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5) 할비는 들어오지 마 – 2006년 사건 ATS 교수시절
작성일자: 2006년 7월 27일
“할비는 들어오지 마, 할미만 들어오는 거야. 나는 할미가 좋아.”
아침운동 후 요시야 방에 들어 가려는데 요시야란 녀석이 내게 했던 말이다. 축객령은 이번 한번 만이 아니다. 내 처가 있을 때에는 요 녀석이 할애비는 필요가 없다고 내치곤 했다. 지난 6 월 한 달 동안 우리 집에서 제 어미와 함께 지낼 때에도 마찬 가지였고, 녀석을 보겠다고 지난 금요일 13 시간을 눈이 빠져라고 운전해서 딸네 집에 와서 지내는 현재에도 마찬 가지이다. 할애비는 할미가 해 줄 수 없는 일을 할 때만 필요한 존재이다. 목욕할 때, 남자 화장실 갈 때, 놀이터 가는 길에 업어 줄 때, 요런 때만 편리하게 부려 먹는 녀석이 막상 할미가 옆에 있기만 하면 할애비는 필요가 없단다.
오늘 아침에도 똑같은 소리를 해서 볼성 사납지만 4살 짜리를 앉혀 놓고 따졌다.
“야, 그럼 너는 할비는 사랑 않는거니. 앞으로는 목간도 화장실도 같이 안 간다.”
녀석이 그래도 눈치는 있어서 사랑 않는다는 말까지는 안 하지만 말하나 마나 아닌가? 사흘 전에 할비는 싫고 할미만 좋다고 말했다가 제 어미에게 호되게 혼이 난 후라 입장 곤란한 질문을 하면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4 살짜리의 눈치밥도 수준급이다. 어제 3시간을 더 운전을 해서 사우스 캐롤라이나까지 가서 유명한 머틀비치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보도를 걸으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녀석이 할미와 할비의 손을 잡으려 하고 제 어미 손은 안 잡겠다는 겄이다. 제 어미가 평소에 엄하기 때문에 자기를 무조건 사랑해 주는 할미와 할비가 있으니 엄마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할비는 항상 2등이고 엄마는 3등인 것이다.
아이들이란 다 그런 줄 알면서도 녀석이 할미만 좋다고 할 때에는 왜 그리 섭섭한지 “허, 사람이 속이 좁기는” 자탄이 절로 나온다. 요시야의 대답을 들으면서 문득 마음에 떠오른 것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던 장면이다. 세 번 물으셨고 세 번의 대답을 들으셨다. 왜, 세 번씩이나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려 하셨을까? 베드로를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세 번씩이나 사랑의 고백을 확인하고 싶으셨던 게다.
성경은 따지고 보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에게 사랑을 집중하라는 요구였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
오죽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이라고 말씀하며 온전한 사랑을 돌려받기를 원하셨을가?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처럼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축복의 근본으로 사용하신다. 오랜만에 요시야와 한가한 시간을 가지면서 언뜻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의 소치인가, 아니면 내 마음의 상태를 아시는 성령님의 역사인가?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