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8일 “이르디닛 가는 길”
오늘은 림준호 선교사가 과거 처음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했던 다르항을 경유 임병철 선교사 가정이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하고 계신 이르디닛으로 가는 날이다. 울란바타르에서 다르항까지의 거리는 230 킬로로 약 4시간이 걸리고 다르항에서 이르디닛은 200 킬로로 3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길은 모두 포장이 되어 있고 특히 다르항에서 이르디닛 구간은 최근에 포장되어 몽골에서 가장 운전하기가 좋은 길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은 1년 중 날씨가 가장 화창한 때라 그래도 운전하기가 쉬운 편이지만 영하 4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길이 빙판이 되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길이라 했다.
두 도시는 몽골 5대도시 중 2위와 3위에 속하는 도시로서 원래는 다르항이 인구 10만으로 2위였다가 현재는 이르디닛이 인구 10만을 상회함으로서 2, 3위의 순서가 바뀌었다. 다르항은 원래 러시아가 지배하는 동안 중화학공업단지가 있던 지역이었으나 러시아가 철수한 후 숙련기술력과 자원부족으로 공장들이 모두 폐쇄됨으로 인해 공장에서 나오는 소득에 의존했던 거주자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극심한 실업과 가난 속에서 허덕이는 지역이다. 반면에 이르디닛은 세계 최대규모의 동광산이 있어 년간 10억불의 매출을 기록하는 몽골경제의 효자라고 했다. 몽골 년간 총생산액의 10 퍼센트를 이 광산에서 담당한다니 알만하다. 특별한 기간산업이 없는 몽골의 미래의 관건은 광산업 개발이다. 지난 대선에서 공산당이 다시 다수당이 됨에 따라 다른 두 곳의 광산을 개발하는 법안이 올해 의회에서 통과될 것이 확실시되는데 이 두 광산이 개발되면 몽골의 국민총생산이 34 퍼센트가 증가하게 될 것이라 했다. 이 두 광산의 개발은 캐나다 회사가 맡고 있다. 광산개발에 있어서는 캐나다와 중국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고 했다.
임병철 선교사가 다르항에 있으면서 제일 먼저 이 곳을 향한 비전을 불태우고 주말마다 다르항에서 출퇴근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지도자를 육성한 후 이제 정식으로 이 곳으로 이사를 했던 것이다. 몽골에서 인터넷이 최초로 개통된 도시가 바로 이르디닛으로서 동광산에서 나오는 소득에 힘입어 시민들의 생활수준도 안정되어 있는 지역이라 했다. 이르디닛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전략요충지역이다. 동쪽에는 수도인 울란바타르와 다르항과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볼강, 무룬 등으로 가는 관문이다. 이르디닛에는 몽골 국립대학 분교에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는데 이들 대다수가 서부지역에서 온 수재들로서 향후 서부지역을 움직일 지도자 감들이다. 이들에게 복음을 심는다면 몽골 서부지역의 주요도시에 교회를 세울 지도자를 양육할 수가 있을 것이다. 향후 몽골선교는 이르디닛의 전략적인 위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이번 여행 중 임 선교사와 함께 몽골 5대 도시 가운데 4개 도시를 방문해서 그 전략적인 가치를 점검하고 선교전략을 함께 세울 예정이다.
대략 짐을 싼 후에 어제 아침식사를 했던 캘리포니아 레스토랑에서 선교사 직원들과 쟌네 일행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원래 9시에 문을 열지만 데니스가 특별히 부탁해서 아침 8시 30분에 식사를 했다. 장거리 여행인지라 오전 10시에는 출발할 작정이었지만 워낙 많은 인원이 3대의 차에 분승해서 갈 짐을 꾸리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정오에나 출발할 수 있었다. 먼저 짐을 대략 싣고 일행을 기다리느라 운전석에서 앉아있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다. 날씨가 더워 창문을 열어 둔 채 운전석에 앉아서 거리를 오가는 차와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노라니 몽골청년 몇 명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시비를 걸었다. 야비한 미소와 함께 내 몸에 손을 대는 척하며 차 속으로 손을 넣고 물건을 훔쳐 가려고 했다. 화가 나서 주먹으로 얼굴을 박살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는 힘껏 고함을 쳤더니 얼른 도망가 버렸다.
나중에 에스더 사모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이 사람들 외국인처럼 생긴 사람만 보면 고의적으로 접근해서 시비를 걸고 짐이고 차 부품이고 모두 훔쳐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경우에는 반드시 현지인을 대동하고 다니는 것이 안전하며 혹 혼자 다니다가 이런 경우를 당했을 때에는 절대 시비에 말리지 말고 있는 힘껏 고함을 치면 그래도 사람들 앞에 수치를 당하는 것은 싫어하는 몽골인들이라 달아난다고 했다. 과거에 한국선교사 한 분은 칼에 난자 당해 고생을 했고 여자 선교사 한 사람도 카메라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 우리 교단의 의료 선교사로 다르항에 있는 닥터 팸도 있는 짐을 몽땅 털린 적이 있었다 하니 한번씩 겪어야 할 신고식인가 보다. 결국 나는 무의식 중에 적절한 대응을 해서 차와 짐들을 잘 보호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성격을 잘 아는 임 선교사인지라 내게 차와 짐을 지키도록 부탁을 했다고 했다. 도착한 지 이틀째인데 벌써 몽골에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실없이 웃으며 접근해오던 그 젊은이들의 얼굴이 어찌나 나를 분노케 하는지 모르겠다. 그 얼굴에 떠올랐던 비굴함은 내 오장육부를 뒤틀리게 할 정도로 역겨웠다.
왕년에 세계를 흔들었던 징기스칸의 후손들이 이리도 비참하게 전락했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했다. 그래도 몽골에 선교하려 왔는데 이만 일에 몽골인들에게 악감정을 품으면 안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느라 힘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2차 대전 직후 몽골을 내몽, 외몽으로 분리해서 지배하기 시작한 중국과 러시아가 고의적으로 몽골 남성들의 강인한 혼을 파괴하기 위해 시행한 정책의 결과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만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 도약할 용기가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몽골에서 차를 길에 세워 둘 때에는 누군가 사람이 운전석에 앉아서 지켜야 한다. 차만 세워 두면 밖에 붙은 모든 부품과 차 바퀴까지 몽땅 빼 가기 때문이다. 내가 지키고 앉아 있는데도 강탈하려 했으니 아무도 없었으면 오죽했겠는가? 그래서 밤에는 반드시 차를 유료주차장에 맡겨야 한다. 임 선교사의 아파트 지하에 있는 주차석은 임 선교사가 2년 전 미화 1만 2천불에 확보한 자리인데 지금은 1만 5천불을 호가한다고 했다. 이러다가 아파트 값이나 비슷하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긴 혹한 속에서 차의 시동을 원활하게 걸 수 있는 장소는 지하주차장 밖에 없다 보니 기를 쓰고 주차석을 확보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선교사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바로 아침 저녁 주차장에 차를 대고 빼는 일이라 했다. 임 선교사가 거주하는 이르디넷의 주차장은 입구와 주차석이 어찌나 협소한지 20분 이상 곡예를 해야 차를 대고 뺄 수 있다고 했다. 차는 사역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품인데 이 차를 관리하는 것이 보통 진을 빼는 일이 아닌 것이다.
사정도 모르는 임 선교사 일행이 뒤늦게 나와서 차 3대로 분승해서 함께 출발했다. 나는 임 선교사의 도요다 랜드크루저에 다른 다섯 명과 함께 타고 짐을 지붕위까지 잔뜩 싣고 출발했더니 차가 무거운지 잘 나가지를 않았다. 울란바타르를 빠져나가는 교통체증이 끔찍했다. 특히 나담 축제가 임박했기 때문에 교통체증이 더욱 심한 듯했다. 울란바타르 근교는 땔감으로 나무를 다 베어가서 헐벗은 산천이 보기에 안쓰럽더니 수도권을 벗어나니 그런대로 볼 만하고 교통량도 줄어들었다. 긴 겨울철에 동파한 아스팔트가 많아 길이 누더기 같기는 하지만 다르항까지 포장이 되어 있어서 운전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임 선교사가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힘들 것 같아 나도 손수 핸들을 잡고 몽골의 산야를 달리는 기쁨을 누렸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목초지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양, 소, 염소, 말 들의 무리가 내 눈에 경이로 다가왔다. 여름이라 그러한지 유별나게 새끼들이 많이 눈에 뜨였다. 새끼 양과 새끼 염소, 그리고 망아지들이 떼지어 어미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어찌 귀여운지 품에 안아 주고 싶었다. 조금 더 고지대에 오르니 사진으로만 보던 “야크”도 많이 보였다. 야크는 덩치만 큰 것이 우습게 생겼는데 고기 맛은 쇠고기와 비슷하다 한다. 1990년과 1992년 2차에 걸친 이스라엘 여행 중 베두윈들의 목초지를 구경한 적이 있는데 몽골은 목초지의 비옥하기가 이스라엘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과도한 화목채취로 민둥산이 된 울란바타르 근교를 지난 후 펼쳐지는 모습은 정말 평화롭고 풍요로웠다. 지형은 노년기 지형으로 완만한 경사를 지은 산 위에는 침엽수들이 말갈기처럼 솟아 있는 것이 멋있었다. 산이 거의 없이 두루 평평한 초원이 펼쳐져 있는 미국 중서부의 평원들에 비해 몽골은 산과 들이 적당히 조화를 이룬 평원들이 끝없이 펼쳐 있다. 미국과는 달리 농사를 짓기에는 겨울이 너무 길고 토양이 척박한 셈이지만 목초지로는 가장 이상적인 지형이다. 최근 들어 인구가 도시로 이전하는 경향이 있어 난방용 화목의 수요가 늘어나 삼림황폐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광활한 초원에 흩어져 사는 유목민들이 사는 곳에는 문제가 없으나 대도시 근교의 경우에는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과도한 화목채취를 하기 때문이다. 울란바타르도 해발 1300미터 정도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다르항과 이르디닛은 이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래서 가는 길이 계속 오르막이라 때로 귀가 멍멍하게 울리기도 했다.
임 선교사에게 부탁해서 차의 핸들을 쥐니 가슴 속을 울리는 찡한 감명이 있었다. 특히 콧구멍만한 땅덩어리 안에서 아등바등하고 살아온 한국땅과 비교하니 더욱 그 광활함이 부러웠다. 이 대평원을 치달아 중원을 차지하고 구라파까지 삼킬 뻔했던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했다. 어린 시절 한국이란 우리가 너무 비좁고 답답해 때때로 몽골의 들판을 말을 타고 끝없이 달리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끝간 데 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며 내 젊음을 불태우고 싶었기에 한국을 뛰쳐나와 미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군지도 벌써 28년이다. 말은 아니지만 차로라도 몽골의 들판을 달리니 옛날 그 꿈이 나를 새롭게 깨워주었다. 몽골의 길은 울란바타르 시내를 제외하고는 모두 1차선으로 되어 있다.
몽골에서 포장된 도로에서 차를 몰 때에 두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는 긴 겨울 동안 동파한 곳이 많아 언제라도 이를 피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길이 괜찮아 보여서 멍하게 차를 몰다가는 언제 구덩이를 만날 지 모른다. 고속으로 달리다가 구덩이를 피하지 못하면 타이어가 찢어지고 샥이 나가는 것은 다반사이다. 두번째 위험한 상황은 앞차를 추월해야 할 경우에 벌어지기 쉽다. 서행하는 짐차나 버스를 추월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가 아주 위험한 때이다. 대부분의 길이 직선이 아니고 꾸불꾸불한데다 완만한 경사가 진 산길이라 시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이럴 때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하다가 앞에서 오던 차와 정면충돌하거나 언덕으로 굴러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길을 가면서 골짜기 구비진 길마다 보호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군데군데 파란 천을 매어 놓았기에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사고 나서 사람이 죽은 곳이라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보니 파란 천이 매여 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괜히 운전하기가 찜찜해졌다.
임 선교사는 다르항에서 사역하던 2년 동안 이 길을 매주 다녔다니 얼마나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까? 1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겨울철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고 했다. 길이라는 것은 온통 빙판이니 꾸불꾸불한 언덕길을 돌아 골짜기를 내려 갈 때마다 기어를 2단으로 놓고 시속 1 킬로로 서행해야 한다. 임 선교사도 수업료를 톡톡히 냈다고 한다. 자로갈랑에서 빙판 길을 달리다가 차가 미끌어져 굴러간 사고를 당했다니 나도 조심해서 운전해야겠다. 그 말을 듣고 임 선교사의 차 바퀴를 보니 그 동안 험한 길을 너무 다녀 바퀴가 수명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빨리 바꾸지 그러냐고 물었더니 선교부의 예산축소로 1년에 차 보수에 할당된 금액이 1천불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바퀴만 다 바꾸어도 없어질 예산이다. 이 곳에서 차의 적절한 보수는 선교사의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을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적어도 차 보수에 4,5 천불은 쉽게 들어가는데 참 걱정이 되었다.
울란바타르 지역을 벗어나면서 유목민의 “게르” (이동용 천막집)가 곳곳에 있는가 하면 가끔씩 골짜기에 지어진 촌락들도 보였다. 왜 이 사람들은 평지에 집을 짓지 않고 산 골짜기에 지을까 궁금해서 임 선교사에게 물어 보았다. 알고 보니 몽골정부에서 몽골인의 경우 1인당 4,900 평방 미터 (약 1 에이커)에 상당하는 땅을 공짜로 불하해 주는데 이 땅들이 산 골짜기 땅들이기 때문에 촌락들이 골짜기에 형성된 것이라 한다. 공짜로 땅을 불하해 주어도 땅을 차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왜냐 하면 받은 땅에 자비로 울타리를 만들어서 둘러야 하는데 그 비용이 가난한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울타리를 모두 두르지는 못하고 사방으로 말뚝만 우선 박아 놓고 돈이 생기는 대로 울타리 작업을 마무리 짓는다.
중국에서나 몽골에서나 여행시 가장 큰 애로 중 하나가 화장실 문제이다. 휴지가 비치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가도가도 화장실이 없는 곳도 많다. 중국에 여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항상 화장지 한 묶음을 주머니와 짐 속에 휴대하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덕분에 몽골에서 낭패를 면할 수가 있었다.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는 동안 외따로 떨어진 화장실에 다녀왔다. 랜드 크루즈가 큰 차라 그러한지 한번 기름을 채우면 10만 뚜구루 (미화 100불 정도)가 들어간다. 이 곳 사람들의 한 달 봉급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땅이 넓고 길은 거친지라 길에 뿌리는 시간과 돈이 엄청나다. 그러나 이 곳에서 선교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꼭 치러야 할 대가이다. 화장실은 엉성한 판자대기로 사방을 막고 바닥도 나무로 덮은 것인데 용변 구멍이 두 개가 있어 두 명이 동시에 볼 일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화장실 위치나 모양이 50년 전 한국의 시골변소와 흡사하여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중국에 비교해서는 냄새도 나지 않고 깨끗하여 사용하기가 별 문제가 없었다. 밑을 내려다 보니 깊이가 대단히 깊어 한국의 절간 변소를 연상시킨다. 그나마 이 주유소는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화장실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유목민들은 온 초원이 화장실이고 화장지는 사용하지도 않는다.
또 한 가지 내 눈길을 끈 것은 산봉우리가 있는 길 가마다 쌓여 있는 돌무더기였다. 한국의 서낭당에 쌓인 돌무더기와 비슷한 것으로 지나가던 길손마다 발길을 멈추고 이 곳에 돌을 하나 던져 공덕을 더하고 복을 빈다는 "어워"이다. 돌무더기 옆에는 하늘색 천과 붉은 색 천을 휘감은 기둥도 같이 있었다. 고대 삼한시대의 솟대에 해당한다고 할까? 하늘색은 바로 천신 탱게르를 상징하는 신성한 색깔로서 몽골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깔이다. 한국의 무당들의 복색이 이 두 가지 색깔로 되어 있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일까? 얼마 전 단기선교차 몽골을 방문했던 모교회 한국인 장로가 몽골인들이 보는 앞에서 이 돌더미에다 소변을 보았다가 몽골인들의 진노를 사서 봉변을 당할 뻔 했다고 한다. 몰상식했다고 해야 할지 열심이 지나쳤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런 사건이 한번 있고 나면 몽골선교사들은 엄청난 시련을 겪는다. 한 사람의 몰상식한 행위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몽골인들의 반감을 초래하여 몽골선교에 2년은 차질을 가져왔다고 한다.
4시간을 운전해서 다르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다르항에는 9명의 선교사가 상주하고 있고 진료소와 퀼트 제작시설과 학교와 교회가 있어서 제대로 시설을 갖춘 곳이다. 교단 선교부는 다르항에 두 개의 건물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CAMA Service 다르항 사무실 겸 부대시설로 사용하는 건물로서 구 러시아군의 막사였던 곳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식으로 새로 건축한 건물로서 Alliance Bible Training Center 에서 교회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ABTC건물은 2007년에 10만 불을 들여 현재의 건물로 깨끗이 증축했는데 현재 시가는 40만 불에 달할 것이라 한다. 다르항에 진입하면서 느낀 첫 인상은 시내를 짓누르고 있는 암울한 분위기였다. 거기다 날씨까지 찌는 듯이 무더워서 더욱 나그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시내 중심 언덕 위에는 거대한 부처의 좌상이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 이 도시를 덮은 흑암의 세력을 대변하는 듯했다. 몽골문화는 티벳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라마불교가 일반인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원래 계획은 울란바타르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해서 다르항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 저녁식사가 되었다. 도중에 식사할 만한 곳도 없었던 터라 다들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 그래, 음식을 보니 벌써 눈에 생기가 돌았다. 림준호 선교사 때부터 동역하시던 월남인 의사인 닥터 팸 사모님이 준비하신 스파겟티를 먹으니 허기졌던 얼굴이 행복한 미소로 덮였다. 닥터 팸과 선교부 직원들과 함께 잠시 대화를 나눈 후 5분 거리에 있는 ABTC 건물로 이동해서 책임자인 피터 디오렌과 40여분 훈련원 프로그램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피터는 마닐라 소재 얼라이언스 신대원에서 가르치던 사람으로 필리핀 선교부가 철수하면서 이 곳으로 옮겨온 분 중에 한 명이다.
우리 교단은 시작할 때부터 철수계획을 세운다. 일단 현지에 자체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할 수 있는 현지인 교회가 확립되면 선교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보고 미선교지역으로 선교인력을 가차없이 옮기는 것이다. 몽골지역도 2020년까지 선교목적을 달성하고 철수할 계획을 세우고 선교에 임했다. 얼라이언스의 선교가 시작된지 이제 121년이 되었고 그 동안 선교목적을 달성하고 철수한 지역만도 20개 지역에 달한다. 필리핀도 그 가운데 하나로 현재 필리핀 얼라이언스 교회는 필리핀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이며 자체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장성한 교회이다. 12년 전 필리핀 선교부가 철수결정을 내리면서 그 때부터 많은 선교인력들이 다른 지역으로 전보되었다. 림준호 선교사도 원래 필리핀 다바오 지역에서 선교사로 있다가 몽골선교에 비전을 가지고 다르항에 선교기지를 설치했다. 피터 시오렌은 신학박사로 마닐라 ATS 신대원에서 교수로 있다가 이고 이 곳에 부임한지 2년째로 아직 몽골어 훈련 중이다. 울란바타르의 데니스도 마닐라 얼라이언스 신대원 출신이다.
오후 5시 30분에 다르항을 떠나 일행 모두 이르디닛으로 향해서 도착하니 저녁 8시 30분이었다. 이르디닛은 세계최대규모의 동광산이 있어 시민들이 다른 도시에 비해 유족한 생활을 하는 곳이다. 몽골 50 퍼센트, 러시아 50 퍼센트 공동투자로 시작한 광산으로 년간 10억불의 매출을 올려 몽골의 노른자위이다. 러시아인 기술자들이 공장을 움직이고 있고 현지인들은 주로 몸으로 떼우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동광산 때문에 러시아 인만 해도 이 곳에 5천명이 거주한다. 러시아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1년 후를 대비해서 미국이 몽골정부에 추파를 보내고 있고 삼성과도 모종의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동광석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로 인한 환경오염이다. 대형강관이 끝없이 깔려 있어 무엇인가 했더니 오염물질을 매립지로 운반하는 강관이었다. 강관으로 운반해온 오염물질을 큰 도랑을 파고 땅에 파묻고 있는 현장을 지나가면서 보니 오염물질 매몰지역의 넓이가 장난이 아니다. 꼭 이스라엘 “텔”처럼 죽음의 언덕이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오염물질을 묻어대다가는 이르디닛 인근의 목초지가 모두 오염되는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이르디닛 교회에서 일하는 하나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르디닛에는 폐에 관련된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근무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광산근무자들의 경우 45세 이상까지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다 했다. 대부분 45세 이전에 폐질환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원래 광산업은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산업인데다 러시아 인들은 원가만 싸게 하는 공장을 지을 뿐 사람의 건강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러시아 인들이 지은 광산의 폐해는 서구광산보다 훨씬 극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제공할 만한 산업이 없는 몽골에서는 이 동광산이야 말로 생명줄이라 아무도 불평하지 못한다. 만일 러시아와의 계약이 끝나고 미국과 계약이 된다면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아마도 러시아가 건설한 노후설비를 폐쇄하고 생산성이 좋고 친환경적인 새로운 시설을 건립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산산업의 성격상 환경오염을 아주 막을 방도는 없을 것이다. 환경오염에 관한 한 이보다 더한 광산도 있다. 울란바타르에서 다르항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금광의 경우이다. 금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산 같은 극독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연전에 네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남 아프리카의 금광이 얼마나 끔찍한 환경오염을 가져왔는지 보도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곳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산업사회를 지향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데 가속도를 붙였다. 산업화로 인한 저주에서 피할 수 있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인간은 편리한 문명과 편안한 삶을 추구하느라고 자연을 파괴하고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특이한 존재이다.
아파트로 이사온 후 바로 떠나 1년의 공백 후에 귀환한 때문인지 처음 찾은 아파트는 엉뚱한 곳이었다. 비슷한 종류의 아파트 군들이 밀집된 지역이라 자칫 잘못하면 이런 실수를 한다. 처음 찾았던 아파트로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좁은 길에 뚫린 직사각형의 맨홀구멍에 랜드 크루저가 빠져서 꼼짝도 않는 것이다. "세상에 무슨 맨홀이 뚜껑이 없으니 희한한 나라야." 이래서 몽골에서 차를 몰 때는 항상 앞뒤를 잘 살피고 하시라고 정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실린 짐에다 차무게까지 족히 4톤은 되는지라 사람이 모두 내리고 후진 기어로 아무리 시도를 해도 바퀴가 꽉 끼어 꼼짝도 않았다. 보다 못해 내가 쟌과 몽골인 다운자이를 불러서 임 선교사더러 운전하라 하고 우리 셋이 차 앞부분을 손으로 들면서 차를 후진시켜 차를 뽑았다. 꺼내고 나서 생각해도 기특했다. 사실 엄청난 무게였는데 큰 무리 없이 들어 올렸던 것이다. 새삼 마음에 들리는 음성은 “나도 아직 쓸만하군”하는 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임 선교사 아파트를 찾아서 짐을 옮기고 나서 보니 온 집이 짐 창고로 변했다. 임 선교사 가족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40여 년 전에 지은 쇄락한 콩크리트 건물로 1970년대 서대문 산꼭대기의 서민주택을 연상시켰다. 페인트는 군데군데 다 떨어져 나가고 색깔은 어찌나 바래고 촌스러운지 처음에는 한심하게 보였다. 재작년에 임 선교사가 1만2천불에 구매했던 아파트로 공간이 좁기는 하지만 이 곳 사람들 수준으로는 지낼 만한 곳이다. 항상 교회지도자들이 들끓는 곳이라 오히려 이렇게 소박한 곳이 위화감을 심어주지 않아 사역에 적합하리라.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정도 아파트이면 이 곳에서는 중산층 이상의 몽골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임 선교사 아파트 바로 아래 층에는 변호사 가정이 거주하고 있다. 이 주위에는 고만고만한 아파트 군들이 밀집되어 있는 아파트 단지여서 교회를 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임 선교사네 아파트가 있는 곳이 6단지이고 바로 옆에 7단지 아파트가 건설 중이었다.
7단지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는 현장에는 주위 환경과 동떨어진 건물 하나가 달랑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몰몬 성전이었다. 임 선교사에 의하면 몰몬들이 전도하지 않은 지역이 없을 정도로 몽골은 몰몬들이 기승을 부렸던 곳이다. 현재는 몽골정부도 이에 경각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고 몰몬이 이단이라는 사실이 몽골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백인들이 전도하려 하면 우선 몰몬이라는 생각부터 한다고 한다. 이래 저래 몽골은 백인들이 사역하기에 어려운 곳이 된 것이다. 몰몬들은 몽골에다 그 본거지를 옮길 생각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몽골 대도시마다 요지에 몰몬 성전을 번듯하게 지어 놓았다. 울란바타르에도 시내 중심가에 어마어마하게 큰 몰몬 성전을 지어 놓았다.
원래 계획은 임 선교사 댁에서 함께 지내려 했으나 정리할 때까지 호텔로 가는 것이 좋을 듯하여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쟌네 가정과 함께 묵었다. 영어가 한 마디도 통하지 않는 것이 애로이긴 했지만 지은 지 얼마 안되어 깨끗하고 잠자리도 편안해서 지낼 만했다. 이 곳에서 이틀 지내고 430 킬로 떨어진 무룬까지 여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가는 길이 대부분 비포장도로인데다 그 동안 비가 많이 내려 길이 위험할 것이라고 다들 겁을 주지만 임 선교사는 몽골 5위도시인 무룬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밀고 나가겠다고 했다. 현지인들도 무룬까지 가는 길하면 고개를 흔들 정도로 멀고 험한 길이라 했다. 디렉터인 데니스와 버니 선교사가 울란바타르에서 한번 간 적이 있는데 4시간 동안 진창에서 차를 밀고 갔던 적이 있다. 여자들은 차 안에 있고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남자들이 팬티 바람으로 차를 밀며 갔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무룬까지 하루 이상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했으니 안식년 끝나고 돌아오자 말자 시차도 적응 안된 상태에서 그 먼 곳까지 교회개척작업을 위해 강행군하겠다고 나서는 임 선교사를 디렉터인 데니스가 극구 만류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임 선교사의 생각은 달랐다. 몽골의 기후의 특성상 실제 전도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날씨가 허락할 때에 다녀오지 않으면 또 1년을 허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1년간 떠났다 오니 이르디닛 교회에 문젯거리가 산적되어 있어 만나는 사람마다 도와달라고 했다. 이러한 문제에 붙잡혀 시간을 보내다가는 생산적인 교회개척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인들의 문제는 스스로 지도자들과 해결하도록 버려두고 미개척지역의 교회개척에 전념하게 함으로서 이들을 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르디닛은 몽골선교에 아주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기 때문에 바른 전략을 세우고 우선순위에 따라 사역을 하면 엄청난 사역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임 선교는 우선적으로 이르디닛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자로갈랑과 볼강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부터 시작하려 한다. 이 사역에 교인들을 모두 동원할 예정이다. 교인들 가운데 이 두 도시에 일가친척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쉽게 거점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눈을 더 넓게 떠서 서부의 주요도시인 무룬과 훕스굴에도 교회를 개척하려 하는데 이를 위한 자원도 교인들 가운데 있다고 했다. 임 선교사의 이르디닛 교인들 가운데도 서부지역 주요도시에 일가친척들이 많은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 분들을 이용한 전도로 이미 볼강, 무룬, 훕스굴에 전도의 문호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교인들을 통한 전도사역 외에 사역영역을 대학생들로 넓히려고 한다. 이르디닛 대학 학생들의 대다수가 서부지역에서 온 학생들인 바, 이들을 복음화하는 것이 서부지역 전도의 열쇠 중 하나이다. 대학생들은 6월에서 8월까지 3개월간 방학을 이용해서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가사를 도와야 하기 때문에 이들을 잘 훈련하면 좋은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임 선교사는 이를 위해 대학생들과의 접촉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미 대학교 측에서 한국어과를 개설해서 운영해 달라고 요청을 해왔으나 현재는 고정인력이 부족하여 시작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9월에 학교가 개학하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사역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대학 근처의 건물에 사역공간을 빌리려고 교섭하고 있다. 월세가 미화 150불 정도이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시설을 빌릴 수 있다. 몽골은 혹한이 오래 계속되는 땅이라 난방이 잘된 사역공간확보가 사역의 관건이다. 임 선교사는 어디를 가든 우선 사역공간확보부터 한다고 했다. 이번에 무룬에 가면 우선 사역공간부터 알아보려 한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두 부류의 사역자들을 접했다. 머리만 쓰고 행동이 없는 사역자가 있는가 하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밀고 나가는 행동하는 사역자가 있다. 선교는 발로 하는 것이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사고로 머리만 쓰는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다. 꿈을 가지고 행동으로 밀고 나가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이다. 비록 동키호테 처럼 풍차에 부딪쳐서 머리가 깨어질 망정 행동하는 사역자라야 선교사의 그릇이다. 이래서 한국인들이 선교사의 체질에 맞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