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7일 자로갈랑 주일예배
오늘은 이르틴에서 맞는 첫 주일이다. 이르틴 센터의 예배는 최근 이르틴에 와서 사역하시는 조 선교사 부부에게 맡기고 우리는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자로갈랑 교회로 가기로 했다. 어제 아침에는 밤새 비가 내려 창밖이 어두웠는데, 오늘은 일찍부터 해가 강하게 창문을 밝혔다. 어제처럼 추운 줄 알고 든든히 껴입고 나오니 날씨가 어제보다 훨씬 따뜻했다.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어 그 푸르름이 내 눈에 스며 들 듯했다. 천고마비란 말이 원래 몽골을 가리킨 말이다고 하는데 그게 맞나 보다. 정말 파란 하늘이 높고 높게만 보였다.
청명한 날씨를 즐기며 이르틴을 벗어나니 좌우 들판에 넉넉한 목초지가 나오고 한가히 풀을 뜯는 짐승들이 우리를 반겼다. 문득 앞을 보니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평원에 쳐 놓았던 게르를 분해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한 쪽에는 말을 타고 짐승들을 몰아 산 골짜기로 집단이동하고 있었다. 우리 앞에 가는 트럭에는 게르를 분해한 나무 조각, 텔레비전 시청용 디쉬, 태양광 집열판 등이 잔뜩 실려 있었다. 전형적인 유목민의 겨울나기 용 이삿짐이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한 해에 25번 정도씩 거처를 옮긴다. 겨울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골짜기로 이동한다. 한 곳에 풀이 떨어지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데 이 과정이 엄청난 고통이며 즐거움이라고 한다. 보통 병약자나 노인들은 이 과정에서 추위를 견지지 못하고 죽는다. 그래서 그러한지 몽골인들에게는 미련이라는 것이 없다. 고비사막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그냥 자루에 넣어서 광야에 내다 버리고 만다. 그러면 새들이 파먹고 남은 것은 금방 썩어서 사라진다. 남녀가 살다가 헤어질 때도 돌아 보지도 않는다. 고비사막을8일간 고락을 함께 하다 헤어질 때도 그냥 손 한번 흔들면 끝이었다. 항상 새로운 땅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의 특성 상 그러한 성격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몽골인은 선교사로서 가장 적합한 민족인 것 같기도 하다.
목초지를 지나니 이번에는 잘 익은 밀 밭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겼다. 올해는 비가 충분히 오고 날씨가 좋아 밀농사, 감자 농사 모두 풍작이라고들 했다. 광활한 들녘에 누렇게 보이는 밭떼기는 모두 추수를 기다리는 밀밭이고, 검은 밭떼기는 토양을 보호하기 위해 놀리는 휴경지이다. 대부분 밀밭이 기업영농으로 운영되고 그 수확에서 오는 이익금은 땅주인들에게 땅넓이별로 보상된다고 했다. 이 근처의 밀밭은 대부분이 이르틴에 있는 대형제분공장에서 운영한다. 이렇게 넓은 평원에는 밀을 심고, 조금 산을 올라간 능선에는 감자를 심는다. 이제 곧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 감자수확을 못하기 때문에 다들 1주일 안에 감자수확을 끝내기 위해 산위에다 게르를 쳐놓고 생활하며 수확하고 있었다. 오늘 자로갈랑 교회 주일예배에도 대부분 교인들이 감자수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20분 남짓 운전하니 눈에 익은 자로갈랑의 모습이 나타났다. 2007년에 임선교사네가 차가 전파되는 엄청난 사고를 당했던 지점도 나타나고 자로갈랑 교회 지도자의 슈세의 아들 집도 오른쪽에 보였다. 자로갈랑 교회는 임선교사네와 나에게 인연이 깊은 교회이다. 2007년 자로갈랑에서 엄청난 사고를 당한 임선교사께서 이 곳에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 이듬해 돌아와서, 당시 중국에서 사역하다가 합류한 나와 함께 자로갈랑을 처음 방문했다. 그 때 시장실을 방문하고 향후 의료봉사 겸 교회개척 가능성을 타진했더니 시장이 뜻밖에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때 자로갈랑을 돌아보며 기도했다. 이 곳에 주의 교회를 개척하려 하니 하나님께서 좋은 지도자를 보내 주시라고 기도했다. 며칠 후에 미국에서 날아온 김동욱 목사님과 몽골 지도자들을 대동하고 다시 자로갈랑을 방문하고 교회를 시작할 장소를 물색하고 기도했다. 그 기도가 응답되어 슈세를 만나게 하시고 슈세의 마음에 함께 교회를 세우겠다는 뜻을 세우게 하셨다. 2012년에 내가 자로갈랑을 방문했더니 임선교사께서 미화 삼천오백불로 구매한 작은 아파트를 슈세의 아들들이 나서서 내부를 다 부수고 교회로 개조하느라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 때 슈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하나님, 자로갈랑 교회가 그저 이 곳에서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선교하는 선교기지가 되게 해 주시고, 이를 위해 슈세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그저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기도했는데, 슈세는 이미 딸 한 사람과 아들 둘을 선교사로 타국에 보내고 이를 지원하고 있었다.
작년에 왔을 때는 세미나 인도에 연이은 자밍우드 여행 등으로 자로갈랑 교회를 방문하지 못했으니 2년 만에 방문하는 셈이다. 그래서 자로갈랑에 들어서는 내 마음은 과연 어떻게 변모했을까 하는 기대감에 출렁였다. 자로갈랑에 들어서니 동네경관도 많이 달라졌다. 건물도 새롭게 단장했고, 주차장도 포장이 되어 먼지도 나지 않았다. 공산당 사무소가 근처에 있는 곳이라 우리 교회가 있는 아파트 건물도 덩달아 보수가 잘 되고 있다. 2년전만 해도 난민수용소처럼 험했는데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교회 내부도 슈세가 어찌나 깔끔하게 가꾸었는지 절로 감탄이 나왔다. 슈세가 매일 와서 물을 주어 키우는 화초들이 창틀에서 햇볕을 즐기고 있는 풍경이 몽골 같지 않았다. 이 아파트를 살 때에 임선교사가 그 대금을 지원한 것 외에는 이 교회의 모든 운영은 슈세와 교인들이 부담했다. 슈세는 은퇴연금과 야채농사를 지어 판매하는 대금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임선교사께서 개척한 교회 가운데 가장 모범이 되는 교회라 할 수 있다. 슈세가 고향인 옵스 아이막에 가고 없지만 또 하나의 신실한 지도자인 어유나가 교회를 맡아 신실하게 섬기고 있다. 교회가 굳건히 서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신실한 지도자의 존재이다. 다른 교회는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우기도 힘든데 자로갈랑 교회는 두 명의 지도자가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고 있으니, 이렇게 교회가 계속 부흥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니 어유나가 이미 예배준비를 잘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모일 때마다 다과를 즐기기 때문에 그 귀한 것들을 어유나가 다 준비해 두었다.
예배시간인 11시가 되니 국민학교 1학년에서 3학년짜리 정도되는 꼬마들이 오밀조밀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자리를 가득 메웠다. 그 중에는 8학년짜리 아이도 섞여 있었다. 잠시 후에는 어른들도 하나 둘 들어서는데 하나같이 노인들이었다. 일할 만한 젊은 사람들은 모두 감자수확때문에 산에 올라가고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이들과 노인들을 많이 보내 주셔서 작은 성전이 꽉 차게 하셨다. 임선교사는 감자밭에 가서 예배를 드릴 생각도 했으나 이 곳 감자밭이 있는 산은 차로 올라 갈 수 없다 해서 포기했다. 오늘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린 아이들은 대부분이 먼 시골에서 온 아이들로 학교 기숙사에서 산다. 학교 근처에 살지 않는 몽골인들은 이렇게 아이들을 국민학교 때부터 학교로 떠나보낸다.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함께 있으니 일단 이렇게 한번 집을 떠나면 대부분의 성장기를 학교 기숙사에서 보내는 셈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의 경우에는 숫제 기숙사 생활만 하다가 직장을 구하면 그대로 부모와 이별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오랜 세월을 부모와 떨어져 살기에 아이들은 외롭기도 하고 기숙사에서 주는 음식도 거칠어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다과를 드는 것을 즐겨한다. 임선교사는 이렇게 학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교회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주일학교를 운영해야 향후 몽골을 다스릴 믿는 인재들을 육성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먼 안목으로 보아 몽골에 교회를 토착화하는 지름길이다.
성경이나 찬송가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어서 교회에 비치된 것을 나눠주는데 노인들이 전혀 읽지를 않고 있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다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주어도 읽지를 못하신다. 백내장 수술이 필요한 분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노안으로 돋보기만 있으면 읽을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그 흔한 돋보기 하나 없어 글을 읽지 못하시는 것이다. 몽골의 슬픈 현실이다. 울란바타르에 사는 일부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호화판으로 살고 있는 반면에 이렇게 시골에 사는 노인들은 싸구려 돋보기 하나 없어 불편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모두 성경책도 잘 읽고 찬송가도 곧잘 따라 부르는데 그 모습이 바로 천사의 모습이었다.
원래 사도행전 20장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고별설교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려 했으나, 오늘 모인 사람들에게 적합한 본문이 아닌 듯하여 요한복음 2장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역사에 관해 말씀을 증거하니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은혜가 충만했다. 말씀을 듣는 아이들의 눈이 어찌 초롱초롱하고 기대감에 차 있는지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성령안에서 하나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를 변했다는 대목에서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맞아요.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외치며 동의했다. 말씀을 전해도 멀뚱 멀뚱 눈만 굴리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하는 어느 나라 교인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몽골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나 신유기도를 할 때에 나는 항상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이들은 말씀을 순전하게 믿고 주님께 나아온다. 기도 받으면 당연히 병이 나을 것을 기대하고 기도를 받는다. 재작년 그렇게 기도 받았던 비렉호트 교회 지도자 길오뜨는 7년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신장암에서 치유 받았고, 작년 오른 쪽 귀가 먹어서 안들려서 기도 받았던 자밍우드 교회의 톡샤는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셔서 귀가 들린다고 간증했다. 선교지여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역사하시는 것이라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적을 믿지 않는 세대, 말씀을 읽어도 머리로만 읽는 세대, 기도를 해도 기대감 없이 건성으로 하는 세대, 목회자 보기를 우습게 보는 세대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너희 믿음이 이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아이들과 노인들이 주로 모인 예배였으나 은혜가 충만한 주일예배를 드리고 이르틴으로 돌아오는데 내 마음이 어찌 기쁜지 모른다. 내게는 양식이 따로 있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복음 전하는 자를 배부르게 하는 양식은 바로 이렇게 거두어 들인 영혼의 수확이다. 앞으로 자로갈랑 같은 교회를 몽골 땅 전역에 세우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내 인생도 보람있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