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왕상 19:19-20)
김 진 태 (Nyack College 교수)
http://www.nyackcollege.edu/jintaekim
요사이 인기있는 영화 "Lord of the Ring" (한국명 "반지의 제왕") 을 관람하면서 마음에 부딪치는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은 현실속에서는 기적을 부인하지만 그 심령의 깊숙한 곳에서는 세상의 법칙을 초월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간달프의 지팡이에서 뿜어나오는 능력을 보고 박수치고 함께 즐거워한다. 그러면서도 실제 삶속에서는 과거의 기적들을 모두 무식의 소치로 돌리고 메마른 죽은 뼈같은 삶을 영위하면서 하루 하루를 의미없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톨키엔의 작품보다 더 흥미진진한 기적이 믿는 자의 손길을 통해 역사하였음을 보여줌으로 이러한 기적이 환상속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뿐아니라 그러한 흥미진진한 삶이 우리의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1000년전에 이미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행했던 선지자가 있었다. 요단강물을 가르고, 보리떡 20개로 백명을 먹이고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며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의 죽은 뼈에 송장이 닿기만 해도 부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할 때에 우리의 죽을 육신도 이 죄의 저주에서 벗어나 하늘의 몸을 입는 놀라운 생명의 법칙을 미리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엘리샤는 이스라엘나라가 가장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타락한 시대에 6왕을 거치며 사역한 장본인이다. 사회가 타락할 수록 하나님의 빛은 더욱 찬란하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였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엘리샤처럼 세상가운데서 거하며 세상의 어둠속에서 하나님의 빛을 찬란하게 비치는 선지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그저 입술로만의 선지자가 아니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줄수있는 일꾼이 필요한것이다. 누가 세상법칙을 초월한 능력의 역사를 이 불신의 세대에 나타낼 것인가 한번 상고해보고저 한다.
먼저 엘리샤는 엘리야의 부름을 받았을 때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선뜻 나서는 과감한 결단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가진 자를 원치 않는 분이시기에 무엇이 가장 귀한 것인지 값어치를 아는 눈과 이에 따라 과감하게 가진 것을 버릴 줄 아는 결단의 소유자를 능력의 손길로 사용하신다.
두번째 엘리샤는 영적축복에 대해 끈질기게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소명에 합당한 성령의 충만한 은사를 위해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매어달리는 근성이 있었다. 우리의 기도도 이러한 근성있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쉽게 포기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으신다.
세번째 엘리샤는 받은 영적권세를 사용하는 역동적 믿음의 소유자였다. 엘리야의 겉옷은 엘리샤가 몸에 걸치고 사용하기 전까지는 땅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가진 예수이름의 권세도 이와 같은 것이다. 사용하지 않는 권세는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그림의 떡이요 장식품밖에 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단지 장식품처럼 가지고 다니는 무능한 그리스도인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요. 당신은 과연 어느 부류의 그리스도인인가요?
김 진 태 (Nyack College 교수)
http://www.nyackcollege.edu/jintaekim
요사이 인기있는 영화 "Lord of the Ring" (한국명 "반지의 제왕") 을 관람하면서 마음에 부딪치는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은 현실속에서는 기적을 부인하지만 그 심령의 깊숙한 곳에서는 세상의 법칙을 초월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간달프의 지팡이에서 뿜어나오는 능력을 보고 박수치고 함께 즐거워한다. 그러면서도 실제 삶속에서는 과거의 기적들을 모두 무식의 소치로 돌리고 메마른 죽은 뼈같은 삶을 영위하면서 하루 하루를 의미없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톨키엔의 작품보다 더 흥미진진한 기적이 믿는 자의 손길을 통해 역사하였음을 보여줌으로 이러한 기적이 환상속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뿐아니라 그러한 흥미진진한 삶이 우리의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1000년전에 이미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행했던 선지자가 있었다. 요단강물을 가르고, 보리떡 20개로 백명을 먹이고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며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의 죽은 뼈에 송장이 닿기만 해도 부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할 때에 우리의 죽을 육신도 이 죄의 저주에서 벗어나 하늘의 몸을 입는 놀라운 생명의 법칙을 미리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엘리샤는 이스라엘나라가 가장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타락한 시대에 6왕을 거치며 사역한 장본인이다. 사회가 타락할 수록 하나님의 빛은 더욱 찬란하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였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엘리샤처럼 세상가운데서 거하며 세상의 어둠속에서 하나님의 빛을 찬란하게 비치는 선지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그저 입술로만의 선지자가 아니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줄수있는 일꾼이 필요한것이다. 누가 세상법칙을 초월한 능력의 역사를 이 불신의 세대에 나타낼 것인가 한번 상고해보고저 한다.
먼저 엘리샤는 엘리야의 부름을 받았을 때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선뜻 나서는 과감한 결단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가진 자를 원치 않는 분이시기에 무엇이 가장 귀한 것인지 값어치를 아는 눈과 이에 따라 과감하게 가진 것을 버릴 줄 아는 결단의 소유자를 능력의 손길로 사용하신다.
두번째 엘리샤는 영적축복에 대해 끈질기게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소명에 합당한 성령의 충만한 은사를 위해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매어달리는 근성이 있었다. 우리의 기도도 이러한 근성있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쉽게 포기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으신다.
세번째 엘리샤는 받은 영적권세를 사용하는 역동적 믿음의 소유자였다. 엘리야의 겉옷은 엘리샤가 몸에 걸치고 사용하기 전까지는 땅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가진 예수이름의 권세도 이와 같은 것이다. 사용하지 않는 권세는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그림의 떡이요 장식품밖에 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단지 장식품처럼 가지고 다니는 무능한 그리스도인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요. 당신은 과연 어느 부류의 그리스도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