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12월 22일이었다. 마감일인 12월 1일에 제출한 박사논문 초안에 대해 담당교수가 평가한 내용을 돌려받았다. 내용에 대해서는 호평이었지만 문제는 마지막 두 줄에 있었다. 원래 논문과 직접 관련도 없고 내가 연구한 분야도 아닌 고대 헬라문헌에 나타난 대속사상에 대한 연구를 별도의 장으로 추가한 최종안을 12월 31일까지 제출하라는 요구였다. 말이 그렇지 시간이 1주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언제 방대한 고대 헬라문헌을 다 뒤져서 논문을 작성한단 말인가? 보통 이렇게 새 분야의 논문을 작성하려면 여건이 구비된 경우에도 연구조사와 논문작성까지 최소한 4개월은 걸린다. 설상가상으로 성탄절 전후라 학교의 도서관들도 다 폐쇄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불평할 여유도 없었다. 학위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1주일간 잠 한숨 못자고라도 논문을 작성하느냐 두 가지 선택 밖에 없었다. 8년의 각고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지. 정신을 가다듬고 여기 저기 수소문한 결과 뉴욕시 공립도서관은 성탄절 전후에도 열려있었다. 낮시간에는 처와 아들까지 총동원해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헬라문헌을 뒤져서 필요한 자료들을 복사해 왔고 밤에는 책상 앞에서 지샌 지 1주일 후 완성된 15면을 포함한 논문을 마감일인 12월 31일에 제출했다. 놀라운 것은 수정할 시간도 없이 일사천리로 1주일만에 작성한 논문인데도 내가 보아도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사건이 이듬해 2월에 벌어졌다. 제출된 논문은 담당교수가 읽은 후, 신대원의 다른 교수가 두번째 읽고, 마지막으로 외부에서 선정된 학자가 읽게 되어 있다. 그런데 두번째로 읽은 교수가 제기한 내용이 문제였다. 그 중 하나가 성탄절 전후에 추가했던 부분에 대해 논문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 없어도 되니 삭제하라는 요구였다. 아깝기 짝이 없었지만 삭제하고 보완할 사항은 다 보완해서 논문을 제출함으로 예정대로 5월에 졸업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김이 새도 한참 샜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안배였다. 바로 그 글이 내가 학술지에 발표한 첫 작품이 되게 하심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신 것이다. 거기에다 덤으로 정교수 진급요건을 충족시키는 결과까지 낳게 하셨다. 전문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금년에 새로 채택된 교수 진급의 필수요건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매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