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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국일보 종교인 칼럼으로 2005년 2월 22일 자로 실렸던 내용입니다.


2005년 2월 15일

약관 33세에 “세일즈맨의 죽음”이란 희곡 하나로 퓨리쳐 상과 토니 상을 포함한 3대 타이틀을 거머짐으로 브로드웨이에 일약 스타로 등장했던 아서 밀러가 2월 10일에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20세기 희곡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명작으로 29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었다. 심지어는 북경에서도 공연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작가로서 성공했을 뿐 아니라 마릴린 몬로와 결혼함으로 세기의 염문을 뿌렸던 아서 밀러의 인생은 연극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아서 밀러의 죽음이 나의 마음을 끈 데는 두 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

첫째는, 우리 아들 재준이가 고등학교 2학년때 주연했던 연극이 바로 아서 밀러가 쓴 “The Crucible” (시련의 도가니)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극도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사회고발적인 작품으로 펜실바니아 주 살렘에서 실제로 있었던 마녀 사냥을 소재로 만들었던 작품이다. 이 연극에서 재준이는 거짓증거를 하느니 죽음을 택했던 주인공 죤 프록터 역을 맡아서 열연했다. 올가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암흑을 드리움으로 끝나는 연극을 관람하고 난 후 마음속에 밀려왔던 충격을 세월이 꽤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밀러의 작가로서의 뚜렷한 사명의식 때문이다. 밀러에게 희곡을 쓰는 것은 자신의 삶의 존재 이유 그 자체였다.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희곡을 쓰는 것은 제게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훌륭한 희곡을 쓰는 것이지요. 물론 의사가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예외라고 할 수 있지요.”

밀러는 희곡을 씀으로서 미국이란 나라를 송두리째 하나님이 원하는 의로운 나라로 탈바꿈시키기를 원했다. 밀러의 작품을 무대에 자주 올렸던 동역자 화이트헤드 씨는 이렇게 말했다. “밀러의 작품에 빠지지 않는 요소는 성경적 정의관입니다. 세상에 빛을 비춤으로서 정의가 메마른 사회에 성경적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밀러가 쓴 27개의 희곡은 모두가 사회고발적인 작품들이다.

불행하게도 세상은 밀러의 이러한 사명의식에 대한 성원에 인색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난 후, 밀러가 쓴 고발문학적인 희곡들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시대가 바뀌었던 것이다. 브로드웨이 자체가 너무 흥행위주의 경영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은 심각한 사회고발에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러는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고발문학적인 희곡과 작품에 전념했다.

밀러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에 떠올랐던 인물이 있다. 바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진저”라고 외치며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데 전인생을 불태운 사도 바울이다. 인생을 살되 뚜렷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끝까지 불태우는 인생은 정말 멋있는 인생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적인 사명의식이 있는가? 있다면 이를 위해 어떠한 역경에도 타협하지 않고 살 각오가 되어 있는가? 누구나 한번 자문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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