을 낳았는데 슈세 밑으로 세 쌍둥이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그 많은 형제 자매들이 모두 고향인 옵스 아이막에 살고 있어 고향에 가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슈세의 꿈이었다. 옵스 아이막은 몽골의 서북쪽 끝으로 러시아와의 접경이고, 몽골에서 가장 천시받는 사람들이 사는 산 속 오지이다. 나이가 70이 넘은 뿌제가 그 험한 길을 소형차를 장시간 운전해 갔으니 안전하게 돌아 오길 기도할 뿐이다. 이번에 슈세가 다녀 오면 임선교사네가 가서 교회개척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올해는 이미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힘들고 다음 임기가 시작하는 2016 6월 중순에서 7월 사이에 최소한 2주 정도 계획으로 차 두 대를 동원하여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임선교사는 2년후 내 선교여행을 이에 맞추어서 계획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는 데만 차로 사흘 이상 소요되는 험한 산길이지만 우리가 가지 않으면 누가 그런 오지에 복음을 전하랴?

 

잠시 후 가파른 고갯길 마루에 올라 서니 왼쪽 옆에 큰 오보가 보이고 실링게라고 크게 쓰인 표지판도 보였다. 여기서부터 오르혼 아이막이 끝나고 실링게 아이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고갯길을 내려 가며 임선교사는 바롱보릉의 지도자 야훼를 처음 만나 교회를 시작하게 격려하고 돌아오던 길에 일어났던 사건을 들려 주었다. 그 때가 마침 겨울이라 길이 빙판이었는데 고개 저편 오르막길에서 경찰차가 빙판에 미끌어져 차선을 넘어 임선교사 차로 사정없이 내리 꽂히는데 함께 탔던 슈세와 에스더 선교사도 그 때는 그대로 받혀서 까마득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을 줄 알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슬아슬하게 차를 비켜 감으로 사고를 모면했다. 임선교사는 교회개척을 할 때마다 이런 위기를 겪는다고 했다. 남들은 그저 우연히 그런 일이 일어났겠거니 하지만 임선교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개척을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공격이다. 이런 일에 위협을 느껴 포기하는 자는 절대 교회개척을 할 수 없다. 이런 일이 있을 수록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더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 그것이 개척자의 길이다

 

바롱보릉 표지판이 나오고 연이어 낡아서 읽기도 어려운 표지판이 오른 쪽에 나왔다. 실링게와 오르혼 주가 갈라진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오르혼톨이란 곳이다. 오른 쪽으로 돌아서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도착하는 곳인데 그 지역에도 앞으로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 바릉보릉에 도착하니 10 40분이었다. 오늘 야훼네 집에 가서 함께 성찬예배를 드릴 예정이어서 성찬용 쥬스와 빵을 사려고 바릉보릉의 편의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다운타운에 차를 멈추었다. 학교건물도 보이고 아이들 기숙사도 보였다. 학교가 개학한 지 엿 새밖에 되지 않아 외지에 사는 부모들이 기숙사에 사는 자녀들에게 먹을 것 등 짐을 가지고 와서 내려 주는 광경이 보였다. 사시사철 옆에 두고 살던 자녀들을 떨어뜨려 놓고 가는 부모들의 마음이 내 맘에 와 닿았다. 가게들은 날씨 탓인지 다들 문이 닫혀 있었다. 식료품을 파는 훈스니 덜구르도 있고 잡화를 파는 덜구르도 있었다. 그 옆에는 숙박시설인 조칟보달도 보이고 약국인 이민산도 보였다. 몽골 사람들은 참 늦게 일어난다. 그래서 그러한지 거리에는 짐을 받는 아이들 외에는 통 사람이 보이지 않고 개 두 마리만 어슬렁거렸다.

 

성찬용 쥬스와 빵을 사서 야훼의 집에 도착하니 과거 러시아 사람들이 공장으로 사용하던 대형건물들이 들어 서 있는 시설이었다. 이 시설을 이르틴에 있는 제분공장에서 인수하여 이 일대 들판에서 난 밀을 수확하여 이 곳에서 정미하여 보내는데 이 일을 야훼와 여동생 가정이 이 곳에서 감당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철이 감자 수확하는 때라, 야훼가 감자수확 때문에 산에 갔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마침 비가 와서 산으로 가지 못하고 정미한 밀을 젖지 않도록 덮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야훼가 거주하는 집으로 우리를 인도하는데 취사용 난로가 있고, 멋지게 생긴 러시아 제 차 주전자가 눈에 뜨인다. 의자에 앉게 하더니 이번에 나온 햇 곡식이라며 정미한 밀을 한 줌 가져오니 에스더 선교사가 맛있다며 집어 먹는다. 나도 입에 넣어서 씹으니 옛날 어릴 때 동네에서 밀 이삭을 따서 불에 끄슬려 밀싸리해 먹던 기억이 났다. 아마 55년도 넘은 옛일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참 묘해서 어떤 계기가 있으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들 배곯던 시절이었는지라 기억에 생생한 사건은 주로 먹는 추억이다.

이 곳에는 야훼의 딸도 있고 여동생도 있어 원래 모두 전도하여 예수를 믿었으나 상황이 악화되었다. 한 때는 한국에서 구원파가 몰려와 성도들을 모두 빼앗아 가기도 했다. 일년전에 독실한 불교신자인 시장이 새로 부임했는데 이 사람이 부임하자 마자 주민들에게 모두 불상과 부적을 나눠주고 근처에 있는 불사에 가서 불공 드리도록 강요했다. 원래 공산주의 체제에서 명령복종에 익숙한지라 대부분 믿던 사람들이 믿음을 저버리고 다시 절로 돌아 갔다. 예수 믿기 전에 라마 불교 신자들이었던 사람들이니 절로 돌아가는 것이 손바닥 뒤집듯이 쉬웠던 것이다. 야훼의 여동생도 믿음을 저버린 사람 중 하나여서 성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훼는 임선교사가 보는 앞에서 취사용 난로에 불상과 부적을 불태웠다. 제대로 모여 예배도 드리지 못하는 야훼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는지 이해가 갔다. 임선교사께서 바롱보릉에 오늘 오신 이유도 바로 야훼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성찬집기를 꺼내어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야훼의 태도가 얼마나 경건한지 내 마음도 절로 경건해졌다. 내가 누가복음 22장 말씀을 가지고 성찬의 의미를 전하는데 야훼의 눈에 눈물이 샘 솟듯 흘렀다. 나중에 들으니 지난 3년동안 성찬을 한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바롱보릉은 젖줄인 실링게 강이 들판을 적시는 풍요로운 평야를 가지고 있어, 유목민들이 주로 사는 다른 지역과 달리 한 곳에 정주하고 사는 농업촌이라 안정적인 교회가 설 수 있는 곳이다. 요는 선교사가 오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희생할 수 있는 신실하고 유능한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그 열쇠이다. 몽골선교의 성공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다. 선교사가 와서 교회를 세워 놓아도 일단 선교사가 떠나면 이를 맡아 감당할 만한 지도자가 없어 교회가 금방 문을 닫고 만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이 모여 예배 드릴 기회가 없어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가 없으니 그렇게 한 세대만 지나면 성도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야훼의 집에서 성찬예배를 드리고 난 후 야훼의 머리에 안수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야훼에게 용기를 주셔서 이 어려운 현실을 이겨 내고 승리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 곳에 다시 주의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안수 받는 야훼의 눈에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일단 다음에 와서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야훼의 집을 떠나서 이번에는 바롱보릉 산 꼭대기에 있는 마을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다르항 우리 선교부에서 16년동안 신실하게 섬기다가 지난 5월 은퇴하고 떠난 팸 박사가 매월 한 번씩 와서 의료봉사와 예배 인도를 하던 게르가 있다. 게르에 접근하니 예쁜 소녀 하나가 우리 차를 보더니 잽싸게 게르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에게 임치 팸 (팸 의사선생님이란 뜻의 몽골어이다)이 오셨다고 알리려 뛰어 들어간 것이다. 불시에 방문했는지라 예배를 드리지는 않고 이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팸 박사네에게 이 곳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들으니 안타깝게도 팸 박사가 떠난 후에는 한번도 모여 예배 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야훼의 집에서도 절감한 것처럼 앞으로 우리의 선교가 가야 할 방향에 관해 다시 한번 고민할 일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교회가 자체적으로 일어나 오늘날 수 만명의 선교사를 내보내는 교회로 발전할 수 있게 했듯이 우리도 몽골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임선교사는 앞으로 가능하면 주일마다 바롱보릉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여 예배공동체부터 형성하려 한다

 

 

돌아 오는 길에 에스더 선교사가 차를 세우라고 했다. 길 옆에 몽골 아저씨 한 사람이 겨울 옷을 껴입고 산에서 딴 여러 종류의 복분자 열매를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팔고 있었다. 크랜 베리도 있고 다른 종류의 열매도 있었다. 이제 철이 지나는 상황이라 시장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라 이를 사서 설탕을 넣고 6개월 정도 발효하게 하면 좋은 비타민 공급원이 된다는 것이다. 몽골은 이렇게 복분자가 나오는 기간이 극히 짧기 때문에 이 때 이렇게 사서 담그지 않으면 긴 겨울 동안 비타민 결핍으로 고생한다. 바롱보릉만 방문하고 돌아왔는데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늦은 점심을 나누고 나니 벌써 밖이 어둑어둑해진다. 내일은 자로갈랑에서 예배를 드리고 시간이 나면 다른 지역도 한 군데 들러서 교회개척가능성을 타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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