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6) 고정관념을 깨뜨리다- 1978년 삼성물산 사원시절

by JintaeKim posted May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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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ockphoto-534736048-1024x1024.jpg : 포트리 한담 (147) 미국 첫 출장 이야기- 1978년 삼성물산 금속과 사원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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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6) 고정관념을 깨뜨리다- 1978년 삼성물산 사원시절



“김진태 씨자네도 이제 품목을 맡아야지자네는 강관을 맡지. 

 

1977 7 7일 입사해서 연수를 끝내고 당시 삼성물산 금속과에 배치되어 4개월 정도 금속과 고참 5인의 종노릇을 한 후의 일이다당시 허 과장께서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근데 그말을 듣는데 어째 기분이 이상해서 살짝 돌아보니그 얘기를 옆에서 듣는 과 선배들의 표정이 참 요상했다그 때 나는 다른 동료와 함께 금속과에 배치 받았는데우리보다 딱 6개월 먼저 입사한 직원이 두 사람이었다그게 J 씨와 H 씨였는데평소 자신이 맡은 품목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J 씨는 허 과장 말을 들으며 야비한 표정을 짓는데 어째 고소하다는 것 같았고사람 좋은 H 씨는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허 과장보다 나이도 많고 고참이던 주무 L 씨는 “아이고김진태 클났구나”했고그 다음 순번인 K 씨는 “뭐쫄짜 팔자가 그런거지박으람 박아야지” 했다유일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분은 후일 나와 짝꿍이 잘 맞아 미국에서도 강관사업을 동업하셨던 Y 씨였다.

 

“김형그거 상사가 전혀 수출실적이 없는 품목이지만 품목별 수출실적 4위내에 드니까잠재력은 큽니다실망하지 마소.

 

참고로, Y 씨는 나중에 나보다 일찍 철강전문 지점이었던 휴스턴지점에 발령 받아 나간 후 나와 긴밀하게 협조했고후에 독립하여 큰 사업을 일구었다이 양반도 나처럼 늦게 미국에서 예수를 만나서 침례교회 안수집사로 교회를 세우고 평생 번 돈을 바쳐 섬겼다나도 항상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몸에 밴 성격이었던지라남들이 뭐라고 하든 열심히 강관사업에 관해 공부하고 준비했다내 나름대로 강관을 수출하려고 해외 거래선을 찾아 헤매는 한편 제품공부를 철저히 해서 철강제품에 관한 한 금속공학을 전공한 사람 못지 않은 지식을 갖추었다후에 내가 미국시장에서 Dr. Pipe”란 별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바탕이 거기에 있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긴 했지만 생전 처음 상사에서 내 품목을 할당 받아 내 사업을 회사조직과 자본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심장이 기차화통처럼 뛰었다나는 그날부터 숨쉴 틈도 없이 열심히 강관을 팔 방도를 강구했다그때 나는 시간이 아까와 화장실 갈 때도 뛰어다녔다원래 나는 걸음이 힘차고 박력이 있어서 걷기만 해도 땅이 쿵쿵 울린다그러니 회사 내에서 뛰어 다닐 때 건물이 얼마나 진동했겠는지 상상에 맡긴다그 때문에 당시 동방빌딩 본관의 세 층을 차지했던 삼성물산 전 직원은 지진의 강도에 따라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모두 알곤 했다참 여러 가지로 회사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것인데그걸 두고 남들이 뭐라 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저런 놈이 다 있노참 별난 놈 하나 왔네." 이게 당시 회사 직원들의 내 평가였다.

 

근데그렇게 죽어라 뛰었는데 성과가 없었다산지사방에 있는 해외 거래선들에게 열심히 편지와 텔렉스를 보내도 답이 오는 데가 드물고어쩌다 답이 와서 그걸 들고 당시 강관업체 수출부로 가서 매일 인사해도 아 이 친구들이 웃기만 하고 도시 내가 낸 문의에 답을 주지 않았다아무리 냉대를 해도 매일 아침마다 몇 개월 강관업체들의 수출부에 출근해서 정성을 보이니까거기 여직원들은 내가 가기만 하면 묻지도 않고 커피를 내 왔고내기 장기를 좋아하는 수출부장은 이번에는 나를 꺾겠다고 장기판을 들고 내 앞으로 오곤 했다당시에는 아직 미혼인데다 인물 좋지 사람 좋지 그러니 여직원들은 나를 아주 반겼다그렇게 강관업체 양반들과 사귀기를 수 개월 한 후에야불쌍하다고 가격 오퍼를 주기 시작했다

 

"어이저 친구 맨날 와서 헛물만 켜고 가는거 보니 불쌍하네물량 2천톤 정도 줘서 팔아오나 보게!"

 

당시 상사에게 일체 물량을 주지 않았던 부산파이프 K 수출부장의 명이었다완전 거지에게 동냥 주는 기분으로 주었던 것이다그런데물량 줌 뭘하나그걸 받아서 해외 거래선에 가격을 책정해서 보내도 도시 성사되는 일이 없었다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이러다가는 헛물만 켜다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내 딴에 대책을 강구했는데 그게 미국 출장이었다그래 회사에 해외출장 품의서를 “개발새발” 작성해서 허 과장에게 올렸다그 내용은 이렇다.

 

“아니도대체 물건 사는 님이 어떤 님인지 그 동네 물건 값은 얼마인지제품의 유통구조는 어떠한지같은 강관이라도 어떤 제품이 잘 팔리고 이문이 남는건지뭘 알아야 장사를 할텐데 가 보지도 않고 앉아서 해외 거래선들이 주는 문의만 받아서 작업해 가지고는 도저히 승산이 없습니다강관 수출실적을 보니 미국향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내가 미국에 출장 가서 시장을 돌아보고 거래선을 개발해 와야겠습니다글쿠 왜 내가 아무리 가격 오퍼를 해도 성사가 안되는지 이유라도 알아야겠습니다그러니, 2주간 출장을 허락해 주십시오. 

 

뭐 이런 요지의 품의서였다참고로내 필체는 소문난 악필이라 누구든 내 글을 읽으려면 눈쌀을 찌푸리고 집중해서 봐야 했다허 과장이 내 품의서를 눈쌀을 찌푸리고 보시더니 내게 물으셨다.

 

“김진태 씨이게 뭐에요.

 

“아거기 쓰여 있잖습니까미국출장 품의서입니다시장도 모르고 뭔 장사를 합니까우선 갔다 와야 뭐가 되도 될낍니다.

 

“아니그게 품의서인 줄 내가 모르고 묻는가이 친구가정말.

 

허 과장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옆에서 들은 직원들이 눈이 뚱그래져서 날 쳐다 보는데그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읽혔다

 

“아니저놈 미쳤나? 

 

나야 워낙 눈치가 없고 내 할 일만 하는 사람이라 뭘 몰랐지만당시 해외출장은 부장급은 되어야 갈 수 있었고그것도 회사에 큰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포상조로 준 특혜였다그걸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쫄짜가 겁대가리 없이그것도 모두가 최고로 선망하는 미국에 가겠다고 품의서를 올렸으니 오죽했겠는가다행히 허 과장은 성품이 너그러운 분이셨는데다 평소 나를 곱게 보셨는지 인상을 쓰시면서도 결국 도장을 찍어주셨다그리고이어 부장상무부사장까지 결재를 받았다당시 나야 결재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특별히 머리를 숙이지도 않았다마치 빚 받으러온 빚쟁이처럼 품의서를 내밀고 도장 눌러 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한번 내 상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시라기분 더러웠을 것이다이 쫄따구가 싹싹 빌어도 해 주기 어려운 건을 들고 와서 하는 말이나 태도가 “이거 도장 안 찍음 당신 문제가 있는 사람이야” 하는 듯 했으니 말이다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은 윗 사람은 아랫 사람이 서류 가지고 오면 도장 눌러주는 기계라는 생각이었다.

 

"아니윗 사람이 업무파악을 어떻게 다 하나믿고 밀어주는게 윗 사람 일이지." 

 

근데현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허 과장께서 내 품의서를 위로 올리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나중에 알고 보니 당돌하기 짝이 없는 내 품의서가 승인되기까지에는 당시 부사장이셨던 주영석 씨의 넓은 배포가 주효했다이 양반 내 품의서를 보시더니 씩 웃으시며 “그 친구 물건이네” 하시며 도장을 빵 찍어주셨다고 한다주영석 씨는 일찍 미국에서 공부하시고포항제철 초기 미국 현지법인을 설립하셔서 운영하셨던 미국통이시다.

 

품의서 건으로 돌아가자나야 내가 올린 품의서 내용에 확신이 있었기에 윗 사람들이 “어느 누구도 감히” 이걸 거부할 수 없다고 믿었다그래당연히 결재가 날 줄 알았지그 와중에 회사 간부들 간에 기상천외한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진 사실을 나만 몰랐다그거 아는데 그 후 6년이 걸렸다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 감을 잡으실 것이다사실 나는 거기에 한 수 더 뜨서 엉뚱한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당시 회사에서 아무리 출장을 길게 보내야 2주가 최대여서 나는 품의서에 2주만 다녀 오겠다고 적을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내 속셈은 최소한 한 달은 다녀야 그 넓은 시장을 파악할 수 있음을 알고 거기 가서 연장할 속셈이었다.

 

그 해 겨울 생전 처음 비행기라는 것을 탔다. Northwest 항공편으로 빙빙 돌아 LA에 도착해서 거기 거래선들을 방문하고 다니는데 영어도 제대로 안 되는 촌놈이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택시 타고 찾아 다니다 보니 금방 한 주가 지났다그 때 가려고 계획했던 도시가 서부인 LA외에도 걸프 해안 쪽인 Houston, TX, 중부인 Chicago, 동부인 New York, 중남미인 Mexico City, 캐나다 동부인 Montreal인데 비행기만 타고 다녀도 2주가 더 될 것 같았다그래, LA 지점에서 직접 본사에 텔렉스를 쳐서 보냈다물론 영어로 보냈지만 한국어로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미국에 와서 다녀 보니 이거 엄청 넓은 땅 덩어리입니다. 2주에 시장을 파악한다는건 어불성설입니다그러니제 출장을 1개월로 늘려 주십시오출장비는 2주 분 밖에 받아오지 않았지만 추가비용은 지점에서 빌려 쓰겠으니 나중에 본사에서 갚아 주십시요.

 

나는 내가 보낸 텔렉스가 본사에 어떤 회오리를 몰고 왔는지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나 땜시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무엇보다 내 텔렉스의 첫 영어 문장이 삼성 직원 모두의 입에 회자하는 명문이 되었다America is too big to cover in two weeks.  아니세상에 신입사원이 겁 없이 미국출장을 다녀 오겠다고 한 것 부터가 완전 또라이인데이게 보내주었더니 거기에 몇 수를 더 보태서 요구했으니 다들 할 말을 잊었다고 한다어떤 쫄짜가 감히 출장지에서 텔렉스로 출장연장을그것도 한 달이란 긴 기간을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단 말인가또 감히 지점에서 돈을 빌려 쓸테니 본사에서 갚으라고 하는 말이 꼭 사장이 쫄짜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후에 내가 뉴욕 주재원으로 있을 때 보니까이병철 회장이나 그 가족들이 미국에 오면 이런 요구를 자주 했다내 텔렉스를 받고 본사 양반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는지 감이 좀 잡히실 것이다그래 우리 과 직원들 특히 평소에 나를 삐딱하게 보았던 양반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친구 평소에도 겁대가리 없더니 이제 죽을라고 환장했네출장 갔다 옴 어째 되는지 보자.

 

내가 알기로나처럼 아무 배경도 없는 신입사원으로 미국 출장도 내가 1호였고그걸 현지에서 연장해 달라고 요청한 사례도 내가 1호였다그런데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는가그 때 중화학사업본부장이 서울상대 출신 서주인 상무이셨는데이 양반이 내 텔렉스를 읽고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야뭐 이런 놈이 다 있노이미 지가 저질러 놓고 텔렉스 보낸 걸 어짜노결과가 어째 되는지 함 두고 보자.

 

내가 인덕이 있으려고 이런 분이 그 때 그 자리에 계셨던거다삼성이 현재 세계적인 기업이 된 이유가 바로 이런 인재들을 발탁해서 기용했기 때문이다그래 상무의 결재로 내 출장연장이 승인되었고추가경비는 지점에서 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가 떨어져서 출장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참고로 내가 돌아 왔을 때 내게 시비 건 윗분은 아무도 없었다단지이 겁대가리 없는 자가 우째 되는지 수군수군하며 바라보았던 무능한 직원들은 도처에 즐비했다이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나는 "무사히그리고 "열심히내 일만 했다이 글을 읽으시며 어느 정도 눈치를 채셨겠지만나는 뭐든 한번 결심하면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하든어떤 해꼬지를 하든상관하지 않고 탱크처럼 내 할 일만 하는 저돌적인 성격이다싸나이 중 싸나이 아닌가나중에 알고 보니회사에서 내게 딴지를 걸었던 무능한 양반이 꽤 많았는데 유독 나만 그걸 모른 채 내 할 일만 했다내가 너무 힘차게 밀고 나가니까 딴지를 걸려다가 자기들만 자빠졌던 것이다이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출장 중 내가 겪은 이야기를 다 기록하려면 책을 한 권 묶어야 해서 그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이 출장으로 내가 달성했던 성과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앞으로 큰 사업에 뜻이 있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될 내용이다.    

 

첫째는최초의 대형수주 달성이었다나는 이 출장에서 거래선들을 여럿 만났고연락처만 확보한 거래선도 제법 되었다돌아오자 마자 이들에게 거래를 트기 위해 밤이 맞도록 텔렉스를 두드렸다그러나어찌된 것이 한 곳에서도 답이 오지 않았다그걸 한 달을 계속하니 내가 이거 뭘 제대로 하는건지 긴가민가했다이미 다른 이야기에서 보신 대로내게는 거머리 근성이 있어서 한번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평화를 좋아해서 절대 먼저 시비를 거는 법이 없지만일단 싸움이 붙으면 줘 터지면서도 이빨로라도 한 군데 물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그래서나보다 크고 힘센 애들도 오래 끌면 결국 항복하곤 했다물론 내가 한방에 나가 떨어진 경우는 예외였다그래밀려 오는 불안감을 뿌리치고 두 달을 계속 텔렉스를 두드렸다그랬더니그야 말로 소 뒷발에 쥐잡기로 딱 한 군데에서 답이 왔다그 회사는 당시 미국 중부에 있는 강관 제조업체로서 수입도 겸했던 회사였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생산하지 않았던 전선을 깔 때 그걸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선용 강관을 공급할 수 있는지 문의해 왔다이 회사가 바로 그 제품을 생산해서 미국 동부 전역에 공급하는 회사였는데수요가 많아 일부를 수입으로 충당하려 했던 것이다.

 

내가 그걸 들고 한국강관 수출부에 가지고 갔더니그게 제조하기가 아주 까다롭지만 고가품이라 흥미가 있다고 해서 본격적인 수주작업을 진행했다그해이 회사와 거래가 성사되어 백만 불에 상당하는 첫 주문을 받았고그게 매년 분기마다 반복되었다그렇게 해서 당시 직거래 실적이 전무했던 강관이 당당하게 삼성물산의 주요 수출품목으로 자리잡았다내가 출장 갈 때인상을 쓰며 내가 폭망할 것이라고 속으로 수군수군하던 동료직원들이 부러운 눈으로 날 쳐다 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당시 한국 3대 강관제조업체 가운데 하나인 한국강관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거래선 향 제품을 거기에 몰아서 주었기 때문이다이게 강관 직거래로 한국 종합상사가 미국에서 수주한 첫 거래이자 대형 수주였다이게 내 초기 강관사업의 기반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사내에서나사외에서나 내 입지는 성큼 올라갔다그동안 나를 거지 대하듯 대했던 한국강관 수출부 직원으로부터 수출부 총책 상무까지 나를 중요 거래선으로 인정해서 그때부터 내가 들고 가는 건이면 성실하게 답을 주기 시작했다나를 특히 좋아했던 수출부 직원 한 사람은 내게 주는 가격은 일부러 다른 거래선보다 가격을 낮게 책정해 주어서 내가 수주를 성사할 수 있도록 암암리에 돕기까지 했다거지에서 왕자 대우로 바뀐 것이다내가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얼굴에 뻔쩍뻔쩍 빛이 나서 종횡무진 회사를 뛰어 다니며 매일을 신나게 살았다사내에서도 쫄따구가 지 하고 싶은 대로 다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내 윗분들은 뭐든 내가 품의를 올리면 읽어 보지도 않고 도장을 빵 찍어주셨다당시 내가 워낙 쫄짜이다 보니미국에 있는 지점들이 내가 요구하는 수주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텔렉스를 보내도 깜깜무소식인 경우가 허다했다그때내가 애용했던 양반이 바로 주 부사장이셨다내가 주 부사장의 이름으로 "지점을 족치는텔렉스를 직접 기안해서 부사장실로 가져 가면 씩 웃으시며 도장을 빵 찍어주셨다신입사원이 부사장실 드나들기를 제 집 드나들 듯하며 부려 먹은 것도 아마 삼성에서 유례가 없었을 것이다그게 초기 지점의 게으른 선배들을 내 손발처럼 부려 먹을 수 있었던 내 비장의 카드였다참고로 주 부사장은 그걸 엄청 즐거워하셨다.

 

"자네는 날 맘껏 부려 먹게그러라고 나 같은 사람이 위에 있는걸쎄."

 

언젠가 내게 하신 말씀이다사실 주 부사장과 얽힌 재미있고 황당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있지만 그건 또 다른 글에서 나누겠다.  

 

둘째는신규시장 개발이었다나는 출장을 통해 그동안 미국 서부의 거래선들에게 가격을 내어도 성사가 안 된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았다서부시장은 한국에서 가장 가깝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필요가 없는 데다미국 강관제조업쳬가 없는 고로 한국 강관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았다그래서서부지역 거래선들은 오래 전부터 강관업체들로부터 직접 수입했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상사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이를 깨달은 나는 강관업체들이 수출을 하지 않았던 시장을 개척하기로 했다.

 

"아니서부가 안되면 딴 데로 수출함 되지시상에 메이커고 상사고 모두 미리 안된다고 포기하는 바보들만 있네."

 

내가 했던 말이다왜냐 하면 미국 걸프 해안지역과 동부와 중부지역은 운임도 비싸고수송기간도 오래 걸리고미국 강관제조업체들의 독점시장이었기 때문에 수입품은 발을 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 강관제조업체나 상사들의 공통적인 견해였기 때문이다안 될 이유가 한 가지도 아니고세 가지나 되니 이들 생각도 분명 일리가 있었다그러나나는 남이 안 된다고 하면 꼭 해내려는 반골기질이 있어서 남들이 안 된다고 하니까 더 하고 싶었다그래 그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려 했고그 시도는 후에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셋째는전망이 좋은 신규품목을 개발하는 것이었다앞에서 얘기한 대로 내가 미국에서 받았던 첫 수주제품도 그 전까지는 한국에서 생산하지 않았던 신규품목이었다나는 내 멋대로 시장성이 좋고 전망이 좋은 석유산업용 강관제품을 판매 주종제품으로 삼기로 결정했다그 계기가 된 사건이 있다내가 미국 시장에 출장 가서 보니 한국 강관업체들이 수출했던 일반강관을 송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래거기 송유관 취급업자들에게 물었다.

 

“아니일반강관을 송유관으로 사용하면 그게 버텨 냅니까?

 

“그 모르는 소리 말게한국제품의 품질이 얼마나 좋은지 당신은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걸쎄일반강관이지만 송유관으로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들의 대답이었다당시 송유관은 고가품으로 일반강관에 비해 그 가격이 20% 이상 비싸게 팔렸는데일본 강관업체들이 수입품 시장을 주도했다한국제품은 일반강관 가격인데도 그 품질은 송유관으로도 문제가 없었으니 당연히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이 사실을 모를 뿐 아니라 믿으려 하지 않은 것은 한국 강관업체들 밖에 없었다이제 신규품목을 개발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서신나게 거래선의 문의내용을 들고 강관업체들의 수출부에 가져갔더니 하나같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하도 답답해서 물었다.

 

“아니거기서는 이미 당신들 제품을 송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것이요?

 

그랬더니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김형우리 현재 시설이나 기술로는 석유산업용 강관제품을 생산할 수 없어요그러니 송유관 건은 말도 꺼내지 마시오.

 

그래 내가 어쨌을 것 같아요내겐 원래 거머리 근성이 있잖습니까계속 찾아 가서 비벼댔지요그랬더니지겨워진 수출부 담당자가 내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김형문제는 기술진이 죽어도 불가능하다고 수주 못 하게 막는 것이요그러니기술진부터 설득해서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

 

이 친구도 내가 그동안 끈질기게 쪼아대니까 마음이 반은 하는 것으로 돌아 선 것이었다그래서공장까지 찾아가서 기술진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는데이 양반들 죽어도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뼈 속까지 스며 있었다한국 강관업체들의 설비는 모두 일본 강관업체들이 공급해서 최초가동 뿐 아니라그 기술진의 교육까지 도맡았었기에한국 기술진은 일본 기술진의 말이라면 예수님 말씀처럼 믿었다일본 기술자들이 이들에게 맨트라처럼 이렇게 얘기했다고 했다.

 

"당신들 기계설비는 물 파이프와 개스 파이프 정도나 생산할 수 있도록 설치된 것이다석유산업용 강관생산은 그걸로는 생각도 하지 말아라!" 

 

이 소리를 들으니한심하기 짝이 없다.

 

"바보들 어째 경쟁사의 말을 그렇게 믿나지들이 미국시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나 해."

 

그러나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나는 아마 삼십 번 정도 찍었던 것 같다처음에는 죽어도 안 된다고 버티더니결국 내 설득에 넘어갔다

 

"문제가 생기면 삼성이 책임 질테니 No claim 조건으로 생산하시지요계약 조건에 그걸 삽입하셔도 좋습니다." 

 

쫄따구였던 내가 임의로 약속했던 내용이다윗 사람이 알았으면 회사 말아먹을 놈이라고 펄펄 뛰었을 일인데그때는 내 재량이 사장급이어서 어물쩡 그냥 넘어갔다사실 이외에도 내가 임의로 저질렀던 만행(?)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내 확신대로 송유관 수출사업에서 문제가 발생한 건은 한 건도 없었다급기야는한국 강관업체들도 더 이상 No claim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왜냐 하면그 조건을 삽입하는 대신 내가 그 가격을 일반강관 수준으로 후려 쳐서 엄청난 이득을 남긴 줄 나중에 알았기 때문이다이렇게 내 과감한 결정은 매번 회사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왔기에 나중에 알고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아니큰 사업 치고 위험부담 없는 사업이 어디 있어그거 겁내다 맨날 막차나 타지." 겁대가리 없던 쫄짜가 했던 말이다.

 

그 결과당시 석유파동으로 황금시장을 이루었던 미 걸프 해안지역의 송유관 시장을 한국 최초로 공략하여 1억불 상당을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강관업체였던 부산파이프는 송유관에 관한 한 삼성에 독점권을 허락했고이를 본 한국강관도 말은 안 해도 실질적인 독점권을 주었다입사 3년차에는 내가 혼자 미국시장에 수출했던 실적이 한국전체 강관 미국수출의 절반을 훌쩍 윗돌았고특히 서부지역을 제외한 지역만 계산하면 압도적으로 시장 자체를 지배했다참고로당시 한국의 대미 강관총수출은 2억불 상당이었다그래초기에는 마지 못해서 내 일을 도왔던 지점들도 내 말이라면 재깍 움직이게 되었다.

 

한 마디로 내 출장은 대성공이었던 것이다김진태 파동 이후로 삼성물산에서도 사원출장의 문호가 트였다.

 

“쫄짜도 보내니 해오는구나출장은 꼭 높은 사람이 가야 하는게 아니구나.

 

뭐 이런 의식이 회사에 형성되었던 것이다이렇게 승승장구한 결과나 혼자 시작했던 강관은 1년 후 별도 부서로 독립하여 강관선재과가 되었고그게 후에 강관부로 승격했다과로 승격했을 때내가 처음 받은 직원은 경기고 65회 서울상대 출신 K 씨로 삼성비서실 감사팀의 핵심인재였는데 나보다 한참 고참이었지만 내 조수로 받아서 교육해서 중동 담당을 하게 했다이 양반 내가 뉴욕 지점 사임한 후 내 후임으로 부임해서 나와 좋은 인연을 이어 갔다그래 나는 항상 고참을 조수로 받고과장부장을 받아서 부리는 위세를 누리다가 입사한지 4년도 안 된 1981 4월 내가 개척했던 미국시장에 주재원으로 부임했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개”같은 품목 받아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탈바꿈시켰던 이야기이다이것도 신데렐라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뜻을 세우고갈 길을 걸어가라잘못도 있으리라실패도 있을리라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가라. 

 

 

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 울 형님과 함께 지내던 방 벽에 걸렸던 형님이 세계지도를 하나 붙여놓았는데그 지도 밑에 쓰였던 말이다나는 그걸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위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원래 모두 실명으로 기록하였으나그 분들의 신상정보임을 감안하여 이미 세상을 버리신 분을 제외하고는 약자로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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