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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1불에 1300뚜구르이던 환율이 급격하게 치솟아 현재는 1700뚜구르를 상회하고 있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외화가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증거이다. 당연히 인플레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서민경제는 나락에 떨어질 밖에 없다.  자체산업도 없고 자원 개발능력도 없어 모든 것을 외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인 몽골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더욱이나 가축외에는 모든 것을 외국에 의존해야 하고 이를 위해 외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예상되었던 외화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으니 이러다가 곧 IMF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몽골정부가 취할 있는 길은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문명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다시 가축이나 치며 생존하는 유목민의 삶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어린 아이도 안다. 한번 문명의 편리한 삶을 맛보고 나면 이에 중독이 된다. 다른 하나는 투자법을 휴지로 만들고 다시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도할 있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미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뻔히 보이는 문제가 몽골인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미 울란바타르의 많은 한국인들이 보유한 부동산을 급매물로 내놓기 시작했고 모두가 달러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렇게 외화의 수요가 급증하고 유입하는 외화가 줄어들고 있으니 나라의 외화사정이 더욱 악화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나치 마크를 자신들의 심볼로 삼고 차에다 그리고 다니는 몽골 국수주의자들은 외국인들이 몽골의 광물과 부동산을 가져간다고 난리를 치며 정부를 옥좨이고 있다. 불행하게도 대다수 권력자들이 이들의 행태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개방했으면 국제사회의 질서를 따르며 거기서 생존할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상식적인 생각조차 없는 소치에 급급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투자를 증진시켜 길을 모색해야 하는 나라가 오히려 외국인들 핍박하고 몰아내려 하고 있다. 거기에다 기독교 관련 사이트를 모두 들어가게 막음으로서 정보통제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다고 정보통제가 되는가? 오히려 정보통제가 되면 사람들이 불안해 하고 과격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이미 핸드폰과 아이패드 등으로 마음대로 국제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는 없는데도 아직도 십년전 하던 정보통제와 민중선동을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다르항의 우리 선교사들은 이미 포기하고 모두 떠날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우리의 선교의 방향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혼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선교의 방향을 수정하시고 더욱 효과적인 방법으로 몽골선교를 완성할 있도록 극약처방을 하셨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는 내일 주님이 오실 같은 심령으로 복음을 전하고 지도자들을 세워서 우리가 없더라도 몽골교회들이 굳건히 몽골복음화를 성취할 있도록 초석을 놓는 일이다. 지금은 영적 전시이다. 전쟁에 임한 군인은 안락한 삶을 추구할 없다. 그래서 바쁜 일정에도 오늘도 고비로 내려 가는 것이다.


온라인 강의를 포기하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서 보니 왼쪽 바퀴가 바람이 많이 빠졌다. 임선교사는 이렇게 중요한 장거리 여행을 하려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을 좌절케 하려는 전형적인 사단의 전략이다. 그런다고 하나 깜박할소냐? 항상 준비성이 철저한 임선교사가  가져온 휴대용 컴프레서로 바람을 채우고 오전 7시 15분에 숙소를 나서니 그새 날씨가 변해서 눈이 흩날린다. 출근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시내를 벗어나 남부로 가는 국도를 타니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기온도 계속 떨어져서 1시간 후인  오전 8시 15분이 되니 화씨 36도로 섭씨로 섭씨 영도에 가깝다. 불과 2주전 도착했을 때와는 비교할 없게 날씨가 변했다.


시가지를 벗어나니 들판에 그루 안되는 나무들은 그새 노란 색으로 단장을 했다. 초원의 풀도 색깔이 바래서 이상 파릇파릇하던 초원의 모습이 아니다. 길을 가려면 음악이 필수라 임선교사께서 카세트를 틀어서 찬송가 편곡한 음악을 들려준다. 아직도 카세트 테이프를 듣느냐고 했더니 몽골은 길이 험해서 CD 튀어서 들을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버리고 있지만 곳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명희선교사가 기름 채우라고 1시간전부터 재촉을 하니 임선교사가 마지 못한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채웠다. 오전 8시 35분에 기름을 채우고 나오니 그새 눈이 멎고 화창한 푸른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눈이 내리지 않았더라면 몽골특유의 먼지속을 운전했을텐데 아침에 살짝 눈을 뿌려주셔서 우리의 가는 길을 먼지폭탄 뒤집어쓰지 않고 쾌적하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온도는 그새 벌써 화씨 34도로 떨어졌다.


울란바타르를 벗어나 계속 남쪽으로 달려 고비사막에 가까워지니 온도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오전 8시 53분인데 온도가 아까보다 올라 화씨 39도이다. 이제 해가 눈부신 얼굴을 밝히 드러내어  색안경을 쓰지 않고는 바라 볼수가 없다. 아직도 울란바타르 근교라 제법 산들 밑에 아직도 파란 색조를 간직한 초원이 수줍은 얼굴로 우리를 맞는다. 몽골 특유의 파란 하늘위에는 구름더미가 한가롭게 이동하고 있다. 계속 달리면서 보니 오른 편에 선로가 국도와 평행으로 뻗어있고 위를 짐을 잔뜩 실은 화차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남부 국경도시인 자밍우드에서 올라오는 화물차이다. 지금 우리가 달리는 남북으로 뻗은 국도와 선로는 몽골의 젖줄이다. 남쪽 국경도시 자밍우드를 거쳐 중국에서 유입되는 모든 물자가 울란바타르로 올라간다. 선로 옆에는 말무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뒤에는 목자가 말을 타고 쉬고 있다.


임선교사 혼자 운전하기에는 장거리라 교대하자고 하니 임선교사가 차를 오른 쪽으로 뺀다. 날씨도 계속 따뜻해져서 이젠 외투없어도 견딜 만하다. 외투를 벗어 몸을 가볍게 운전석을 점령하니 오전 9시 12분이다. 남부로 가는 국도는 북부로 가는 국도보다 상태가 훨씬 양호하다. 그래도 워낙 자밍우드를 거쳐 중국 이롄에서 들어오는 물자를 실은 추럭들이 많이 다녀서 곳곳에 패인 곳이 많다. 잠시라도 눈을 팔면 말아먹기는 하루 아침이다. 운전솜씨도 차만 타면 꿈나라로 가는 명희선교사의 비명소리가 들린 후부터는 몽골 길에 익숙해졌다.


10시 46분이 되니 온도가 화씨 50도로 상승해서 차안이 제법 따뜻하다.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리니 멀리 몽골도시특유의 붉은 색조가 비치는 시가지가 보인다. 바로 작년 선교여행 방문했던 쵸이르이다. 쵸이르는 순베르 주의 주도로 칭게가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곳이다. 자밍우드 교회의 어유나의 여동생으로 어유나가 와서 가족들을 모두 전도한 임선교사를 초청하여 8명을 세례줌으로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쵸이르는 특별히 어둠의 권세가 강한 곳이다. 몽골전국무당협회 본부가 곳에 있어 매년 모두 모여 연합 굿판을 벌린다. 근처에는 또한 비구니 승들의 절이 있던 곳이다. 마음 같아서는 칭게를 방문하고 격려하고 싶지만 오늘 중으로 쉬브곱을 방문하고 돌아가야 하기에 쵸이르는 다음으로 미루고 그냥 쉬브곱으로 향했다. 


원래 쉬브곱을 가려면 쵸이르로 들어가서 험한 동네길로 한참을 가야 하는데 불과 며칠 전인 9월 5 한라건설 시공으로 개통한 아스팔트 길이 멋지게 깔려 있어 우리의 여행길을 가볍게 한다. 쵸이르에서 샤인산드를 거쳐 남부 교통의 요지인 생산까지 200킬로 거리의 공사가 거의 끝났다고 한다. 차바퀴 자국도 거의 보이는 신작로를 신랑이 신부에게 장가가는 기분으로 달리니 그동안 곳곳마다 패인 국도에 익숙했던 차바퀴조차  행복한 미소로 답한다.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시다. 우리의 여행을 기뻐하시고 가는 곳마다 선물을 베푸신다. 오늘 아침에는 눈을 미리 내리게 하심으로 먼지 폭탄을 피하게 하시더니 이번에는 새로 길로 인도하셔서 기쁨을 선사하신다. 한라건설은 공사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국도만 것이 아니고 마을로 이르는 작은 길도 약간씩 포장을 주어서 마을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다른 건설회사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르틴에서 볼강 가는 길도 수년전에 삼한토건이 시공했는데 다른 길과는 비교할 없는 솜씨로 이루어져서 마음이 기뻤는데 한라건설의 솜씨는 더욱 섬세한 같다. 이럴 때만큼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을까? 덕택인지 한라건설은 최근 6천만불짜리 울란바타르 신청사 신축공사를 따냈다.


오전 11시에 한라건설이 시공한 길로 들어섰는데 30여분 지나니 오른 쪽에 쉬브곱의 모습이 안개에 싸인 것처럼 아스레하게 보인다. 쉬브곱은 원래 러시아 공군기지가 있던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들도 원래 러시아 공군 거주막사였던 곳을 개조한 것이다. 쵸이르에서 남부로 이르는 일대는 과거 러시아가 공군기지들을 두어 중국을 견제하던 전략적 요지라 러시아 공군들의 발자취가 도처에 남아있다.  근처에 양질의 석탄광산이 있어 주민들은 모두 광산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한다. 요사이는 광산의 기계화로 취업자 수가 줄어 인구는 4천명밖에 되지 않아 많은 아파트가 뼈만 남은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새로 생긴 비포장도로로 들어서니 길이 여기 저기 있는데 어디로 가야 쉬브곱으로 것인지 감이 안잡힌다. 임선교사는 그동안의 몽골여행을 통해 본능적으로 어디로 가야 아는 감각을 가졌다. 그래 감각에 의존하여 달리다가 쉬브곱 입구에 도착하니 시간이 오전 11시 40분이다. 점심시간에 찾아가 보았자 신세만 지는데다 울란바타르에서 가져온 김치냄새가 너무 지독하여 들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가기로 했다. 보니 이번에는 명희 선교사가 김치와 밥만 달랑 가져왔다. 시장이 반찬이라 들판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맛이 꿀맛이다. 몽골에 다니면서 내가 가지 배운 것은 먹을 기회가 오면 무엇이든 최대한 먹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을 적당히 먹었다가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못하고 고행한 적이 두번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있는 대로 있을 때에 넉넉히 먹어두라. 몽골 생존강령 1호이다.


식사후 잠시 황야의 아름다움에 젖어 차를 몰아 투메네 아파트를 찾았다. 투메를 찾으니 투메는 갑자기 울란바타르에 2주간 예정의 수련회 때문에 떠나고 없고 남편인 촐랑바타르가 우리를 맞는다. 촐랑바타르는 원래 자밍우드 공산당 서기장을 하던 사람으로 작년에 자밍우드 시의원으로 출마했다고 하여 우리가 열심히 기도했던 사람이다.


기도제목이 가지 있었는데 모두 응답되었다. 하나는 투메가 가르친 학생들이 고비사막 전역에서 가장 우수한 팀들이 모여 경연하는 몽골민속댄싱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도록 달라는 것이었는데 비록 1등은 못했지만 2등을 했다. 둘째는, 남편 촐랑바타르가 자밍우드 시의원선거에 당선하도록 달라는 기도였는데 그대로 당선되어 1년간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셋째는, 그동안 전도여행을 하며 가정에서 가족끼리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쉬브곱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게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니 쉬브곱의 모든 여인들을 복음과 댄싱으로 휘어잡았고 굳건한 교회를 세웠다. 넷째는, 투메가 자신의 달란트인 몽골민속춤 솜씨를 살려 몽골에 이름을 날리게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새 5천명을 훈련시켜 울란바타르 대광장에서 민속춤을 추게 하여 기네스 북에 훗슬린과 함께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쉬브곱 정부와 숨베르 정부는 투메의 공로를 인정하고 투메에게 온갖 특전을 베풀어서 지역의 최고유지가 되게 했다. 작년에 갔을 때는 투메의 방은 소박하기 짝이 없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강당도 학교의 작은 소강당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4층에 한 400명은 수용할 있는 깨끗하고 멋있게 단장한 무용전용강당을 만들어 주었다. 강당 정면에는 춤이 여신이 묘한 표정으로 몸을 꼬고 있고 좌우에는 투메가 받은 온갖 상장으로 가득하다. 투메가 여왕인 왕국을 보는 듯하다. 임선교사가 중앙에 있는 여신그림은 제거하라고 해야겠다고 한다. 공공시설이라 함부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투메는 학생들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여성들을 모아 여성협회를 만들고 이들에게 곳에서 건강과 미용을 위한 춤까지 가르친다. 당연히 여성협회의 머리는 투메이다. 자밍우드에서 쉬브곱에 있는 학교로 불과 2년만에 투메와 가정에 일어난 일이다. 모두가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투메와 가정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다. 작년 이맘때에 와서 썰렁한 투메의 아파트에서 기도제목들을 놓고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고 떠났는데 얼마나 변화인가?  모든 일에 항상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욱 후하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한다.


촐랑바타르를 따라 가니 작년에 살던 아파트보다 훨씬 상태가 양호한 아파트로 인도한다. 때는 간짜리 침침한 아파트에 침실은 다른 사람에게 주고 가족이 거실에 침대 하나를 두고 살았는데 이번에는 크기도 크고 구조도 완전히 다른 아파트를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 투메와 촐랑바타르의 삶의 위상이 바뀐 것이다. 처음에는 아파트에서 교회가 모이는가 했더니 교회건물은 따로 있다고 한다. 자리를 권하고 차와 과자를 내오기에 자리에 앉으니 기네스 북에 오른 증명서 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한번 투메의 막내아들에게 한번 시범을 보이랬더니 요녀석이 하는 마는 둥한다. 그래도 비데오를 찍어주고 기네스 북에 오늘 공연장면을 찍은 비데오는 없냐고 물으니 동영상을 담은 카메라를 가져온다. 일단 영상을 모두 컴퓨터에 옮긴 촐랑바타르와 함께 교회건물로 이동했다.      


오후 1 아파트 지역을 벗어나 몽골식 집들이 옹기 종기 모인 지역으로 가니 나무십자가가 높이 달린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낮은 벽돌담 넘어로 보니 게르 (몽골의 천막 집) 채가 있다. 하나는 성전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자가 거하는 집이다. 게르 앞에는 Satellite dish 있고 전기도 들어와 있다. 나는 교회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 왜냐 하면 이것이 내가 2008년에 몽골에 와서 임선교사와 함께 꿈꾸었던 몽골 게르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성전으로 사용하는 대형 게르에 들어서니 가운데에 십자가가 있고 게르중앙에 구멍을 통해 눈부신 양광이 들어와 실내를 밝힌다. 특히 강단을 밝혀서 말씀전하는 사람의 모습을 덮는다. 모습이 모세의 얼굴에 후광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명희 선교사가 말한다. 듣기에 나쁘지는 않다. 게르의 크기가 지금까지 게르 가장 크다. 아마도 100명까지는 함께 예배드릴 있을 같다. 게르 사방에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교회 게시판 등이 붙어있다.


촐랑바타르가 모인 성도들에게 이번 모임의 목적을 설명하고 우리를 소개한 임선교사가 나가서 찬양으로 예배를 인도했다. 우리가 몽골교인들과 드리는 예배는 아주 간단하다. 먼저 찬양을 다섯 정도 부른다. 대부분 찬양이 한국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몽골말로 번역한 것이라 귀에 익숙해서 몽골말로 부르기가 어려우면 나는 그냥 한국말로 부른다. 몽골교인들은 찬양을 좋아하고 신이 많아서 찬양을 많이 부를수록 은혜를 받는다. 임선교사가 찬양에 이어 간단하게 우리를 소개하고 내게 말씀을 전하게 했다. 임선교사의 통역으로 사도신경 내용을 강해하고 세례의 의미에 관해 말씀을 전하는데 말씀을 받는 교인들의 태도가 너무도 뜨겁다. 처음 모일 때에는 눈에 빛이 없던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면 눈빛이 반짝거리고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는데 전하는 마음조차 뜨겁다. 얘기를 들으니 1995년에 박혜선 선교사란 처녀가  울란바타르에서 주말마다 기차로 와서 전도를 시작하여 교회를 개척했으나 얼마 안되어 결혼을 하러 떠난 교회가 버려진 상태로 있었다 한다. 혼자 전도를 하여 교회를 개척하려 했던 투메가 이들의 형편을 알고 성도들을 재결집하고 전도활동을 활성화하여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웠지만 아직도 제대로 말씀을 들을 기회가 적어서 영적으로 심히 갈급하던 차에 우리가 것이다. 목자를 잃고 헤매는 같은 교인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이 안타깝다.


말씀을 전한 사람의 세례를 집례했다. 세례준비를 하라고 했더니 지도자 사람이 물을 담은 개를 가져다 앞에 늘어 놓는다. 보아 하니 분들은 세례를 받을 때에 머리에 물을 들이 붓는 세례를 받았던 같아 우리도 그대로 하기로 했다. 먼저 임선교사가 이들의 신앙을 확인한 후,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니 분들의 얼굴에 감격이 넘친다.  사람은 울란바타르에서 대학을 다니다 3학년때에 건강의 문제로 휴학하고 부모님이 계신 쉬브곱에 돌아온 21 짜리 솔롱고 (“무지개” 뜻으로 한국을 지칭하는 이름이기도 함)라는 아가씨, 얼굴이 검고 체구가 장대한 이르틴칙칙 (“귀한 꽃”이란 뜻의 몽골어)이란 나이 52세의 자매, 그리고 수령이라는 이름의 자매이다. 이르틴칙칙은 자기 이름을 말하면서 수줍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힌다. 왜냐 하면 분은 덩치가 곰처럼 크고 피부가 새카만 것이 이름과는 대조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례를 끝내니 우리를 보는 교인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목자를 바라보는 양의 눈이 저러할까? 가능하면 자주 와서 격려하고 훈련해야 대상이다. 안수기도를 받을 사람이 있느냐 물으니 세례 받은 사람을 시작으로 결국 모두 나온다. 솔롱고에게 어디가 아프냐 물으니 무릎관절이 모두 아프고 오른 안면이 감각이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했던 같다. 아가씨가 용모가 아름다워서 일어난 사고인 같다. 그래 임선교사가 무릎에 손얹고 나는 안면에 손얹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을 강하게 터치하신다. 오는 사람마다 어떻게나 병이 많은지 모르겠다. 광산촌이라 그러한지 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많고, 당뇨가 심해 녹내장이 되어 쪽눈이 제대로 보이는 사람, 갑상선 기능저하증, 고혈압, 담낭결석으로 인한 잦은 위경련 없는 질병이 없다. 의사가 있기는 하지만 다들 의료시설을 찾기에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상태로 그냥 살아 가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모든 교인에게 안수기도하고 나니 분들의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넘친다. 다들 기도를 받고 나더니 그동안 아프던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야 그저 주님뜻대로 기도할 뿐이고, 이루시는 일은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무얼 바라리요. 임선교사는 내년에 곳에 다시 오면 엄청난 간증을 들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축도로 예배를 끝내고 떠나려는데 자매가 사람 들어오더니 기타를 쥐고 자리에 앉는다. 지도자의 말을 들으니 찬양인도자인데 일이 있어 이제야 왔다고 한다. 그냥 떠나면 섭섭할 같아 자매에게 찬양을 인도하라고 하니 신나게 찬양을 시작하는데 노래솜씨도 좋고 기타솜씨도 수준급이다. 교인들도 임선교사 찬양인도할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져서 손을 들고 신나게 찬양을 부르는데 자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는 자매이다. 자매와 함께 찬양을 하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4시가 되었다.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려면 빨리 길을 나서야 하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서 쉬브곱을 떠났다. 곳의 입구는 Check point 있어 오후 5시가 지나면  외부에서 차가 출입을 못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은 때보다 속도가 붙었는지 빨리 갔다. 가능하면 중간에 배를 채우고 싶었으나 울란바타르에 가서 한식을 먹자고 명희 선교사가 권해서 꼬르륵거리는 배꼽시계를 달래며 울란바타르 숙소 근처의 고레아 식당에 들어가서 북어해장국으로 주린 배를 달래니 시간이 벌써 저녁 9시이다. 그동안 배가 어찌 주렸던지 들어가는 음식마다 진수성찬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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