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 관련된 오해 (1) Gap 이론

by 김진태 posted Oct 2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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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Daily News 4월 6일자에 실렸던 기사내용입니다.

창세기에 관련된 오해 (1) Gap 이론
김 진 태 목사 (Nyack College 교수)
http://www.nyackcollege.edu/jintaekim

창세기에 관련해서 몇가지 결정적 오해가 한국교회 일각에 팽배한 것을 감안하여 필자가 2년 전 교단 목회자 교육 시 준비했던 내용을 건별로 보완해서 하나씩 게재한다. 특정인에 대한 비난을 하고저 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객관적인 성경적 증거에 의거한 학술적 고찰인 바, 이로 인해 개인적인 감정을 야기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라며 이 글을 싣는다. 오늘은 그 첫번 째 글로 소위 갭 이론에 대해 상고한다.

1. 갭이론이란?

1) 정의
소위 갭 이론은 19세기 초 Thomas Chalmers에 의해 다시 제기되어 Scofield Reference Bible에 의해 널리 알려졌으며 Fundamentalist에 속한 학교에서 아직도 가르치고 있는 이론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창조는 2절에 나오는 대로 마귀의 반역으로 인해 파괴되어 버리고 3절부터 다시 창조를 하셨다는 주장이다.

2) 근거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를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는 과학적인 근거이다. 이는 진화론의 등장으로 창조론이 된서리를 맞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동안 자연과학의 발달로 수억 년의 세월에 달하는 화석층을 발견하였는 바, 이것이 19세기에 주장하던 지구의 연령이 6000년 밖에 안 되었다고 창세기에 근거해서 주장하던 창조론자들의 논리를 와해시켰는 바, 두번의 창조론을 주장함으로 이 화석들은 첫번째 창조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여 일단 진화론과의 조화를 이루고자 한 것이다.

둘째로 이들이 드는 근거는 성경적 근거이다.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혼돈의 근거를 이들은 이사야서 14장 12절과 누가복음 10장 18절에 나오는 하늘의 전쟁에서 찾는다. 그래서 마귀의 반역사건이 첫번 째 창조 직후 일어나 당초의 우주가 다시 혼돈의 모습으로 파괴되었다는 주장이다.

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셋째로 이들이 드는 근거는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소위 "tohu" (혼돈)의 상태에서 만드셨을 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특히 바빌론신화에 나오는 악한 여신 트홈과 토후를 어원적으로 연결시켜서 해석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2절의 "tohu"의 상태는 원래의 상태가 아니었고 사탄의 반역과 전쟁으로 인해 초래된 상태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에 대한 근거로 이사야 45:18을 제시한다.

사 45:18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하시되 헛되이(tohu)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 비판

1) 진화론과의 조화를 이루는 데 문제가 있다.

진화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의 이치가 과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고 믿는 나 중심적 현재 중심적사고에 있다. 현재의 과학적인 이론에 근거하여 지구의 연령을 측정하고 화석의 연령을 측정하여 그것이 진실인 양 여기고 학설을 전개해 나가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뿐 아니다. 19세기 인본주의의 등장으로 현재 내 눈으로 기적을 체험할 수 없으므로 기적은 과거에도 있을 수 없었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의 주장이다. 현재의 자연과학이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다는 식의 논리로 성경을 보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측정되고 입증된 것만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소위 과학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조건적 (Conditional)인 것이고 개연성 (Probability)에 입각한 것이지 확실하다고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자연법칙은 지구의 대기권 안에서만 역사하는 국지적인 것이며 심지어 대기권 안에서도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은 잘 알고 있다. 영어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라고. 그래서 과학이 항상 맞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이비 과학자들은 과학을 모르는 무식한 이들인 것을 진짜 과학자들은 안다.

더욱이 19세기에 성경학자들이 창세기에 나오는 하루 (날)을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하루와 동일한 개념으로 보고 지구의 나이를 측정했던 데 결정적인 오류가 있었던 것인데 이에 대한 수정 없이 그저 진화론과의 조화에만 신경을 쓰서 억지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무엇보다 두번 창조론은 진화론과의 타협을 시도한 것이나 실제 진화론이 제시하는 화석층에 대한 해답이 될 수가 없다. 왜냐면 만일 첫번 째 우주가 완전히 뒤집어졌다면 현재 우리가 보는 화석층이 그대로 보존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론은 진화론과 타협하려다가 오히려 창조론을 궁지에 몰리게 하였을 뿐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이러한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슬픈 타협은 항상 우리를 약자와 패자의 입장으로 몰고 갈 뿐이다.

2) 이사야서의 한 구절에 근거하여 창세기 1장을 해석하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모세 사후 최소한 700년 이후에 쓰여진 이사야서에 나오는 내용을 가지고 창세기를 해석하는 것 자체가 성격해석상 엄청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물론 신약이 구약을 해석한 것 특히 예수님의 해석이나 바울의 해석이 구약해석의 열쇠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잘 고찰해보면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도 결코 구약의 내용을 그 컨텍스트를 무시하고 새로운 해석을 하신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동안 유대전승에 잘못 해석된 부분을 원래의 컨텍스트에 맞추어서 바르게 해석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Progressive" (점진적) 계시에도 한계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특히 창조에 관한 한은 신약의 어느 누구도 다른 이론을 제시한 이가 없다. 왜냐면 창조는 모든 신학의 출발점이며 또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점진적 계시는 무엇보다 구원론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점진적으로 인간에게 계시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것이다.

3) 무조건 어원이 비슷하다고 해서 토후를 악과 연관시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보시는 대로 문제는 이들이 너무 어원에 집착하여 성경의 컨텍스트를 무시하는데 있다. 이사야서 45장 18절의 "토후"는 단순히 부사로 "헛되이"라는 뜻이지 창조의 근본을 말하는 것이 아닌데 얄팍한 히브리어 지식을 가진 학자들이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주장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선입견과 자연과학의 이론과 창조론을 억지로 궁합을 맞추려다 보니 억지 춘향이 격으로 그 근거를 찾은 데 불과한 것이다.

언어적으로 이들의 주장 중 가능한 부분도 있다. 특히 이들은 창 1장 2절의 히브리어 동사 "하야"를 영어로 "was"로 해석하지 아니하고 "became"으로 해석함으로 "땅이 혼돈하고"가 아니고 "땅이 혼돈하게 되었다"로 해석한 것인데 사실 "하야"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동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하야"의 뜻은 영어로 "was"로 해석된다.

토후에 관련된 것으로 바빌론 설화에 나오는 여신과 토후를 연결시키는 것은 언어학 상의 사고이지 신학적인 사고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원이 비슷하다고 해서 신학적 의미마저 비슷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어로 교회에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우리가 예수를 알기 전에 알던 한알 혹은 한울님이나 옥황상제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처럼 언어는 일단 어원이 어떠하든 간에 상황이 바뀌고 사용자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필자의 대학시절 전공은 영문학이라 Shakespeare 의 작품을 많이 읽은 셈이다. 21년 전 미국에 처음 주재원으로 와서 미국인 여직원을 거느리고 일을 하였는데 이 여직원이 성격이 아주 쾌활해서 칭찬한답시고 "너는 아주 gayous 하다"고 말했다가 난감한 경우를 당한 적이 있다. 왜냐면 원래 gay의 어원은 쾌활하다는 뜻이고 특히 쉐익스피어의 작품에 그런 좋은 뜻으로 많이 쓰였지만 현대에 와서 동성연애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변화한 것을 무식한 필자가 옛날 뜻만 알고 잘못 사용하여 엄청난 모욕을 주는 것이 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쓴 저자는 이 단어를 쓸 때에 이 단어가 가지고 있던 어원과는 상관없이 당시 사용되던 언어를 사용한 것일 뿐이다. 성경해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안에서 컨텍스트에 따라 그 의미를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 안에서도 성경말씀으로 성경을 해석하되 어느 말씀이 시대적으로 신학적으로 앞선 것인지를 알고 그 순서에 따라 적용을 해야 하는 것이지 이를 역행하면 안된다. 두번 째는 그 시대적 컨텍스트이다. 당시 성경이 쓰여질 때 그 단어가 지닌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토후의 뜻도 마찬가지이다. 창세기의 내용을 보면 "tohu"의 상태는 창조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재료를 만드시고 이 재료들을 질서있게 우주의 공간에 배열하시는 창조의 과정을 보인 것이지 도덕적 영적 죄와는 상관이 없다. 분명히 죄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타락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4) 마귀의 반역이 우주공간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순이 있다.

뿐 아니라 마귀의 반역이 현재의 우주공간과 같은 공간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있다. 이는 모든 것을 우리의 오관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만 판단하려 하는 인간의 무지함이 몰고 온 어리석은 논리이다. 그래서 믿음은 보는 것에 의하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오관의 체험을 초월한 영역을 보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아는 우주 속에 갖혀 계신다고 생각하는 유리 가가린과 같은 사고에서 나온 발상이다. 가가린이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인간최초로 우주를 여행하며 한다는 말이 "우주에도 하나님은 없더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한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3. 결론

이미 말씀드린 대로 갭이론은 근본적으로 오류 투성이이며 비과학적인 진화론과 성경의 창조론을 조화를 이루려 한 동기 자체에 결정적 오류가 있다. 다른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는 그 동기가 불신과 교만에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나 중심, 현재 중심, 체험 중심으로만 판단하려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결국 하나님도 나의 울타리 안에서 활동하셔야 한다고 가두는 불신을 범하게 된 것이다. 기록된 말씀에 가감하지 않는 자세, 나의 지식에는 피조물로서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는 겸비한 심령, 모든 목회자와 신학자가 지켜야 할 근본자세이다.

다음 글에서는 또 다른 두가지 창조설에 대해 논의하고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