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패자와 구차한 패자

by 김진태 posted Sep 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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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6월 20일

지난 이틀간은 이태리와의 경기 후유증으로 통 논문도 쓰지 못하고 매일을 월드컵 관련기사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영국의 BBC 웹사이트에 들어가 그동안 한국전에 관련한 기사를 5시간 동안 감상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기사를 읽으면서 흥미로왔던 점은 한국전에서 패한 세 팀의 반응이 너무나 다른 점이었다. 최악은 역시 격정적인 성품의 이태리였다. 트라파토니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패배를 수긍하기는커녕 이태리가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고 성깔을 부렸고 공격수 비에리는 호텔에 돌아가 가구와 집기를 부수는 난동까지 부렸다고 한다. 뿐 아니다. 안정환이 속한 페리자의 구단주 가우치는 이태리의 축구를 망친 자에게 월급을 줄 의도는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일국의 장관이라는 사람조차 심판판정 때문에 졌다는 둥 사전에 이태리를 탈락시키기로 담합한 것 같다는 둥 체통에 어긋나는 망언을 계속함으로 이태리는 시합에 지고 대외적인 체통도 망가뜨리고 국민의 불만만 가중시키는 삼중 패배한 국가로 남은 것이다.

반면 포르투갈 진영의 반응은 이태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첫째, 포르투갈과 한국전도 이태리전 못지 않게 격렬했음에도 심판에게 탓을 돌리기를 거부했다. 후반에 한 명이 퇴장 당한 이태리에 비해 두 명이나 퇴장당한 포르투갈의 불만이 더 클 것은 자명함에도 말이다. 올리비에라의 말을 들어보자. "심판의 판정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가 끝난 지금 판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둘째,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데 대해 감사하고 당당한 패자의 모습을 보였다. "한 명이 빠진 열명이 경기를 하기도 힘든 일인데 구명만 남았을 경우에랴. 그러나 우리 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성취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므로 비록 패했지만 우리는 당당하게 월드컵 경기를 뒤로 한다."

셋째, 긍정적, 미래지향적이다. 주장 피고의 말을 들어보라. "한국에 패했다고 해서 포르투갈 축구의 전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미래에 다가오는 경기에서 더 잘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과거의 실패가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에 오히려 자극제가 되도록 하는 것 승리하는 패자의 당당한 자세이다. 이것이 포르투갈 축구가 세계에 뛰어난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첫 경기에서 한국에 패한 폴란드 코치 엥겔의 반응을 들어보자. 엥겔은 패배의 원인을 일방적인 응원에 돌릴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 팀에게 찬사를 돌렸다. "주최국과의 첫 경기는 항상 힘든 경기인데다 한국 팀은 우리보다 뛰어난 팀이었다." 뿐 아니다. 엥겔은 정확한 예측까지 함으로 한국이 포르투갈과 이태리를 꺾을 수 있는 팀임을 예측하였다. "한국 팀은 아주 공격적이고 조직적인 경기를 펼치는 팀이다. 어느 팀이든 한국을 이기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다." "D조에서 포르투갈이 최강 팀이라고 하지만 기억하시라. 한국의 현재 전력은 세계의 어느 팀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제 한국 팀도 남의 얘기만 할 때가 아니다. 이미 세계강국의 대열에 들어선 축구왕국이 되었기 때문에 실력만 향상시킬 것이 아니라 패배했을 때에도 당당하게 상대를 칭찬할 줄 알고 자신의 약점을 찾아 미래를 위해 보완하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포르투갈과 폴란드의 당당한 패자의 모습을 보며 앞날의 우리의 모습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4강전에 승리할 것을 믿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