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밍우드 도착 둘째 날 9월 19일
밤새 담배연기 때문에 기침하느라 숙면을 취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사역을 해야 했기에 움직이려 하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니 임명희 선교사가 고함을 질렀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호텔에서 청소하는 일을 하는 자매가 왼쪽 목 근육과 팔이 경직되어서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달려 가서 경직된 목 근육과 팔을 잡고 치유를 위해 기도한 후 예수 이름으로 풀리라고 명했더니 잠시 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신유사역 세미나를 했는데 이런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니 임명희 선교사가 신이 났다.
사실 나는 이번 선교여행 중 많은 신유의 역사를 친히 체험했다.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가 끝나던 9월 13일에 딘지 교회에서 양을 잡아 회식을 한 후 병든 이들을 모두 안수했는데, 그 때 기도 받은 자매 가운데 자밍우드에서 온 자매도 있었다. 그 때 자매는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며 기도를 요청했었다. 자매는 어제 신유세미나에서 기도 받은 후부터 들리기 시작했다고 간증했다. 13일 기도를 받았던 사람 중에는 신장암이 걸렸던 자매도 있었고 별별 고질병에 고생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무슨 역사가 일어났는지는 차후에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이 곳에 와서 놀라는 것은 성도들이 기도를 받는 자세이다. 몸이 아프면 거리낌없이 우리에게 와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들은 당연히 신유가 임할 것을 기대하면서 안수기도를 받는다. 신장암이 걸린 자매도 기도를 부탁하면서 하는 말이 기도 받으면 나을 줄로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했다. 몽골에 와서 내가 신유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은 어쩌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요, 예수 이름이 능력이 있는 것이요, 기도를 받는 성도들의 믿음 때문인 것이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교회로 가서 오전 중에는 영적 전쟁에 관해 김동욱 목사가 세미나를 인도했다. 영적 전쟁의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한 후 직접 사단의 권세에 대적하는 실습을 시켰는데 어제 치유사역 때와 마찬가지로 다들 거리낌없이 나서서 사단을 대적하는 담대함을 보였다. 오후에는 중국제 태양열 집열판 두 개를 설치하느라 다들 지붕위로 들어 올려서 작업을 했다. 김동욱 목사도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작업을 하는데 문제는 연장이 부족한 것이다. 미국에서부터 장비를 모두 구매해서 일부는 내가 나머지는 김동욱 목사가 한 짐씩 가지고 왔는데 울란바토르에서 빼먹고 가지고 오지 않은 연장이 더러 있는 것이다. 몽골에서는 별 것 아닌 연장 하나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일일이 국경 넘어 중국 이롄에서 구매해 와야 한다. 온갖 수고를 거친 후 오후 6시나 되어서 일단 작업을 중단했다.
오늘 저녁에는 남자 성도 2명, 여자 성도 1명의 세례식이 있을 예정인데 침례를 줄 물을 마련하지 못해 머리에 물을 뿌리는 의식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바로 세례식을 하나 했더니 특별부탁이 또 들어왔다. 근처에 9년 전 YWAM의 지원으로 지어진 교회가 하나 있는데 이 곳 성도들을 위해 오늘 저녁 방문해서 신유집회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 캄캄한 골목을 10분 정도 도보로 가니 제법 근사한 교회건물이 우리를 반겼다. 교회에 들어 가니 부엌도 따로 있고 공간도 제법 넓은 것이 100명 정도 쉽게 예배 드릴 수 있는 시설이었다. 당장 20명도 들어 가기 힘든 장소에서 복작거리며 예배 드리는 자밍우드 사랑선교교회와는 비교도 안되게 호화로운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다. 그러나 막상 예배에 임하는 태도는 정반대였다. 같은 찬양을 해도 건성으로 나오는 찬양이요, 성도들의 얼굴에도 찬양의 기쁨을 찾을 수가 없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 교회는 현재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그렇다. 교회의 건강은 교회의 시설이나 재정상황과는 관계가 없다. 자밍우드 사랑선교교회는 비록 성전도 제대로 없고 성도들도 대부분 빈천한 사람들이지만 주를 향한 사랑이 있고 몽골을 복음화하겠다는 뚜렷한 꿈이 있고 이를 한 마음으로 실천해 나가는 지도자가 있기에 어떤 교회보다도 건강한 교회인 것이다.
김동욱 목사가 말씀을 증거한 후 병 낫기를 위해 기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고 했더니 한 사람씩 나오는데 결국 약 20명의 참석자 모두가 기도를 받았다. 뇌졸증으로 반신을 제대로 못 쓰는 젊은 남자, 한 쪽 귀가 안 들린다는 자매, 신장장애로 고생하는 자매…. 어느 한 사람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자밍우드의 현실이다. 어느 가정을 가든 병자가 한 사람씩은 있고 자녀 가운데 남편을 잃었거나 이혼한 경우가 한 명씩은 있다.
그믐이 가까운지 깜깜하기 짝이 없는 길을 플래시 라이트를 비추며 자밍우드 사랑선교교회로 돌아오니 다들 세례준비를 갖추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 선교사가 주재하고 김동욱 목사와 내가 교대로 세례를 주었다. 그런데 원래 세례대상은 3명이었는데 갑자기 한 명이 추가되었다. 교회 바로 앞 건물에서 다른 알코올중독자들과 함께 사는 바인차강이란 자매인데 남편의 구타에 견디다 못해 9년 전 집을 뛰쳐 나왔다가 험한 삶을 살며 알코올중독자가 된 여인이다. 몽골정부에서 운영하는 알코올중독자 치료시설에 수용되어 있다가 견디지 못해 중간에 뛰쳐나와 이 곳에 와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 동안 뭉크와 교회 성도들이 이 자매에게 세례를 베풀려고 누차 시도했으나 한사코 거부했는데 어제 두 사모의 기도를 받고부터 마음이 변했는지 이번에는 스스로 세례를 받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보니 아직도 술에 취한 상태라 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마음은 진실한 것을 감안해서 세례를 베풀었더니 이 자매가 어찌나 기뻐하는지…. 세례를 주기 전에 임 선교사가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바인차강”이라고 하며 겸연쩍어했다. 몽골어로 바인차강은 “아주 희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자매는 술에 찌들고 삶에 찌들어서 얼굴과 손발이 새카맣다. 당신의 마음은 이제 예수님의 은혜로 천사같이 희어졌다고 덕담을 했더니 해맑은 미소로 응답했다. 내 아내가 축하한다고 하니 덥석 포용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은 어쩌면 우리 삶에 잊지 못할 한 장면일 것 같다. 이런 자매를 용납할 뿐 아니라 사랑하고 섬기는 교회, 진정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