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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6

나의 이야기 (16) 첫 사랑 선생님

 

누군가 제게 첫사랑이 누구였나를 물어보신다면 제 마음에 떠오르는 분이 한 분 계세요. 제가 소꾸모티 살던 때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이 이야기는 저희 집이 소꾸모티를 떠나 진짜 시내에 위치한 모암국민학교 앞으로 이사한 후에 일어난 거에요. 저희가 3학년 때까지만 해도 학교가 가교사에서 수업을 진행하느라 대다수 학급은 돌아가며 운동장에서 수업을 했어요. 제가 4학년때 모암동으로 이사 오기 전 건물부지에 흙을 쌓아서 돋우더니 거기에다 근사한 시멘트 벽돌건물을 두 채 올려서 학생들이 모두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이에 더해 5학년 올라 갈 때는 특별히 기쁜 일이 있었어요. 그 전까지는 선생님 얼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별로 봐 드릴게 없었던 탓일 거에요. 그런데, 아 이럴 수가! 갓 부임하신 예쁜 여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을 맡으신 거에요. 제 기억에 갓 사범학교를 나오신 처녀였어요. 어찌나 피부가 뽀얕코 곱던지 만 열살된 제 눈에는 그 분이 "김지미 저리가라"였어요. 그 때는 김지미가 장희빈 역으로 날릴 때라 미인하면 김지미였거든요. 금상첨화라 하지요. 이 선생님은 용모만 "보기에 좋았더라"가 아니었어요. 그야 말로 재색을 겸비하셔서 선생으로서도 탁월한 재능과 열심을 보이셨어요. 그전 선생님들과는 가르치시는 방법이 아예 차원이 달랐어요. 

 

당시 우리는 분수계산법을 산수시간에 배우기 시작했던 때였는데, 이 선생님이 학생들로 하여금 이를 확실하게 복습하게 하셨어요. 수업이 끝나도 학생들을 집에 바로 보내지 않으시고 칠판에다 산수문제를 빼곡하게 적으시고, 그걸 다 푼 학생만 집에 갈 수 있게 하셨던 거에요. 그 때문에 우리 반 동무들은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때는 제 머리가 이상하게 잘 돌아갈 때였던지라, 저는 문제를 척 보기만 함 그냥 답이 머리 속에 떠 올라서 항상 5분이면 다 풀었어요. 그때는 제가 참 눈치가 없었어요. 후딱 답을 쓰서 선생님께 내고는 으쓱거리며 교실을 나서곤 했지요. 그럼 다른 애들의 따가운 눈총이 등 뒤에 찌릿하게 느껴지는데 저는 그게 기분이 좋았어요. 지들이야 어쩌든 당시 제 관심은 선생님이 저를 어떻게 보시느냐에 있었거든요. 답을 완벽하게 적은 종이를 선생님께 자랑스럽게 내면 선생님이 저를 보시며 환히 웃으셨어요. 당시에는 100점을 받지 않은 기억이 없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왔던지 저는 그 시간이 충만한 은혜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제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렇게 산수문제를 풀지 않는 날은 바로 교실을 대청소하는 날이었어요. 반을 5개인가 6개 분단으로 나누어, 돌아 가며 교실청소 당번을 했어요. 어느날 저희 분단이 청소할 차례가 되었어요. 먼저 빗자루로 마루바닥을 쓸고 난 후, 바게쓰에 물을 담아와서 거기에 손걸레를 적신 후 다들 그걸로 바닥을 닦는데 아 그만 제가 사고를 쳤어요. 그 때는 마루바닥에 구멍이 나면 그걸 함석 쪼가리를 잘라서 못으로 땜방질을 해 놓았어요. 근데, 제가 걸레를 쥐고 엎드려서 바닥을 뛰어 가다가 거기에 걸려 발바닥이 쭉 찢어졌어요. 발바닥을 들어올리니 처음엔 허연 속살이 보이더니, 아 글쎄 거기서 뭉클뭉클 붉은 피가 솟아 나는 거에요. 정신없이 울어 재끼니까, 선생님이 뛰어 오셔서 그걸 보시고 얼굴이 하얗게 변하셨어요. 그러시더니 양호실로 정신없이 뛰어 가셔서 아까징끼 (머큐롬의 일본명)와 붕대를 가지고 오셨어요. 그 고운 손으로 온통 새카만 내 발을 잡으시고 그걸 소독하신 후 아까징끼를 바르시고 약을 바르신 후 붕대로 감아 주셨어요. 세상에 이렇게 고운 여선생님이 내 발을 잡고 눈물을 떨구시며 치료를 해 주시다니, 그 감격이 어떠했는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제 심장이 기차화통 뛰듯이 뛰었어요. 제가 모암국민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안 계셨으니까 그렇게 오래 계시진 않으셨어요. 그후 참 그리워했지만 한번도 뵐 기회가 없었어요. 아마 그게 제 첫사랑이었을거에요. 지금도 그 때 기억이 이렇게 선명한 것을 보면 참 제게는 소중한 추억이에요. 그렇게 나이 차이도 많지 않으니까, 이젠 같이 늙어가는 입장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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