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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Sep
몽골 선교여행 9월 17일 울란바토르에서 자밍우드까지작성자: JintaeKim 조회 수: 1291
미국을 떠난 지도 2주가 다 되니 시차가 완전히 적응이 되어서 아침 8시가 될 때까지 푹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울란바토르는 해발 1400 미터에 위치한 곳이라 그러한지 아침이 더욱 상쾌하다. 창가로 보이는 번화가의 모습은 4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두바이에 있는 화려한 건물의 모양을 본받아 지은 Blue Sky 빌딩은 전임 대통령 영부인의 소유인데 4년 전만 해도 골조를 세워놓고 지어가던 과정에 있었다. 그런데 이젠 완공되어서 사용되고 있다. 백화점도 당시에는 국영백화점 하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민영백화점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세계자원고갈로 몽골로 자본이 밀려 들어온 여파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그대로 나타난 듯하다. 오양톨고이만 해도 180억불의 자금이 밀려들어왔다고 하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간단한 점심식사를 근처 식당에서 한 후 숙소로 돌아와서 오후 3시 에 필드 디렉터인 데니스의 운전으로 울란바토르 역에 도착하니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기차를 어디에서 타는지도 모르겠고 해서 다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 짐을 쌓아놓고 기다렸다. 주위에는 중국으로 추방당하는 중국인 노동자들도 무리 지어 몰려 있고 자밍우드로 가서 국경을 넘어 중국도시 이롄에서 물건을 사러 가는 보따리 장사들이 들끓고 있다. 몽골의 생필품 가격이 중국의 4 배 가까이 되는 품목들이 허다한 실정이니 이런 보따리 장사들이 많은 것이 이해가 간다.
오후 4시 20분에 자밍우드 향 기차를 타는데 우리 짐도 장난이 아니게 많다. 자밍우드 교회에 태양열 발전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집열판과 각종 연장을 챙긴 짐만 해도 20킬로가 넘는 큰 짐으로 두 개이다. 내가 그 중 하나와 내 짐까지 들고 타고 임 선교사가 집열판을 들었다. 좌석을 잡기가 만만치 않아 우리 일행 다섯 사람이 같은 방에 들지 못하고 각자 찢어져서 네 명짜리 침대칸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침 아내와 나는 같은 방으로 배정이 되었는데 같이 가는 몽골인들이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젊은이들이다. 그래서 영어나 한국어 할 줄 아냐고 물었더니 일본어는 조금 한다고 내게 일본말로 말을 걸었다. 마침 임명희 선교사께서 오시더니 옆방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방으로 바꾸라고 하신다. 그래 방을 바꾸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32살 동갑내기 부부인 졸라와 밧기리는 두 사람 다 인텔리로 남편은 밧기리는 변호사이고 졸라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에 모두 능한 재원이다. 밧기리는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 주로 졸라와 대화를 나누었다. 졸라는 러시아에서 대학을 나온 후 중국에 유학하여 3년을 살았고 일본에도 유학하여 7년을 살다 왔다고 한다. 어디서 사느냐고 물으니 본 교단 선교부가 있는 다르항에서 식수사업을 갓 시작해서 이번에 북경에 가서 중국의 식수사업체들이 현황을 살피려 간다고 했다.
김동욱 목사와 임 선교사는 우리 바로 옆방에 들어 갔는데 마침 그 방에는 기독교인 자매 둘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서로 대화가 잘 되었다고 한다. 마침 두 자매 모두 육신에 질병이 심각하여 두 분 목사님에게 기도를 부탁해서 기도를 해 주고 신앙의 권면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의 침대차는 중국에서 탔던 것과 비슷한 구조로 양쪽에 침대가 아래 위로 있는 침대 4개짜리 방이다. 아무래도 이층은 올라가고 내려가기도 불편하고 공기도 탁할 뿐 아니라 침대가 워낙 좁아서 잠을 험하게 자는 사람은 자다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번에 우리를 인도해 간 임 선교사는 수년 전 김동욱 목사와 함께 여행 중 이층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 장면을 목격했던 김동욱 목사는 이층에서 자는 것에 대해 겁을 먹어서 우리 좌석이 모두 2층이란 말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자동차 견인용 로프를 미국에서 사가지고 오셨다. 두 사람이 잘 때가 되어서 2층으로 올라가서 자동차 견인용 로프로 몸과 침대를 묶는 황당한 장면을 목격한 몽골 자매 두 분이 하도 기가 막혀서 왜 그러냐고 묻기에 사연을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두 분 자매가 1 층 침대를 양보해서 두 사람은 편하게 여행을 했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이나 채점하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앞에 앉은 졸라가 자꾸 말을 걸어 와서 일하는 것은 단념하고 졸라네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음식을 바꾸어서 먹으니 시간이 훌쩍 흘러 간다.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갔더니 수도에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씻지 못하고 방에 돌아 와서 졸라네에게 물이 안 나온다고 했더니 수도 꼭지 밑부분을 위로 밀어 올렸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서 수도 꼭지 밑부분을 밀어 올리니 물이 나온다. 또 한 가지 배웠다. 이것이 러시아 식 수도이다. 졸라네와 대화를 나누다가 저녁 10시경이 되어 2층 침대로 올라가서 잠을 청했다. 졸라의 남편인 밧기리가 건너편 2층 침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침대에 몸을 누이니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진동이 그대로 몸에 느껴지는데 30분쯤 그러고 있으니 속이 울렁울렁한 것이 꼭 배를 탄 기분이다. 살풋 잠이 들었다가 요의를 느껴 문을 열고 나오니 밧기리가 하는 말이 아직 새벽 2시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잠이 들어서 한참 단잠을 자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차장이 이제 도착지에 가까웠으니 내릴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꺼내서 기다리니 금새 몽골 종착역인 자밍우드 역에 도착했다.
자밍우드는 탈북자의 현실을 그려 많은 이들을 심금을 울렸던 영화 “Crossing”에 나왔던 중국과 국경을 접한 몽골도시로 인구 1만 9천의 소도시이다. 황량한 고비사막 들판이지만 중국의 물자가 들어오는 통로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도시가 생성된 곳이다. 임명희 선교사가 한국에서 만나 전도했던 옷트고란 몽골자매가 있었는데 이 분이 몽골로 돌아와서 다르항에서 살다가 3년반 전에 사업문제로 자밍우드로 이사 왔다. 마침 자밍우드에서 회계사로 일하던 뭉크란 자매에게 복음을 전했고 뭉크 자매의 헌신으로 자밍우드 시 14곳에 가정교회를 둔 교회로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주일학교에 모이는 어린 아이들만 해도 90명이라 한다. 사실 자밍우드에서 정식으로 교회로 등록된 것은 뭉크가 시작한 자밍우드 사랑선교교회 밖에 없고 그 외 타 교단 소속교회가 두 곳이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