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간은 오히려 '프로도'의 말에 동감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듣는 신세타령과 팔자한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왜 하필이면 한국 같은 땅에 태어나서 요 모양 요 꼴로 살아야 하는가?"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저렇게 쉽게 잘 사는데 나는 어쩌다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까?" "왜 우리 집안에 힘든 일은 다 내가 해야 하나?" '톨키엔'은 '간달프'의 입술을 빌어 우리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중요한 점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결정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 지혜가 없는 인생은 시작부터 잘못된 인생이다.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인생과 실패하는 인생을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둘째, 우리가 처한 시대와 환경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섭리에 의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전제조건이며 선물이므로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내가 태어난 나라와 시대, 나의 부모와 배우자와 자녀, 나의 용모와 달란트 등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생이다. 이런 인생은 엉뚱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기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을 시작도 못하고 한탄과 저주 속에 침잠하다 종말을 맞기 십상이다.
셋째,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내게 주어진 인생의 재료를 사용해서 얼마나 아름다운 창조적인 예술품을 만들 것인가에 맞추어져야 한다. 어느 시인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했지만 필자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우선 우리 인생 자체가 가장 완전한 창조적인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걸작품인 인간을 어떻게 한 조각 도자기에 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영원을 향해 가는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내게 주어진 시대와 환경과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재료이며 이를 가지고 어떠한 예술품을 만드는가는 각자에게 달려있다. 여기에 세상의 예술품과 우리 인생이라는 예술품과의 차이가 있다. 우리 인생이란 예술품은 재료 탓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어떠한 자세로 무엇을 만들었느냐 이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재료였을지라도 이를 감사함으로 받아 최선을 다해서 인생이란 걸작품을 만들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의 모든 소원을 이룬 자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지만 재료 탓만 하고 세월을 허송한 인생은 도공의 손에 깨어지는 그릇처럼 실패한 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가장으로서, 선생으로서, 목사로서 오늘 하루를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빚어가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