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김진태 목사 (얼라이언스 신대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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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를 관람하거나 읽는 이마다 가지는 두 가지 결정적인 의문사항은 (1) 이아고라는 인물이 어쩌면 그렇게도 사악한가하는 것이요, (2) 그리도 정직하고 성실하며 고귀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 오셀로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이아고의 궤계에 넘어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데스데모나를 살해하고 자결하는 파멸로 길로 치달아갔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는 사실 관중이나 독자의 의문만이 아니고 오셀로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의 의문사항이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상고하겠다.
오셀로가 멸망으로 치달아간 표면적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정작 신뢰해야 할 대상인 아내를 신뢰하지 않고 신뢰해서는 안될 이아고를 신뢰한 것이다. 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부터는 겉잡을 수 없게 된다. 둘째, 손수건 한 장을 증거로 삼아 당사자인 카시오와 데스데모나에게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혼자 데스데모나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지레 단정한 판단력 부족이다. 셋째,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죽임으로 스스로 심판자가 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오셀로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문제의 배경에는 이렇게 이아고같은 자의 간계에 속아 감정에 사로잡혀 일을 저지르는 오셀로같은 인물湧?있다.
그러면 왜 오셀로가 이렇게 쉽게 신뢰하지 않아야 할 이아고의 말을 신뢰함으로 이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나는 그 이유가 오셀로의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열등감에 있다고 본다. 극중에서 베니스의 상원의원들이나 귀족들은 하나같이 오셀로의 이름대신 "무어인"이라고 부름으로써 오셀로을 경멸한다. 당시 오셀로는 백인들이 지배하던 당시 베니스 상류사회에서 유일한 흑인이었다. 반면 데스데모나는 출신부터가 베니스의 상원의원인 브라반티오의 딸로서 귀족출신인데다 용모도 순결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오셀로에게 살해되면서도 끝까지 오셀로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고귀한 성품을 지닌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여인이 자신같은 흑인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오셀로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아고의 한 마디 귀띔과 손수건 한 장만 믿고 끓어오르는 질투에 자신을 맡겨 버렸던 것이다. 거기에다 두 사람의 결합도 비록 나중에 베니스 자작의 허가 하에 합법적인 부부가 되었지만 그 전에 데스데모나와 함께 야반도주하여 살림을 차렸던 전력이 있었기에 처가에 떳떳하지 못했다. 그러한 연고로 장인 브라반티오는 한번도 오셀로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항상 "무어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과연 오셀로만 열등감 때문에 이아고의 장난에 놀아나는가? 내가 보기에는 오셀로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내가 보는 "나," 사람들이 보는 "나," 이것이 나의 진정한 자화상이 아니오, 하나님이 보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나"가 내 자화상이 되기 전에는 누구도 이아고의 장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당신은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이아고를 신뢰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