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5일 세미나 넷째날
어제 고단했는지 도시 일어날 수가 없어 비비적거리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니 오전 7시였다. 창밖을 보니 날씨는 쾌청하고 햇볓이 벌써 내려쬐는데 거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겨울이었다. 닷새후인 월요일에는 날씨가 섭씨 영하 4도로 내려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너도 나도 겨울옷을 꺼내어 월동준비를 하는 것이다. 오늘이 세미나 마지막 날인데 왜 이렇게 몸이 고단한지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몽골 전체가 원래 고원지대인데다 이르틴은 더욱 높기에 몸이 피곤한 것이 당연하다고 임선교사가 얘기한 것이 실감이 났다. 극도로 건조한 기후라 코는 바짝 말라서 외출했다 돌아오면 코에 코딱지가 손마디만한 것이 들어있었다. 그러다 보니 변비가 극히 정상으로 취급된다. 햇볕이 날 때는 더워서 옷을 벗었다가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추워서 옷을 껴입어야 한다. 아침 일찍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 관계로 명희선교사 먼저 8시에 나가시고 연이어 임선교사도 떠났다. 나혼자 남아서 오늘 강의할 내용을 점검한 후 혼자 나섰다. 사택에서 혼자 센터로 가는 길은 처음이지만 언제까지 따라다닐 것인가? 방향을 잡고 한참 가는데 주위가 낯설었다. 보니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눈짐작으로 대략 방향을 잡고 가니 드디어 센터 건물이 보였다.
자리에 앉자 마자 눈에 가장 띄는 것이 어제 배가 아파 잠도 못잔다고 기도부탁했던 자로갈랑 교회 바이후 자매의 모습이었다. 이 자매는 나이 52세로 그동안 복통이 심하여 병원에 갔으나 병원에서도 배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할 뿐 아무 대책이 없던 자매였다. 어찌 복통이 심한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여 얼굴이 새카맣고 병색이 완연했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얼굴이 환한 것이 어제와는 천양지차였다. 그래 몸이 어떠냐고 물으니 어제 기도받은 후부터 복통이 없어져서 어제밤은 잠을 잘 이루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다가가서 어제 손얹고 기도했던 배에 손을 얹어보니 어제는 내장이 온통 불규칙하게 벌럭거리고 열이 있었는데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손을 얹은 김에 다시는 복통이 오지 않도록 기도했더니 자매가 어찌나 기뻐하는지 나도 기분이 좋았다. 밤마다 복통으로 잠못 이루다 복통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나도 poison ivy 감염으로 열흘 정도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고생하다 왔기에 그 기분을 잘 안다.
임선교사가 인도한 복습이 끝나고 11시부터 바로 예배학 특강에 들어가서 오후 1시에 마무리지었다. 예배에 관해서 이렇게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던 학생들이라 어찌나 열성적으로 수업을 받는지 모른다. 강의가 진행할수록 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 그러한지 더 눈이 반짝거리는 것이 가르치는 맛이 난다. 점심식사 겸 잠시 휴식을 하려는데 실링게 주 아따르에서 교회를 개척한 여의사인 이르틴치매가 교회로 개조하고 있는 자기소유의 건물사진을 보여 주며 기도해 달라고 했다. 아따르 교회는 지난 겨울 혹한을 무릎쓰고 선교여행 왔던 맨하탄 선교교회 최목사님과 청년들의 전도활동의 결과 지금 교회가 개척된 곳이다. 영하 50도가 넘는 혹한에 몽골에 와서 그 뜨거운 열정으로 혹한을 달구었던 젊은이들의 노력이 열매 맺은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심히 기뻤다. 이르틴치매는 몸이 통통하지만 귀엽게 생긴 자매이다. 어찌만 얼굴이 밝은지 보는 내 마음이 즐거웠다. 어제 얘기한 것처럼 몽골인들은 잘 웃을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여자가 웃으면 엉뚱한 마음을 품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대부분이 자매들인 우리 지도자들의 표정은 밝기 그지 없고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천국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몸은 나보다 두 배가 넘어서 같이 사진을 찍으면 모양이 좀 우습기는 하지만 그것도 매력이다.
바로 수업을 시작해서 세례와 성찬에 관해 강의를 한 후 바로 성찬식을 집례했다. 떡을 나누고 나서 잔을 들어 축사를 하는데 문앞에 왠 여자가 와서 무엇하느냐고 명희선교사에게 물었다. 눈치빠른 명희 선교사가 이민국 직원임을 금새 알아보고 미국에서 온 사람이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고 고지곳대로 얘기했다. 원래 외국인은 허가 없이는 설교도 할 수 없고 가르칠 수도 없기 때문에 걸리면 문제가 된다. 이 이민국 직원은 불시에 조사를 나올 때마다 가장 악을 쓰는 성질이 더러운 자매인데 명희 선교사가 손녀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꼬셔서 주일학교에 다니게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손녀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니 금새 태도가 바뀌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 듯하여 속히 성찬식을 마치고 우리는 자리를 떴다. 사택으로 돌아오면서 전화로 들으니 그새 이민국에서 직원들이 몰려와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민국 직원들이 이렇게 핍박하는 이유는 외국인들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라 가능하면 우리는 현장에 없는 것이 유리하다.
요사이 몽골당국은 노골적으로 외국인들을 단속하고 있다. 그동안 교회를 개척하여 교회마다 한 명씩 가능한 선교사 비자로 사역하던 많은 한국선교사들이 교회허가가 연장이 되지 않아 자동적으로 비자가 만료되게 되어 출국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몽골은 교회 허가가 보통 6개월에서 1년간 한시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허가를 연장해 주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교회가 없어지고 선교사도 몽골을 떠나야 한다. 선교사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유엔산하의 NGO들과 외국인 사업체들도 규제가 무식하게 까다로워져서 허가를 연장하기가 쉽지가 않다. 다르항에 있는 교단교회와 CAMA도 허가가 연장될 것인지 미지수이다. 만일 연장이 안되면 모두 철수해야 한다.
다행히 이르틴 센터는 3년짜리 허가를 받아서 임선교사 부부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물론 언제 허가를 취소하려 들지 모르기는 하다. 두 분이 나 때문에 울란바타르에 갔던 8월 29일에는 17명이나 되는 이민국 직원이 들이닥쳐서 온갖 서류를 다 요구하며 뒤집어놓았다고 했다. 다행히 그 때 나나 두 분이 현장에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오묘하다. 작년에 내가 이르틴에 와서 세미나를 하고 두 분과 함께 울란바타르로 떠난 직후에 이민국에서 조사팀이 벌떼처럼 몰려와서 세무문제로 억지를 부리며 무리한 요구를 했다. 다행히 우리가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명희 선교사 친구인 변호사 잉케가 중간에 개입하여 해결했다. 하필 내가 올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니 임선교사네가 나를 반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르틴교회가 3년허가를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1년 이하의 허가밖에 받을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금년 5월에 몽골 총선거가 있었는데 이르틴 센터를 맡고 있던 루비가 민주당 선거운동원으로 3주를 일했다. 교회일은 제쳐두고 3주나 밤낮으로 선거운동에 열중한 루비를 보고 임선교사가 호되게 나무랐다. 그런데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겨 집권당이 됨에 따라 이민국 직원들도 루비와 안면이 있는 민주당 출신이 많아서 루비가 3년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사택에서 밀린 일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미국에서 떠나오는 날까지 Poison Ivy 로 고생했는데 거의 완치되어서 이젠 불편이 없다. 명희 선교사의 얘기를 들으니 미국에 휴가 간 필드 디렉터 데니스와 샌디에고에서 사역하는 심종훈 목사도 같은 증세로 고생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나야 이 정도 고생으로 치유되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환부의 대부분은 아물었지만 아직도 왼손 등에 상처가 두 군데 남아 있어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증언한다. 점차 환부가 작아지는 것이 몽골 떠날 때쯤이면 온전해 지리라. 몽골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Poison Ivy감염으로 온 몸에 종기가 나고 근지럼증 때문에 열흘 가까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때에는 걱정이 되었는데 하나님은 몽골선교에는 전혀 지장이 없도록 치유의 손길을 베푸셨다. 자기 몸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이 신유기도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에게 믿음이 가겠는가? 마땅히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하나님을 찬양한다.
며칠 푹 쉰 후 울란바타르로 갔다가 남고비의 쵸이르와 쉬베곱을 들러 세례를 베풀고 다시 울란바타르로 돌아왔다가 김용호 전도사를 공항에서 데리고 와서 다시 남고비 국경도시인 자밍우드로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상치 못했던 은혜로 함께 하시니 이번에는 무엇을 준비하셨을까?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