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지 교회헌당예배 및 사역 9월 23일
어제 전기공사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았기에 아침 일찍부터 딘지 교회로 가서 전기작업을 재개했다. 다행히 2시간 동안 작업해서 예배를 드릴 정도로만 하고 옷을 갈아입고 11시 주일예배 겸 헌당예배에 참여했다. 임 선교사가 청년들을 데리고 찬양을 인도하니까 루비라는 아가씨가 손을 번쩍 들고서 말했다.
“목사님, 그건 내 몫인데 왜 목사님이 하세요. 그만 내려 오세요.”
이 말을 들은 임 선교사가 “아이, 뜨거라”하는 표정으로 얼른 자리로 돌아오니 루비가 올라가서 신나게 찬양을 인도했다. 25세의 루비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몽골의 청소년들은 10학년이면 대학으로 진학하는데 대학기숙사라는 곳이 남녀구분도 없이 혼숙하기 때문에 16살이면 아빠도 모르는 아이를 낳아서 자기 어머니에게 맡기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여학생들이 허다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가정마다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기르고 있다. 루비도 같은 경우로 할머니에게 양육을 받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가슴에 맺힌 아이였다. 2년 전 임 선교사가 루비에게 말했다.
“너에게도 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
이 말에 루비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왔다. 루비는 대학 졸업 후 영어선생으로 발령까지 났으나 장학사라는 자가 하룻밤 같이 자던가 100만 뚜구루를 내던가 하라고 요구해서 이를 거부하고 현재 이르틴 교회를 맡아 사역하고 있다. 딱한 것은 많은 루비의 친구들은 이 강요에 굴하고 교사가 되었다는 현실이다. 루비가 이르틴 교회를 맡은 후부터 이르틴 교회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루비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전도에 힘쓰기 때문이다. 매사에 적극적인 루비라 임 선교사에게 자기가 찬양 인도하겠다고 내려오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찬양 후 루비가 전도한 울란바타르 대학 학생들이 주축이 된 드라마 팀의 성극으로 예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내가 목회기도를 하고 김동욱 목사가 설교하여 예배를 마치니 시간이 12시 30분이었다. 이번에도 회식용으로 양 한 마리를 잡아서 비탕에 넣어서 요리하는데 나도 관심이 있어 그 과정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뿌야와 아마갈랑이 함께 작업을 하는데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비탕은 알루미늄 통으로 양고기를 요리하는데 사용되는 몽골특유의 취사도구이다. 먼저 양을 잡아 피를 통에 받고 난 후 살코기와 내장은 따로 분리한다. 피는 곱창에 넣어서 봉하고 다른 내장과 함께 별도로 삶는다. 뼈와 살코기는 따로 분리하지 않은 상태로 통 감자와 홍당무와 섞어 비탕에 넣은 후 거기에 현무암 돌을 여러 개 함께 넣고 통을 밀봉한다. 일단 준비가 되면 모닥불을 피워 완전히 숱이 될 때까지 기다린 후 그 후에 비탕을 올려 놓고 나무를 더 올려 화력을 올린다. 30분 정도 가열한 후 비탕 뚜껑을 서서히 열어서 김을 뺀 후에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을 종류별로 구분해서 고기, 감자, 홍당무, 돌 등을 별도의 용기에 담는다. 비탕 안에서 고압과 열기로 연하게 익은 양고기 맛도 그만이지만 감자 맛도 일품이다.
일단 요리가 끝나니 지난 번처럼 교회 본당 안에 길게 편 상위에 음식을 늘어 놓고 우리보고 먼저 먹으라고 권했다. 고기를 다 발려 내서 먹은 후 기름덩어리를 칼로 한 조각씩 잘라서 나누어 먹는데 그것이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를 익히 아는 우리가 보기에 기가 찰 일이다. 지방질은 몽골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부분이다. 긴 혹한에서 살아 남기 위해 몸에 지방질을 축적해야 하기 때문이긴 하지만 몽골인들의 성인병의 원흉이다.
회식을 끝내고 난 후 임 선교사와 김동욱 목사는 다시 작업 모드로 전환해서 전기공사를 하게 하고 나와 임명희, 유명자, 에리카 네 사람은 심방요청을 한 아마갈랑 (“평화”라는 뜻의 몽골어임)을 따라 나섰다. 아마갈랑은 어제 전기공사 작업을 도와주던 52세의 독신남으로 딘지 교회 인근에서 80세 된 모친을 모시고 살고 있다. 아마갈랑을 따라 교회를 나서는데 누가 에리카에게 다가와서 소식을 전했다. 교회 바로 이웃에 사는 32세의 여성도가 예배 참석하려고 준비하고 기다리던 중 갑상선 항진증으로 인해 심장파열을 일으켜 급사했다는 것이다. 이 자매는 10살 난 딸을 데리고 딘지 동장인 오빠 부부와 함께 거주했는데 올케인 “미가”도 딘지 교회의 교인이다. 이모저모로 교회에 많은 배려를 해 주던 동장의 가정에 흉사가 생겨서 에리카도 당황해 했다. 들어보니 이미 라마승을 불러서 와서 장례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들어가 보니 게르에 시신을 눕혀 놓은 것이 보였다. 몽골은 티벳의 영향으로 과거 조장이나 풍장을 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라마사원에서 화장을 한다. 조문을 하고 가려 했더니 라마승이 예수쟁이들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고 했다. 그냥 아마갈랑의 집으로 갈까 했는데 동장인 오빠가 나와서 허락 받았으니 들어오라고 했다. 시신을 뉘어 놓은 게르에 들어가니 시신을 보자기로 싸놓고 그 옆에 가족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32살이라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갑자기 소천한 자매의 시신을 대하니 내 마음에는 자매가 아직도 살아있어 곧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실 이러한 죽음은 황당한 것이다. 갑상선 항진증이야 타파졸만 정기적으로 복용하여도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고 필요하면 아이오다인 치료로 치유할 수 있는 것을 증상을 알면서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 애꿎은 젊은 생명을 잃은 것이다. 잠시 고인을 위해 기도한 후 조위금을 오빠에게 전달하고 나서 게르를 떠나는 내 마음이 씁쓸했다. 이 곳에 교회를 세우기는 했지만 아직도 기독교식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현실이 딱한 것이다.
상을 당한 집을 지나 20분 정도를 걸어가니 꽤 큰 문이 달린 집이 보였다. 아마갈랑이 잽싸게 담을 넘어 가더니 철문을 열어주는데 들어가니 딘지 교회의 두 배는 되는 넓은 마당에 일제 렉서스가 버티고 있고 게르 뒤에는 건축 중인 큰 목조건물이 보였다. 아마갈랑은 원래 남고비에 살다가 3년 전에 딘지로 이사를 왔다. 금년 1월 딘지 교회를 맡고 있던 에리카가 집집마다 순방하며 전도하는 중 복음을 받고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고 있다. 나이는 52세이나 아직 총각으로 8남매의 맞이인데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때문에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해서 비교적 유족한 삶을 살고 있다. 마당에 주차한 렉서스는 자기 차가 아니고 사업하는 동생의 차라고 했다. 모친은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으나 오늘 처음으로 딘지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하셨다. 아마도 이번 심방이 계기가 되어 교회를 계속 다니실 것 같다.
아마갈랑의 게르에 들어 가니 어찌나 깔끔하게 꾸며 놓았는지 몽골인의 게르에 들어가는 기분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 게르에서 80세의 노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모친도 원래 회계사 출신으로 예의 바른 지성인이다. 연세에 비해 눈도 맑으시고 정정하신 것이 앞으로도 10년은 가볍게 사실 것 같았다. 그런데 모친의 머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 물어 보니 몽골에서는 이 분처럼 연세가 80세가 되면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머리가 다시 무성하게 나서 보기에 좋다는 것이다. 나도 집에 돌아가면 한번 머리를 밀어볼까 생각하게 했다. 몽골의 습관대로 모친이 손수 노구를 이끌고 수태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권하고 아룰과 과자를 가져다 주셨다. 잠시 환담하다가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마갈랑에게 물었다.
“아마갈랑, 장가 가고 싶은 것 아니에요?”
그랬더니 아니라고 부인하더니 결국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 옆에 있던 임명희 선교사에게 “중매 설 색시 없냐”고 물었더니 역시 마당발이다. 다르항에 아이 없는 예쁜 과부가 한 사람 있는데 딱 적임이라고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아마갈랑이 평소에는 자기는 평생 독신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실상은 결혼을 하고 싶어서 심방요청을 했던 것이다. 아마갈랑의 소원은 지금 짓고 있는 목조건물에 새 색시와 신방을 꾸미고 살며 딘지 일대를 복음화하는 데 삶을 바치는 것이라고 한다.
에리카의 말을 들으니 아마갈랑은 딘지 교회에 장성한 남자가 없어 어려운 부분을 자신이 채워 주기 위해 거의 매일 교회에 와서 궂은 일을 자원해서 해 준다. 아마갈랑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더니 자신은 딘지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봉사할 것이라고 했다. 어제 전기공사를 하면서 보인 성실함도 그러하고 마음 쓰는 것도 사역자 감이다. 아마갈랑이 우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고 하더니 자기 침대 밑을 뒤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더니 그 동안 에리카에게 제자훈련을 받은 노트를 찾는다고 했다. 침대 밑을 뒤지다가 없으니까 어디서 열쇠를 가지고 와서 이 집 재산목록1호만 보관하는 금고를 열고 그 안에서 두꺼운 노트를 꺼내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아마갈랑이 보여준 노트를 보며 두 가지 큰 은혜를 받았다. 첫째는, 성경공부 노트를 금고에다 곱게 보관할 정도로 말씀을 귀히 여기는 것이요, 둘째는 노트정리가 너무도 세련되고 짜임새 있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에 이런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아, 참 좋은 사역자 감이구나. 잘 훈련시켜서 딘지 교회 목사로 삼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딘지에 남자 사역자 감이 마땅치 않았는데 참 좋은 사역자 감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같았다. 교회를 섬기는 극진한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순종하는 마음,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섬기는 마음…. 참 보기 드문 귀한 일꾼을 만났다. 그래 진심으로 아마갈랑의 머리에 안수하며 좋은 색시감을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훌륭한 사역자로 키워주시라고 축복하며 기도했다. 허리가 불편하시다는 아마갈랑 모친의 허리에 안수하며 치유기도를 한 후 교회로 돌아 오는데 아마갈랑도 같이 따라왔다.
이 친구 왜 따라 오나 했더니 우리가 전기공사를 마무리 못하고 간 것을 알고 마저 도와 주러 오는 것이다. 딘지 교회에 돌아가니 두 목사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교회건물 2층 다락방에 서 있었다. 2년 전 김동욱 목사가 딘지 교회 전기공사를 했는데 그새 다른 사람이 와서 제 멋대로 배선을 해서 얼키고 설켜 도시 어떻게 배선을 바로 잡을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 세 목사와 아마갈랑이 함께 씨름을 하며 작업을 하는데 어둡기 전에 겨우 다락방 등 하나는 밝힐 수 있어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배선이 바닥 밑으로 들어 간 것을 다시 코너와 지붕 쪽으로 돌리느라 바닥에 깔린 나무들을 모두 이동시키기도 하고 이중삼중 고생을 한 끝에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작업을 끝냈다. 작업이 너무 오래 걸리고 아마갈랑의 복장도 추워 보여서 그만 집에 가라고 했더니 자기는 이 일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했다. 몽골 남자들 가운데 드물게 끈기 있고 성실한 자세이다. 에리카는 우리가 쉬지도 않고 저녁도 거른 채 작업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이렇게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내일 아침이면 또 울란바토르를 거쳐 아르항가이 쪽으로 장정을 떠나야 하기에 이 밤중에는 끝낸다는 각오로 작업을 하다 보니 결국 끝을 내었다. 비록 사연 많고 고된 하루였지만 임 선교사 아파트로 향하는 내 마음은 기쁨이었다. 첫째는, 어려웠지만 전기작업을 끝냈기 때문이요, 둘째는 끝까지 우리와 함께 어려운 작업을 감당한 아마갈랑이란 동역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임 선교사의 사역을 기뻐하셔서 이런 사역의 열매를 허락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