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125
나의 이야기 (29) 불가능에 도전하라 – 1982년 삼성 NY
1982년 여름 삼성물산 뉴욕지사에서 중화학분야를 맡은 주재원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우리 부서에 본사에서 당시로는 엉뚱하기 짝이 없는 특명이 떨어졌다. 당시 미국의 반도체 제조회사였던 ITT 란 회사의 노후설비를 7백만불에 구매했으니 시설을 해체해서 한국으로 지급 공수하라는 명령이었다. 나중에 사연을 알고 본 즉 년말연휴를 일본에서 보내며 사업을 구상하던 이병철 회장이 내린 단안에 따른 조치였다. 소위 이회장의 "동경구상"이었다.
당시 일본기업의 원로들과 막역한 사이였던 이 회장이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제 삼성도 미래를 위해 컴퓨터 산업 특히 반도체사업을 시작하려 하는데 회장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이에 대한 마쓰시타 회장의 대답은 절대로 승산이 없으니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회장, 반도체 산업은 그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빨라 1년만 뒤져도 따라 잡는데 30년은 걸린다는 것이 통설이요. 이회장도 알다시피 반도체산업에 관한 한, 한국은 일본에 30년 뒤진다네. 일본 반도체산업은 미국에 이어 이미 세계 정상급이요. 한번 따져 보시오. 일본을 따라 잡는데 90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지 않소? 그 말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에요. 상황이 그러한데, 반도체나 컴퓨터에 관한 한은 완전 백지인 한국이 이제 시작해서 뭘 할 수 있겠소? 그런 건 꿈도 꾸지 마시고, 현재 잘하고 있는 사업이나 더욱 견실하게 키우는 것이 좋아요."
이 회장은 매년 동경구상 때마다 마쓰시타 회장의 의견을 항상 경청하고 그해의 사업구상에 충실히 반영해 왔던 사람이었는데 이번 만큼은 당시로 보아서는 두 가지 무지한 결정을 함으로서 일본과 한국 업계를 놀라게 했다. 첫째는, 사업에 관한 한 평생 친 일본통이던 이 회장이 이 순간부터 반도체에 관한 한 미국으로 기자재의 공급선을 전환했던 것이다. 평생 한번도 미국에 발을 들이지 않을 정도로 미국을 싫어했던 이회장이 그 다음 해에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러 건너 왔던 것도 그 일환이었다. 둘째, 반도체에 관한 한 일본의 협조를 받을 생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눈을 돌려 ITT의 노후설비를 구매해서 공수하게 해서 삼성종합반도체를 설립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미 안다. 이렇게 시작했던 삼성종합반도체는 후에 삼성전자에 흡수되었고, 삼성전자는 이제 당시 결정에 힘입어서 명실 공히 세계 IT 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반도체에 관한 한 2003년과 2004년 모두 부동의 세계 1위를 차지했고, 2004년 순익 100억불을 넘어 섬으로 세계 9대기업에 드는 영광을 누렸다. 100억불 클럽에 든 순수제조업체는 도요다 자동차와 삼성전자 밖에 없으니 가히 그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이 액수는 23년 전 이회장에게 IT 산업은 꿈도 꾸지 말라고 조언했던 마쓰시타 회장이 창업했던 일본 최대의 전기.전자메이커인 마쓰시타 전기를 비롯, 히타치, NEC, 도시바 등 일본 상위 메이커 10개사의 순익을 합친 것의 배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혹자는 삼성전자의 이러한 성공을 이건희 회장의 동물적 경영감각과 성실한 경영의 결과라고 하지만 나는 이보다는 선대 이병철 회장의 도전적 비전의 결과라고 본다. 남들은 다 안 된다고 하여도 위대한 꿈을 꾸고 이를 행동으로 이루어 나가면 때가 차면 그 꿈이 영근다는 사실을 안 선각자를 아버지로 둔 덕택에 아들 대에서 그 열매를 따 먹고 있고 덩달아 한국경제도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병철 회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전적인 꿈을 꿀 수 있었던 그의 선견적인 기상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도전적인 기상은 예수님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바이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마 14:28)
베드로가 이렇게 믿음의 요청을 했을 때에, 예수님은 이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베드로에게 “오라”고 외치셨다. 말씀에 의지하여 베드로가 폭풍치는 갈릴리 호수 위를 걸은 것처럼 우리도 현실에서 눈을 돌려 도전적인 꿈을 꿈으로 불가능에 도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